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등산로의가시철조망
필요는 발명을 낳고 인간은 그 발명들이 축적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생활환경이 확장되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도 발명의 후광이 크다. 그렇다고 발명과 발전이 항상 인간 삶에 긍정적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때론 인간의 나태함을 촉발시켜 건강을 악화시키고 가끔은 환경 파괴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가시철조망은 1860년 내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가축 사육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울안의 가축이 탈출하는 것을 막고 야생 동물로부터의 보호 장치가 필요했으나 넓은 공간을 아우를 울타리 소재가 마땅치 않았다.
한 양치기의 절실의 필요가 돌파구를 마련한다. 이동하는 양 떼들이 장미 넝쿨을 만날 때마다 멀리 돌아가는 것을 마다 하지 않는가? 양치기는 희심의 무릎을 친다. 장미의 날카로운 가시와 넝쿨을 닮은 울타리를 만든다면 밤낮으로 양 떼를 지켜야 하는 지옥에서 탈출하지 않겠는가? 철사 줄의 군데군데를 꼬아 인조 가시를 만든다. 이를 둘둘 말았더니 사람이고 동물이고 쉽게 통과하기 어려운 가시철조망이 탄생한다.
일상생활 영역으로 들어온 가시철조망은 다양한 울타리 소재로 응용되어 영역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보호 기제로 활용된다. 집과 학교의 담장 울타리, 통행을 금지하는 장애물 등의 소재로 인기를 더해간다. 급기야 전쟁은 이 같은 가시철조망의 효율을 기하급수적으로 증대시킨다. 기습공격해오는 적의 군사를 최전선에서 맞선다. 가시철조망의 양과 질에 따라 아군의 방어 태세는 그만큼 견고한 준비를 갖추게 된다.
억압과 반자유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아우슈비츠나 거제 수용소의 철조망은 가장 존엄받아야 할 인간의 자유를 탈취하는 오브제로 바뀐다. 한반도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이 248km, 폭 1~4km의 DMZ 가시철조망은 무엇을 상징할까? 이념이 분열된 사람에게는 왕래와 교류를 75년 이상 단절시켰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야생동물 천국을 만들어 최고의 생태공간을 탄생시키는 역설이 발생한다. 문명의 이기들이 사용 목적에 따라, 주체와 대상에 따라 두 가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말, 청계산 트레킹 때마다 등산로 곳곳에서 발견되는 가시철조망의 효능과 폐해를 생각해 본다.
오래전부터 서울대공원을 기점으로 옥녀 봉에 오르는 중턱쯤에서 등산로를 가로막는 철조망을 쉽게 발견한다. 철골 기둥까지 설치한 것을 보면 안과 밖을 정말 단절시켜 등산객의 통행을 막으려는 목적이 분명해 보인다.
철조망에 설치된 안내문을 살펴본다.
하나는 서울대공원 측이 운영 중인 치유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트레킹을 보호하기 위해 청계산 일반 등산객의 출입을 차단하려는 목적이다. 다른 하나는 멸종위기 2급 맹꽁이의 보금자리를 지켜달라는 안내 현수막이다.
최근에는 가시철조망을 추가 설치했다. 일반 등산객들이 철조망을 피하기 위해 만든 ‘개구멍’을 다시 땜질하는 차단용이다.
청계산 등산 중에 가끔 고라니 등 야생 동물을 목격한다. 그 동물들이 이곳을 지나치다 가시철조망에 걸리면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서식지가 어딘지도 모를 맹꽁이를 보호한다는 보호 시설물이 또 다른 야생동물에게는 덫이 되고만 꼴이다. 실제 해당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멧돼지나 고라니로 추정되는 배설물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울대공원 치유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이 가시철조망으로부터 어떤 편익을 얻게 되는지도 쉽게 추정하기 어렵다. 서울대공원은 인접 부지로 청계산을 끼고 있지만 등산로마저 폐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결국 등산객들은 서울대공원 측이 설치한 철조망의 공공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또 다른 ‘개구멍’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때마다 시민의 예산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청계산 환경도 나빠지고 있다.
등산로는 개방의 공간이다. 능선과 능선, 능선과 계곡을 이어서 끝내는 정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열린 통로이다. 물론 등산로가 평탄한 길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탄한 등산로는 재미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마니아들은 오히려 외면하기 일쑤이다. 반면 일부 험로에서는 자연 그대로 방치할 경우 추락 등의 위험이 높아 안전 로프를 설치하거나 돌계단 등을 설치해야 한다.
최근 지자체의 대 시민 서비스 확대 차원에서 등산로 정비 사업이 늘어나고 있다. 철제 계단을 설치하고 추락방지 펜스를 만든다.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 등 근교산에서 등산 보조 시설물이 크게 늘었다. 상당수 등산객들은 약해진 연골 등을 이유로 콘크리트 또는 철제 계단을 기피한다. 보조 시설물들이 오히려 불편을 끼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시설물은 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혹여 예산 사용을 위한 인공 시설물이라면 분노마저 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