여의도에 발을 디디자마자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위하는 소리야 국회 근처로 출근하는 사람이라면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어온 소리일 것이었다. 오늘은 어떤 의제가 사람들을 열 받게 했을까.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지만 시위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지? 그들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도 출근 시간이 임박했음을 아는 나의 다리는 착실하게 회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회사 근처에 다다라 모퉁이를 돌자, 시위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열 명 안팎의 사람들이 회사 정문 앞에서 몸집만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안경을 쓰지 않아서 피켓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거지?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쓸까 하다가, 걷는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회사 앞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 그들 근처에 가서야 피켓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가족 해체‧동성혼 합법화 지지하는 KBS는 각성하라!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어머 저게 뭐야.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열어 단톡방에 이 흥미진진한 소식을 알렸다.
[현재 KBS 앞에서 동성애 반대 시위 중]
친구들도 순식간에 답장을 보내왔다.
[심심한가]
[우와 대박 실제로 보고 싶다]
[앞에서 커밍아웃하고 깽값 벌어보자!]
[시위는 핑계고 벚꽃 보러 여의도 간 거 아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서 답장을 보내는 친구들이 그려져 킥킥 하고 웃음이 났다. 시위대 앞을 가뿐하게 지나쳐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에서 마주친 동료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날씨 정말 좋지 않아요?
그런데 하루면 끝날 줄 알았던 시위는 한 달이 넘게 이어졌다. 시위대는 항상 나보다 빨리 출근해 정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무실로 가기 위해선 시위대 사이로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 틈바구니에 들어가기 몇 걸음 전부터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단단히 고쳐 끼웠지만, 시위대의 구호는 징그러울 만큼 귓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피켓 문구 역시 견디기 어렵게 거슬렸다. “저기요 선생님들. 동성혼은 합법화가 아니고 법제화가 필요한데, 혹시 문구를 고쳐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정중하게 묻는 상상도 해봤다. 만약 정말로 그 말을 뱉었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황하는 표정을 보였을까? 벌컥 화를 냈을까? 그들에게 묻고 싶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위가 끝나면 뭘 하나요? 오늘도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하나요?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보며 ‘우리 집은 정상적이라 다행이야’라며 안도하나요? 답을 받지 못할 질문들이 쌓인 날은 가슴이 답답해 괜히 혈자리를 문질렀다. 별 효과는 없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구호들이 맴돌았고 밥을 먹다가도 피켓의 잔상이 보였다.
그들의 구호, 발언문과 피켓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집회의 계기가 된 프로그램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였다. 육아 일상을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비혼 출산을 한 방송인이 출연한 것이었다.
일본인 여성인 그는 모국에서 비혼 출산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남편 없이 임신과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그의 일상이 어떤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정상적인 가정의 형태를 파괴한다는 이유였다.
하루는 이 집회에 대한 기사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았다. 방송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기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댓글창이 왁자지껄했다.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방송인 한 명이 비혼 출산을 했기 때문에?)
‘아빠 없이 클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냐’(부친의 유무가 행복을 결정하나?)
‘아빠가 누군지 밝혀야 한다’(아빠가 없다며?)
분노 어린 댓글들은 스크롤을 꽤 오래 내리는 동안 이어졌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러는 게 재밌나? 라고 생각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서 감히 혼자 출산을 했다는 사실을 증오했고 자신이 처음 본 가족의 형태를 두려워했다. 그 진심 어린 혐오가 섬뜩했다.
그날 밤 수면 유도 영상을 틀어놓고 잠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에 의문이 하나 떠올라 몸을 일으켰다.
근데 그 시위는 왜 동성혼 반대를 하고 있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 건 비혼 출산을 한 여성이지, 레즈비언 부부가 아니었다. 비혼 출산과 동성혼은 꽤나 거리가 있는 의제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피켓에서 본 문구는 동성애 합법화 반대, 시위 주체는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이었다. 시위 의제가 어쩌다 동성혼 반대가 되어버렸는지 그 맥락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 피켓에 써있던 ‘가족 해체 조장하는 KBS’라는 문구도 떠올랐다. 그제야 그들의 사고 흐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감이 왔다. 아하. 본인들 기준의 정상 가족을 방해하는 것들, 비정상적인 것들을 대충 합쳐서 반대하는구나. 한참 다르게 생긴 황인과 흑인을 대충 뭉개서 유색인종이라고 하는 것처럼.
타인을 손쉽게 뭉뚱그리고, 자신이 막고 싶은 게 법제화인지 합법화인지 찾아보지도 않는 게으름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권력이었다.
