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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Oct 10. 2022

엄마와 나 사이의 롤라

엄마에게 롤라를 소개해준 건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원래도 엄마와는 가끔씩 뮤지컬을 보러 갔고, <킹키 부츠> 역시 엄마의 휴일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갔다. 하지만 막상 공연 날이 다가오니, 엄마랑 <킹키 부츠>를 보는 게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 롤라는 <킹키 부츠>에 등장하는 드랙퀸이다. <킹키 부츠>는 폐업 위기에 처한 신발 공장을 물려받은 찰리가, 드랙퀸 롤라를 만나 돌파구를 찾는 내용의 뮤지컬이다. 

롤라의 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객석의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뮤지컬에서는 배우가 노래를 마치면 관객이 박수를 보내지만, 롤라는 등장과 동시에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나 역시 롤라를 처음 만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옆자리에서 나를 본 친구는 내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증언한다.

엄마도 <킹키 부츠>를 좋아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불안감을 없애기는 힘들었다. <킹키 부츠>를 보러 간 날, 나는 처음으로 극에 몰입하지 못한 채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롤라가 등장하던 그 순간, 엄마가 ‘헉’ 하고 숨을 짧게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이내 엄마는 다른 관객들처럼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엄마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첫눈에 롤라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나 역시 무대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렇게 3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우리는 극장을 빠져나와 근처의 매운 칼국수를 파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엄마는 칼국수를 먹으면서도 극이 얼마나 훌륭했고, 자신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열변을 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칼국수를 먹고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입가심을 할 때에는, 괜히 애틋한 표정으로 공연장 쪽을 바라보며 저녁 공연도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며칠 후의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퇴근하고 집에 올 때마다, 현관문 밖에까지 <킹키 부츠>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TV로 유튜브를 틀어놓는 방법까지 익혀 온종일 넘버를 틀어놓았다. “여기가 집이야, 충무아트센터야?” 나의 핀잔에도 엄마는 킬킬 웃다가 이내 다시 노래에 빠져들었다. <킹키 부츠>와 관련된 엄마의 지식은 매일매일 업데이트되었다. 며칠 후에는 엄마를 통해, 롤라를 연기한 배우 최재림이 라면을 끓여 먹을 때 계란을 두 개 넣어서 먹는다는 사실까지 주워듣게 됐다.


엄마는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 라디오 출연 영상, 영화 <킹키 부츠>까지 섭렵하더니 결국 몇 주 후 자신의 친구와 <킹키 부츠>를 또 보러 갔다. 친구에게도 이 재미를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지만 본인이 다시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 보였다. 똑같은 뮤지컬을 몇 차례 보러 가는 나를 신기해하던 엄마도 비로소 n차 관람의 묘미를 깨달은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번째로 <킹키 부츠>를 보고 돌아온 엄마는 말했다. 

실제 드랙 쇼를 보고 싶다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이유를 물었지만, 실은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왜 그렇게까지 놀랐던 걸까? 나는 엄마가 무대 위의 롤라를 좋아할 뿐, 현실의 롤라는 불편해할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는 진짜 드랙쇼의 분위기가 궁금하다며 꽤나 진지하게 자신의 진심을 어필했다. 내가 영 내켜하지 않는 것 같으니 회심의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이 엄마가 죽기 전에 꼭…”

“아휴 그래 가자, 가!”

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나 : …이러한 경위로 우리 엄마가 드랙쇼가 보고 싶으시단다. 혹시 아는 곳 있니?]

해마가 금방 답장을 보내왔다.

[해마 : 한번 알아볼게.] 

[해마 : 근데 어머님이 되게 퀴어프렌들리 하시네.]

우리 엄마가? 정말?

엄마와 <킹키 부츠>를 보러 가던 날 은근히 불안했던 것이나, 엄마가 현실의 롤라에게는 관심이 없을 거라고 혼자서 단언했던 것이나, 그 나름대로 나만의 이유가 있기는 했다. 처음으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중학생 때,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는 엄마 아들이 게이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엄마는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어색해질 것 같아.” 


