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인간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건 아마 모든 반려인들의 염원일 것이다. 나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소원을 바라고 바랐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레 그 기적이 찾아왔다.
“야 다래야.”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시선을 한참 내리니, 4kg의 소형견인 별이가 태연하게 서 있었다.
“뭐야, 너 말할 줄 알았네?”
“어.”
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고 나는 전혀 의심을 품지 않은 채 넘어갔다.
“별아 우리 놀러 가자.”
“그래.”
별이와 뛰기 위해 다시 앞을 돌아봤고, 그 순간, 완벽한 날씨의 한강공원이 우리 앞으로 펼쳐졌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별이는 구태여 하네스를 착용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뽀송뽀송한 잔디 위를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신남을 주체하지 못해 잔디밭이 트램펄린이라도 되는 것처럼 펄쩍펄쩍 뛰어 하늘 높이 몸을 띄웠다. 아무리 뛰어도 지치지 않았고 어느새 한강의 수면 위로 노을이 드리워졌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노느라, 대화는 더 하지를 못했다. 그때가 기회였는데.
꿈에서 깨자마자 나는 이불을 발로 찼다. 멍청아.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부터 물었어야지.
“다시 꿈에 나와서 사람 말을 해봐.”
아직도 가끔씩 잠에 들기 전 작은 얼굴을 붙잡고 꿈에 나와달라 읍소를 하고 있지만, 별이는 몇 년째 꿈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근래의 나는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각까지 결국 1분도 자지 못한 날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눈이 시렸고 입 안이 써서 입맛은 하나도 없었지만, 불을 켜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회의 중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수치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인스턴트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조금씩 먹고 있는데, 내 방에서 자고 있던 별이가 인기척에 깼는지 반쯤 뜬 눈으로 따라 나왔다.
그런데 걷는 모습이 이상했다. 뒤뚱거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가까이 가보니 별이는 오른쪽 뒷다리를 허공에 들고 있었다. 나는 크게 당황해서 별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왜 그래? 발에 쥐 났어? 너 이런 적 없잖아. 별이는 허공에 띄워놓은 뒷다리를 내려놓을 기미가 없었다. 그 자리에 서서 걷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나도 몇 초 간 별이의 다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 있었다.
불과 10시간 전까지 동네를 누비고 온 개였다. 산책 중 마주치는 낯선 이가 “아이고, 기운 좋네. 얘는 몇 살이에요?”라고 물으면 “아유, 나이 많아요. 열네 살이 넘었어요.”라고 답하고, “어머 정말요?”라고 답하며 놀라움으로 물드는 상대방의 표정을 보는 것. 이런 패턴의 스몰 토크가 내 즐거움이었다. 그러니까 별이는, 유치원에서는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노령견이긴 하지만, 건강한 개였다. 근데 도대체 왜 갑자기 걷지를 못 하는 거지? 설마….
별이는 좀 걸어보려고 하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전 여섯 시. 별이를 포대기에 집어넣고 24시간 영업하는 동물병원으로 달렸다. 그렇게 별이는 슬개골 탈구 판정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의사는 다정하면서도 사무적인 어투로 별이가 해야 하는 수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슬개골 탈구 수술은 효과가 좋은 수술이죠. 다만 수술 후 최소 한 달은 집에서 지내야 해요. 게다가 노령견이라면 수술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어요. 20년 사는 강아지는 많지 않잖아요. 아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데, 한 달을 집에 있게 하는 게 오히려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닐 수도 있는 거죠.”
슬개골 탈구는 대부분의 소형견이 겪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슬개골 탈구를 겪지 않는 극소수에 별이가 들어갈 거라고 믿어 왔다. 그건 별이에게 닥칠 위기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혹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을까. 이제 와서는 나도 그때의 나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실제로 열네 살이 넘도록 탈구가 오지 않은 것도 그 안일한 믿음을 가지는 것에 한몫했다. 어쨌든 그건 이제 옛날 일이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슬개골 탈구 수술,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온 가족이 딜레마에 빠졌다. 우리는 섣불리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니, 가족 중 그 누구도 찬성 측에 설지 반대 측에 설지조차 정하지 못했다. 토론을 해보자고 모였는데 침묵만 오가는 이상한 시간이었다. ‘아휴 나중에 얘기하자.’ 누군가의 말로 회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파투가 났고 나는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별이 앞에 가 엎드려 눈을 맞췄다.
“별아 오늘은 진짜 꿈에 나와야 된다 응?”
별이는 귀찮아 보였다.
“별아 니가 결정해 수술할지 말지. 응? 꿈에 나와서 애기하면 니 말대로 할게 알았지?
…별아 듣고 있어?”
나는 별이의 닫혀 있는 귀에다 대고 물음을 반복했다. 부드러운 하얀색 귀가 달싹거렸다.
밤을 새운 데다가 아침부터 동물 병원에 뛰어가는 등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 줄 알았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을 검색해 튜토리얼을 따라 하고 있으니 별이가 주둥이로 문을 툭 열면서 들어왔다. 별이는 침대 아래 본인 자리 냄새를 잠깐 맡더니 이내 편하게 드러누웠다. 나는 별이를 안아 들어 내 옆에 눕히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그 작은 몸집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별이는 이내 잠들었다. 나는 잠들지 못한 채 소셜 미디어 피드를 내리고 또 내렸다. 친구들의 소식을 전부 확인했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아 새로고침을 하니 광고 콘텐츠가 좌르륵 쏟아졌다. 옷 광고, 식당 광고, 이불 광고, 강의 광고, 웹툰 광고… 스크롤을 쭉쭉 내리다가,
아이 씨발. 나도 모르게 욕을 하고 엄지손가락을 멈췄다.
