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베스트셀러 <왜 일하는가>는 제목만으로 일하는 이유를 묻게 한다. (때로는 한 문장으로 남는 작품도 있기 마련이다) 사실 '왜' 일하는지를 묻는 건 어리석은 질문일지 모른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라는 치트키 같은 대답이 있으니까. 당장 나도 그렇다. 만약 회사에서 월급을 주지 않는다면 난 1분 1초도 일하지 않을 거다. 집에서 쉬고 말지.
하지만 저 질문을 가만히 곱씹어보면 생각보다 심오한 뜻이 있음을 알게 된다. 행간에 생략된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왜 하필 다른 일도 아니고'다. 좁게는 왜 이 회사를 다니는가, 조금 더 넓게는 왜 00 업계에 다니는가, 더욱 확장하면 왜 일을 하는가 하는 선문답 같은 영역에 이르게 된다. 저 책에서는 정작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침 튀기며 역설하긴 하지만.
1차적으로 떠올리는 거의 모든 대답은 간단하게 반박이 가능하다.
1. 돈 벌려고요.
> 더 돈 많이 주는 곳은 많잖아요?
2. 집에서 가까워서요.
> 집에서 더 가까운 곳도 있잖아요.
3. 마케팅을 해보고 싶어서요.
>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있잖아요.
이런 느낌이다. 다른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 왜 하필 여기냐고 정색하고 물어보면 사실 완전히 납득시킬 방법은 없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붙여준 곳이 여기니까 하는 답밖에 할 수 없다. 아니, 누가 더 좋은 회사가 있다는 걸 모르나? 이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니까 그런 거지.
그런데 사실 이것도 좋은 답변은 아니다. 왜냐면 어쨌든 여길 선택한 이유가 있을 거니까. 이렇게 파고들다 보면 묘한 균형 상태를 마주하게 된다. '나'와 '세상'의 아슬한 줄타기. 전자가 내가 가진 경향성이라면, 후자는 외부요인이다.
책에 나온 이나모리 회장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는 어쩌다가 자신의 전공과 다른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월급도 때때로 밀리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블라인드에서 '믿고 거르는 회사' 같은 곳이다. 전망도 밝지 않고, 매일같이 격무에 시달린다. 자연스레 동기들은 다 떠나가고, 자신만 남는다. 그 역시 이직을 알아보려다 문득, 여기서 물러서면 어디에 가서도 안 될 거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한다.
그를 회사로 떠민 건 다분히 외부요인의 영향력이 컸다. 할 수만 있었다면 그 역시 더 유망하고 월급도 많이 주는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내적인 열정이 더 강하게 그를 끌어당겼고, 결국엔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세계적인 기업인 교세라의 회장이 되었으니까.
물론 모두가 그처럼 내재된 경향성을 따른다고 해서 성공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내면의 목소리'가 매번 좋은 길을 일러주는 건 아니다. 그게 맞는 방향성인지는 결국 해봐야 아는 거니까. 창의적인 일이 맞을 줄 알고 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렸다가 의외로 안정성을 추구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반대로 안정성을 바라고 공무원 조직에 몸을 담았다가 몇 년 안 되어서 퇴사를 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계속 조정하며 자신에게 맞는 일의 형태를 갖추어나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따를 수 있는 일의 목적을 세우는 일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평생 따라야 할 단 하나의 열정'같은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실은 그렇게까지 문을 닫아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직장이 매번 변하듯이, 직무가 바뀌듯이, 일의 목적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내 마음 따르기' 예찬론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의 시류에 휩쓸린다고 해서 꼭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역시 자신이 선택했다면 훌륭한 삶이다. 사실 외부세계의 영향력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큰 흐름을 거스르려면 에너지가 든다. 물길에 조금씩 몸을 맡기면서 대각선으로라도 나아가는 게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그 방향성이 내 일의 목적과 닿아있다면 말이다.
결국 일의 목적을 단단하게 세우는 게 포인트다. '나는 왜 일하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애매하게라도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힘든 일이라도 지속할 수 있다. 그리고 지속해야 일의 결과를 볼 수 있다. 꼭 한 직장에, 한 직무에 계속 붙어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인생을 길게 보고 무언가를 쌓아가야 한다는 소리다. 어차피 생이 끝나기 전에 일이 끝나는 법은 없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난 왜 일하는가?', 바꿔 말하면 '내가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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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와 가정을 경제적으로 책임지기 위해서
경제적인 책임이란 실은 권리와도 맞닿아있다. 단순히 밥을 먹고사는 거라면 부모님 집에 얹혀살거나 다른 가족에 의존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경제력이 없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게 되고, 단순히 돈이 없다는 것 이상으로 많은 권리를 빼앗기게 된다.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면서도 큰소리치는 뻔뻔함이 없기에.
2. 내외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난 항상 성장이 멈추었다고 생각했을 때 떠났다. 특히 내적으로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느끼고,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느낄 때. 이건 아마 떠돌이 유전자를 가진 경향성에서 기인하리라. 그래서 직장은 내게 학교 같은 곳이다. 학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을 받는다는 거고, 언제든 떠나도 불이익이 없다는 거다. 요즘 직장을 다니면서도 마음이 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운다고 생각하자, 거기에 돈까지 주니까. 어차피 나가면 그만인 곳이다.
돈을 벌면서 외적으로 성장한다는 느낌도 좋다. 비싼 옷을 사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이라든지, 이동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 차라든지 하는 진짜 비싼(?) 자산에 관심이 생긴다. 1년에 3~4번씩 인천공항을 찾지 못해도, 몇 년 안에 더 넓고 쾌적한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크다. 뭔가를 사는 일에 관심이 없기에 그 정도는 되어야 기쁨이 찾아온다.
3. 원하는 일의 형태를 자아내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회사를 일종의 학교이자,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일의 형태를 만들기 위한 과정. 요즘에는 그럴 수도 없지만, 회사에 평생 몸을 담을 생각은 없다. 그래서 커리어 패스도 사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렇게나 변화가 빠른 시대에 커리어라는 게 예전만큼의 효용성을 가지지 못하니까. 만약 내가 커리어를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바이어를 했다가, 에디터를 했다가, 마케터를 하고 있진 않았을 거다.
누군가 보기에는 중구난방으로 방황하는 커리어로 보이겠지만, 실은 (놀랍게도) 나름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언젠가는 말할 기회가 있을 거다. 충분히 계획이 영글게 되면. 또 혹시 아는가. 다음에는 또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