엄마는 그 말 이후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뭐 절연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글쎄 잘 모르겠네…. 엄마는 분명 말을 더 이어갔던 것 같은데, 이미 스트레이트 펀치를 얻어맞은 나는 다음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날 나는 ‘엄마=퀴어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는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나는 전자에 가깝다. 하지만 엄마와 ‘어색해질 것 같아’서, 혹은 그것보다 나쁘게 관계가 변할 것 같아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해마는 내게 물어본 적 있다. 

“도대체 왜 말하고 싶은 거야? 굳이 말 안 해도 되잖아.”

그 물음은 나의 마음에 새로운 파문을 일으켰다. 여태껏 한 번도 파헤쳐보지 않은, 커밍아웃을 하고 싶은 나의 마음에 대하여, 그 질문에 답하고자 나는 그날 이후 스스로에게 열심히 캐묻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랑 더 친해지고 싶어. 

며칠간 이어진 고민의 결론이었다. 거의 주사처럼 술만 먹으면 커밍아웃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상대방과의 벽을 허물기 위함이었다. 나의 말을 듣고 상대방이 벽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말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내 쪽에서 벽을 세우고 있었다. 저 사람은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야. 나를 잘 모르고 나를 좋아하는 걸 수도 있어.

그러니까 커밍아웃은 상대방과 나 사이의 벽을 허무는 행위였다. 그 이후의 몫은 상대방에게 있었다.

엄마와의 벽을 허물고 싶어서, 그럼으로써 우리가 더 친해지면 좋겠어서 커밍아웃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까 봐. 나의 가족, 가장 친한 친구인 엄마와 더 친해지기는커녕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이가 될까 봐.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 했다. 

그렇지만 내가 간과한 중요한 사실은 엄마도 다른 그 누구처럼 입체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중학생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 시간 동안 난 엄청나게 변화했다. 엄마에게도 똑같은 시간이 흘렀고, 엄마도 엄청나게 변했을 거다. 가령 엄마는 내가 처음 타투했을 때 나와의 대화를 거부할 정도로 화를 냈지만, 요즘은 가끔 "나도 타투 하나 해볼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10년도 더 전에 엄마가 한 말을 엄마 스스로 기억조차 못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엄마를 너무 낙인찍었던 건 아닐까?


다시 한 주가 흘러 주말이 되었을 때, 늦잠 자는 나를 깨우는 카톡 알림이 울렸다. 해마의 연락이었다. 해마는 이태원의 한 바 이름을 말해주며, 엄마와 드랙쇼를 보러 가보라고 말했다.

고마워. 짤막하게 답장을 남긴 후 몸을 일으켰다. 암막 커튼을 쳐 놔 칠흑같이 어두운 내 방의 문을 열자, 눈부신 가을 햇빛이 쏟아졌다. 엄마는 소파 왼쪽 끝에 앉아 킹키부츠 넘버를 틀어놓은 채 흥얼흥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소파의 오른쪽 끝에 가 앉았다. 앞서 나오던 노래가 끝나고, 이어서 <Hold me in your heart>가 흘러나왔다.  


♪놓지 마 나를~ 포기하지 마 나를~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를 줘도

♪우린 서로가 너무도 소중한 걸…     


나는 엄마가 앉아 있는 왼편을 힐끗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일지 궁금했지만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엄마는 엄마 아들이 게이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 내가 했던 물음은 사실 ‘엄마는 내가 여자가 좋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그래도 다 괜찮을 것 같아?’ 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묻던 날도 엄마는 지금처럼 나와 1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어색해질 것 같아’라는 엄마의 말 뒤에 분명 이어지는 말이 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뒷말이 무엇이었을지 이제 와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색해질 것 같아, 하지만 다시 친해지려고 노력해야지.’ 였을 수도 있고, ‘어색해질 것 같아. 다시는 못 보게 되지 않을까?’ 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대화를 나눴던 건 과거의 엄마일 뿐 지금의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롤라가 TV에서 노래를 이어갔다. 1m 정도 되는 엄마와 나 사이의 공간에, TV에서 걸어 나온 롤라가 앉는 상상을 했다. 잠옷 차림으로 비스듬히 앉아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는 우리 사이에,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롤라가 다가와 앉는다.      


롤라의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운다.     


♪날 받아줘요~ 이 모습 그대로~

♪네 허물도 사랑해

♪그대도 그렇게

♪사랑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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