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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Mar 18. 2024

한국에서 차 사기 힘든 이유

그놈의 그돈씨

첫 차를 사기 전 참 많이 고민하고, 정보를 찾아보았다. 몇몇 지인에게는 조언도 구해보았지만 유의미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하긴 다짜고짜 '첫 차로 뭐가 좋을까?'라고 물어보면 난감하긴 하겠다. 가용 예산도 그렇고 라이프스타일, 취향, 가치관, 가족관계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 두 개가 아닌데 오죽하겠는가.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공짜로 내 고민을 진득하게 들어주길 기대하는 것도 욕심이다.


차 구매와 관련한 영상을 뒤져보던 중 신기한 흐름을 발견했다. 바로 '그돈씨'와 '연봉별 차량추천'이라는 키워드다. 그돈씨는 '그 돈이면 씨X'의 준말로 '야, 그 차를 왜 사냐? 그 돈이면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더 좋은 차를 사겠다'는 다소 거친 의도가 함유되어 있다. 그렇게 차급을 계속 키우다 보면 경차를 사러 갔다가 스포츠카를 몰고 온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온다.


처음에는 경차를 봤다가 그 경차에 풀옵션을 넣을 바에는 준중형 차량을 뽑는 게 이득처럼 보인다. 그런데 준중형에 옵션을 이리저리 추가하다 보면 중형 차량 가격과 맞먹는다. 그래서 중형을 선택하고 나니 이번에는 준대형이나 대형 세단, 혹은 그 이상의 자동차가 아른거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브레이크 없이 전진하다 보면 결국 당초 생각했던 예산을 아득히 초과하는 결론을 맞이한다.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바로 차량 가격이다. 어떻게든 높은 옵션, 높은 차급을 팔아야 남는 장사이기에 아슬아슬하게 가격을 걸쳐놓는다. 위를 바라보면 끝이 없고, 더 좋은 옵션이나 모델을 보면 선녀 같았던 녀석이 오징어로 보인다. 빠지라고 만든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모양새다.


완성차 업체의 농간도 모자라 한국 특유의 K-눈치 문화가 이어진다. 처음에는 소신대로 차를 사려던 사람들도 주변의 말을 몇 번 듣다 보면 덜컥 겁이 난다. 세단을 산다고 하면 천장고가 낮고 평범하다고 하고, SUV를 산다고 하면 에어로 다이내믹이 안 좋고 트렁크에 넣어둔 김치통에서 냄새가 올라온다고 한다. 디젤 차량을 산다고 하면 환경오염이나 규제 같은 이슈가 있다고 하고, 전기차를 산다고 하면 충전 인프라가 어쩌고 화재 위험성이 저쩌고.


한 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닌 데다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니 신중하게 사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차를 사다 보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취향, 차에 대한 가치관, 가용예산, 중고차 판매 시점 등 나만이 알 수 있고 또 신경 쓰는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골목이 좁은 곳에서 사는데 거대한 SUV를 산다면 문짝 긁힐 일만 수두룩하다. 장거리 운전이 잦은데 경차를 산다면 고속도로에서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


'연봉별 차량 추천' 역시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납작한 기준이라 하겠다. 물론 연봉 역시 차량 구매 전에 고려해야 할 요소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버니까 이 정도는 사야지, 하는 건 근거 없는 추종에 불과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달 차량 유지비용을 계산하기에 나름 합리적으로 보인다. 다만 이 역시 '내가 차량에 얼마까지 쓸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배제되어 있기에 의미가 없는 기준이다. 내가 연봉 1억을 벌더라도 차량 유지비로 나가는 돈이 한없이 아까울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무조건 고가의 차량을 권하는 게 합리적일까?


다양한 차량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양함을 내 선택지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보다 더, 더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이해다. 그돈씨나 연봉별 차량추천, 국민차 같은 단어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색상, 내가 좋아하는 기능, 내가 좋아하는 모델,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담기면 왜 안되는가? 그토록 많은 돈을 주고 구매하는 물건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흰색 '국민차'를 산 나란 사람... 그래도 아주 만족하며 타고 있으니 되었다. 아니 그래도 그 돈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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