상념이 흐르고 흘러 정신 차려보니 잠과는 꽤 멀어져 있었다. 수면유도영상은 그것도 모른 채 나를 재우기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었다. 4초 간 숨 들이마시고… 4초 간 숨 참고… 6초 간 내쉬고…. 영상 속 목소리는 낮고 친절했다. 다시 자리에 누워 호흡에 집중했다.
다음 날 점심시간, 구내식당에 가는 대신 오랜만에 동료들과 회사 앞 서브웨이에 갔다. 각자의 취향대로 주문한 샌드위치가 나눠 담긴 쟁반을 들고 와 창가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리면 시위대의 모습이 보이는 자리였다. 나는 시선을 내 샌드위치에 고정한 채 식사를 시작했다. 부드러운 빵과 에그마요, 온갖 야채, 칠리소스가 입 안에서 뒤섞였다.
창밖의 풍경은 서서히 멀어지고 샌드위치의 맛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한 게시물1)이 떠올랐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자신이 만취한 채 서브웨이를 주문했는데 직원이 자신의 샌드위치를 보고 웃더니 사진을 찍어갔다는 글이었다. 그는 샌드위치의 사진도 첨부했는데 그 사진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라도 웃고 사진을 찍었다’는 반응을 보였고, 나 역시 샌드위치 사진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그의 샌드위치에는… 오이와 올리브뿐이었기 때문이다. 30cm의 기다란 빵에, 다른 부재료 없이 오이와 올리브만 들어가 있는 앙상한 샌드위치. 우리가 샌드위치를 살 때 기대하는 비주얼과는 영 거리가 먼 모양새였다.
*
2007년부터 입법 예고되었지만 아직도 제정되지 못한 법안이 있다.
■ 제안이유2)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ㆍ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대한민국헌법」 및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ㆍ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하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임.
2007년, 정부가 제출했던 차별금지법안의 제안 이유는 이렇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법안이었지만 반대는 거셌다. 반대 세력 중 일부는 이 법안을 ‘동성애차별금지법’이라 부르기도 했다. 동성애자쯤은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차별하고 싶다는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반대의 목소리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법무부는 이런 여론을 의식하며 법안을 수정하고 말았다.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성적 지향, 학력, 병력 7개의 항목을 차별사유에서 삭제한 것이다. 평등이념에 따라 쓰인 법안에서 특정 집단을 배제하며 이 사람들은 차별해도 괜찮다고, 정부가 되레 공언한 셈이다. 누군가들의 입맛에 맞춰 특정 집단은 다 빼버린 법안은 초라할 뿐이었다. 오이와 올리브만 남은 샌드위치처럼.
물론 법무부가 “일곱 개의 항목에 속하는 사람들은 차별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하거나 분류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줬을 뿐이다. 반대 세력에게 승리를 맛보도록 했고 그런 식으로 반대하면 누군가의 인권을 빼앗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을 뿐이다.
수정된 법안은 다음과 같았다.
‘성별, 연령, 인종, 피부색, 출신민족, 출신지역, 장애, 신체조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 혼인, 임신,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예방하고 …’
차별사유에서 삭제한 일곱 개의 집단은 ‘등’이라는 한 글자로 얼버무려졌다. ‘등’이라는 한 글자에 뭉뚱그려진 일곱 개의 집단과, 그 집단 안에 속하는 무수한 개개인. 전부 다르게 생겼을 그 얼굴들에 대해서 그들은 생각해본 적 있을까.
그렇게 17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 폐기된 차별금지법은 18대‧19대 국회에서도 제정을 미루고 미루다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고, 20대 국회에서는 발의되지도 못했다. 공동발의를 할 열 명, 단 열 명의 의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을 언급하는 순간 반대 세력의 표적이 된다며 이젠 언급 자체를 꺼린다.
*
정신없이 출근을 하던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위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위대는 자취를 감췄고, 출근길은 비로소 평화를 되찾았다. 이 평화가 갈등의 끝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차별 금지 반대’라는 이상한 부정문을 살면서 수차례 만나게 될 거란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곧 다가올 여름에도 그들을 마주치게 될 것이었다.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 현장에서, 퍼레이드 참여자들은 성소수자로서의 괴로움과 분노를 떨치고 행진을 한다. 굳이 출석한 반대 세력은 꽹과리를 치며 악을 써댈 것이다. 하지만 광장의 소란스러움은 전혀 두렵지 않다. 나는 내가 혼자 걷지 않을 때 외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1) 트위터 사용자 @annajames33의 트윗
(https://twitter.com/annajames33/status/1167878510364352513?s=21)
2) 의안정보시스템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E0I7L1G2F1T2P1N4Y5R0D3T1N3X7I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