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이슈 팩트 체크
뉴타운 사업지구에서 해제된 염리 5구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서울 마포구 염리동 81번지 일대에 염리 5 주택 재정비 구역 8만 ㎡이 위치하고 있다.
서강대 후문 맞은편으로 지하철 6호선 대흥 역을 끼고 있고 4개 전철이 환승하는 공덕역에서 2~3분 거리에 위치한 마포의 중심부이다.
서강대학교는 물론 용강초등학교, 동도중학교, 숭문 중고등학교, 서울여자고등학교, 디자인고등학교 등이 단지 내 또는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교육 학군으로도 최상위 지역이다.
문화 시설도 양호하다. 다양한 공연시설과 생활스포츠센터를 갖춘 마포아트센터가 단지와 접하고 있다.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으로 오는 11월 강북 최고의 복합 문화기관으로 거듭난다. 센터 내 공연시설인 아트홀맥은 기존 733석에서 1,007석으로 증설된다. 좁았던 무대도 크게 확장되어 클래식, 무용,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이 가능해진다.
덧붙여 녹지 환경도 양호하다. 서강대의 노고산이 인접해 있고 경의선 숲길 공원도 걸어서 5분 거리의 지척에 위치하고 있다.
<부동산 업자들에게는 핫 플레이스(Hot Place), 주민들에게는 쿨 플레이스(Cool Place)?>
마포구는 지난해 말부터 염리 5구역에 대해 재개발 사전 타당성 조사 및 도시관리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토지 소유자들이 10% 이상의 동의 조건을 갖춰 재개발 구역으로 다시 지정해 달라는 사전 타당성 검토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염리 5구역은 3년간 개발행위허가가 제한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이같이 주택 재개발 사업이 무리 없이 추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주민들의 걱정도 점차 커지고 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진행되면서 주민들의 속을 태우고 있을까?
염리 5구역은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인 2003년 아현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입지 조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인근 염리 2, 3구역의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되어 이미 입주한 것과 달리 역세권에 위치한 염리 4, 5구역은 주민 갈등이 심화되면서 사업 추진이 늦어진다.
2015년 박원순 시장은 개발 사업의 부작용만 앞세워 염리 4, 5 구역을 뉴타운 사업 재정비 구역에서 해제한다. 그동안 구역 지정과 조합 결성에 들어간 추진위의 매몰 비용 6억 5천만 원은 서울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한다.
그러나 이 같은 개발 억제 정책은 서울의 주택 공급량을 크게 축소시켰고 부동산 가격의 폭등 사태를 유발한다.
2019년 12월 염리 5구역 토지주들은 10% 이상의 주민 동의를 얻어 다시 재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사전 검토를 마포구에 요청한다. 염리 5구역이 아현 뉴타운(재정비 촉진지구)에서 해제 고시된 것이 2017년 5월인 것을 감안하면 2년 6개월 만에 상황이 완전 번복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염리 5구역은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투기꾼들이 대거 유입되어 기존 주택의 지분 쪼개기 작업이 진행되면서 동네는 온통 공사판이 벌어지고 이를 반대하는 주민 민원으로 들끓는다.
다음의 통계가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징적으로 잘 말해준다.
-2014년 10월 조합 추진위원회의 승인이 취소될 당시 염리 5구역의 세대수는 557가구였다.
-2019년 12월 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사전 검토가 마포구에 요청될 당시의 세대수는 598세대로 늘었다.
-2020년 12월 마포구가 주민들의 사전검토 요청을 받아들여 개발행위 제한 절차에 들어갈 때는 세대수가 933세대로 늘어난다.
1년 사이에 3백 가구 이상의 지분 쪼개기가 일어난 것이다. 재개발 면적은 일정한데 조합원 수가 50% 늘어나면서 향후 재개발 과정에서 주민들이 가져야 할 재산권이 그만큼 투기꾼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또 노후불량주택으로 재개발이 당장 필요한 원주민 입장에서는 재개발 사업 추진 시기가 늦어지는 불이익까지 떠안게 되었다. 서울시의 재개발 구역 지정 요건에 필요한 건물 노후 동수나 노후 연면적 등의 조건이 ‘지분 쪼개기 신축’으로 그만큼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재개발 사업의 또 하나의 복병, KT 역세권 건물>
재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염리 5구역 주민들에게는 또 하나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염리 5구역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KT마포 설루션 빌딩이 주택 재개발 사업과는 별도의 독자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KT의 부동산 관리 자회사 KT에스테이트는 최근 서울시와 마포구에 역세권 청년 주택 사업 신청서를 제출했다. 염리동 5,523㎡ 부지에 위치한 KT 마포솔루션빌딩을 헐고 대신 지하 4층, 지상 16층 규모의 청년 주택 499세대를 짓는 독자 개발 계획이다.
KT 측은 지구 지정을 위한 지구 계획 열람·공고 절차를 마치고 현재 서울시 및 마포구에 관련 인·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KT 측이 추진하는 청년 주택 사업 허가부서는 서울시이다. 그러나 마포구가 염리 5구역의 재개발구역 지정을 위한 개발행위를 3년 동안 제한해 놓은 만큼, 우선 이를 해제해야만 인허가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건물이 염리 5구역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지가 주택 재개발 구역에서 제외될 경우 주민들이 추진 중인 재개발의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이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KT부지가 재개발 구역의 한 복판에 위치한 만큼, 사업 구역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500가구 규모의 청년 주택이 들어설 경우 주차장 부족 등으로 지역 생활 여건이 크게 악화될 것도 우려하고 있다.
<탁상 행정이냐, 주민자치 행정이냐?>
시장의 수요 공급에 변동하는 부동산 경기는 사이클을 그린다.
신규 택지 개발이나 기존 주택 재개발 등으로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내려가고 또 이를 억제하여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은 오른다. 이 같은 수급을 예측하여 지나친 가격 폭등 또는 폭락이 없도록 계획하고 관리하는 것이 부동산 행정이다.
염리 5구역은 최소한의 주택 재정비 단위이다. 불량주택 재개발 사업에서 규모 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권 단위이다.
반면 역세권 청년 주택 사업은 염리 5구역을 벗어나 더 큰 범위에서 관리 집행되는 광역권 사업이다.
시장이 바뀌고 서로 다른 목적 사업이 충돌할 때 행정은 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
마포구와 서울시는 그동안 ‘법대로’ 원칙만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 법과 법 사이에 투기꾼들이 몰려들었고 시장 기능이 허물어지고 있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투기꾼을 도운 것은 결국 탁상 행정 아닌가? 주민들이 울게 된 것도 주민자치 행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