<반려동물 사후 기초 수습 키트>
- 반려동물의 마지막 소풍길을 위한 제품
- 후회 없는 이별을 위해 보호자가 알아두어야 할 모든 정보를 담았습니다
하루 종일 노령견 케어에 대해 검색한 나를 위해, 알고리즘이 추천한 상품은 바로 저 키트였다. 감성적으로 꾸며진 광고 이미지를 보자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 미친 새끼들. 저번엔 생리 주기 맞춰서 진통제 광고 띄우더니. 누가 이런 거 필요하대? 휴대폰을 탁 소리 나게 뒤집어두고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침대 아래에 잠들어 있는 별이를 내려다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 별이의 작은 배가 일정한 박자에 맞춰 들썩거리고 있었다. 나는 자그마한 들숨과 날숨을 바라보며 그 박자에 내 호흡을 맞추었다.
나는 조금씩 차분해졌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다시 휴대폰을 뒤집어 켰다. 키트 판매 페이지가 그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페이지에서 나가지 못한 채 잠깐 있다가, 찜하기를 눌렀다.
어린 강아지를 이제 막 가족으로 들인 지인들이 조심스레 강아지의 노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굴고는 했다.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 의연한 척을 했던 건 정말로 그러고 싶기 때문이었다.
정말 삶이 소풍길 같은 거라면, 나는 별이와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산책하고 싶었다. 끝없이 펼쳐진 잔디밭, 푹신푹신한 흙을 밟으며 우리는 지평선 너머를 향해 걷는다. 나는 별이의 옆이나 뒤에서 걷고 별이는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종종 뒤돌아 확인한다. 나는 별이의 다리가 괜찮을지 노심초사하는 마음 없이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닌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종착지에 다다른다. 나는 나직하고 긴 숨을 내쉬고, 별이의 몸에 감겨 있는 하네스를 푼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고 별이는 약간 의아하다는 듯 나를 올려보다가 몸을 부빈다. 나는 별이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고, 이제 우리는 인사를 나눈다. 이내 별이는 뛰어간다. 나는 갈 수 없는 곳으로. 그곳은 아마도 강아지들의 천국일 것이다. 나의 손에는 이제 아무와도 이어져 있지 않은 목줄이 들려 있다. 나는 목줄을 버리고 길을 다시 돌아온다.
그니까 나는 이런 식의 마무리를 할 수 있기를 바라 왔다.
하지만 현실은 머릿속에서 그리는 이미지와 너무 달랐다. 일단 별이의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나는 절대 알 수가 없다. 꽁초로 뒤덮인 골목이나 유리 조각이 흩어져 있는 골목을 지날 때처럼, 나는 한껏 예민한 상태로 별이의 마지막 날을 의식했다. 한밤중 혼자 걷는 으슥한 골목길에서 뒤따라오는 발소리처럼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후회 없는 이별은 없다는 걸.
별이는 내가 열세 살 때 우리 집에 왔고, 이제 그로부터 14년이 흘렀으니 삶에서 별이와 함께 한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길어졌다. 사실 별이가 없던 집 풍경은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별이가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족이 다 같이 집 근처 공원에 간 적이 있다. 별이는 이 강아지 저 강아지 이 사람 저 사람을 건들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별이가 너무 즐거워 보여서 “저러다 남의 집 가는 거 아니야?”라고 엄마에게 농담을 건넸다. 말하고 나니 정말 안 돌아오면 어쩌지 싶어서 별이를 크게 불렀다.
“별아!”
수많은 사람이 모인 공원이었지만, 별이는 번뜩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봤다. 우리의 눈이 마주치자마자 별이는 세상에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는 듯 오직 나만 보며 힘껏 달려와 품 안에 안겼다. 그 순간 몸에 닿던 흰색 털의 부드러움과 작은 동물의 무게감. 나에게도 세상엔 별이 말고 아무것도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때의 장면을 자주 1인칭으로 복기하고, 3인칭으로 상상한다.
하루는 상담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별이가 가면 저는 어떡해요?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지만 상담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별이가 없는 세상에 다시 적응해야죠.
이제 나의 기억 속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풍경. 현관문을 열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꼬리를 흔드는 개가. 밥때가 되면 자신의 스테인리스 그릇을 깡깡 치는 개가. 내 주먹보다 작은 장난감을 입 한가득 물고 놀자고 달려오는 개가. 산책을 하다가 이따금씩 뒤돌아보며 눈 맞춰오는 개가 없는 일상에 다시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
그 어려운 일을 미래로 미뤄보려 한다. 미래의 나에겐 미안하지만 현재의 나는 별이와 할 일도 나눌 이야기도 너무 많다.
우리는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없는 14년을 보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별이랑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는 꿈을 다시는 꾸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별이와 나는 때때로 진짜 대화를 한다. 같이 걸을 때, 달릴 때, 같은 곳에 누워 눈을 맞추다 함께 잠들 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정확하게 알아들으며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함께 걸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