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매니징 #통제욕구 #에이스팀장
팀장 A는 5명 규모의 팀을 이끌고 있는 중간관리자다. 그는 사원, 대리였을 때부터 꼼꼼하고 빠른 일처리로 상사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덕분에 고과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고, 동기보다 먼저 팀장 직급을 달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사원일 때에는 내 일만 잘하면 되었는데 이젠 팀원까지 챙겨야 하니까. 그래도 계속 승승장구하여 일명 에이스 팀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이런저런 회의를 하기도 하고, 그동안 엉망(?)으로 운영되던 프로세스를 뜯어고치기도 한다. 특히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팀원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고, 자신처럼 '일 잘하는' 사원을 육성하는 일이다.
그런 그의 눈에 팀원들의 업무방식은 오류 투성이다. 뻔히 보이는 부분을 놓치기도 하고, 심지어 숫자를 틀리거나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기도 한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팀장'이면서 동시에 중간'관리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바로 피드백을 하고 최대한 빠르게(ASAP!) 수정하라고 지시한다. 동시에 다른 업무도 다 처리되어 있어야 하고, 회의 자료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갈수록 더 조바심이 난다. 하나둘씩 자기가 일을 다 체크하다 보니 어느새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있다. 비록 팀장이지만 그도 워라밸이 중요한 사람인데.... 하지만 일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맘 편하게 위임을 하고 팀장 업무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도무지 안심이 되질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하게 회사를 다니던 사원 B가 면담을 요청한다. 눈치가 빠른 그는 대번에 눈치챈다. 자기 팀에서 첫 번째 퇴사자가 나온 것이다. 예상대로 B는 다음 달부터 나오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을 전했고, 팀장 A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형식적으로 왜 나가게 되었냐고 물어보지만, B는 머뭇거리더니 잠시 쉬고 싶다고 한다. 면접에서는 그렇게 의욕 넘치는 직원이었는데, 이게 세대 차이인가 싶다.
다음날 아침 팀 회의를 소집한다. 미진한 부분, 준비해야 하는 업무에 대해 한참 얘기한 뒤 마지막에 사원 B가 회사를 나가게 되었다고 짤막하게 언급한다.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놀라지는 않는 눈치다. 자기들끼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다들 표정에 생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처음 팀장을 맡았을 때보다 더 심해졌다. 유독 얼굴이 어두운 C 대리를 보니 마음이 불안해진다. 질문 없냐는 말에 다들 "없습니다."라는 대답만 우물거린다.
그 뒤로도 2명이 더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행히 인원은 금방 보충되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다. 너무 닦달을 했나 싶다. '난 그저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일 잘하는 게 잘못도 아니고....' 하지만 일을 대충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새로 들어온 사원 D가 보고서를 가져왔다. 그는 다시 빨간색 펜을 집어든다. 자, 일 해야지.
이 글에서 지난, 혹은 현재의 직장생활이 아른거린다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조직에나 있는 리더 유형이니까. 혹은 자신이 이런 사람인가 싶어 돌아볼 수도 있겠다. 사실 꼼꼼함은 업무에 있어 중요한 덕목이다. 일을 끝마칠 때마다 실수가 너덜너덜하게 매달려있다면 (좀 찔린다) 신뢰를 얻기 어려우니까.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실무자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중간 관리자에게도 어느 정도의 꼼꼼함은 필수다. 문제는 그 '정도'이고, 동시에 어딘가의 '리더'이라는 말의 의미다. 꼼꼼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일명 '에이스' 사원은 보통 상사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특별히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지 않다면 승진도 누락 없이 이루어진다. 위에서는 기대가 크다. 일 잘하는 사원이 일 잘하는 팀장이 될 거라는 생각에.
다만 중간 관리자, 혹은 리더에게 있어 '일을 잘한다'는 문장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리더는 (당연한 말이지만) 리드할 수 있어야 한다. 리드는 크게 포지션에 따라 3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 앞에 나서서 끌고 가는 유형
2. 뒤에 앉아 지시하는 유형
3. 뒤에서 팀원 등을 밀어주는 유형
꼼꼼한 팀장은 1번 유형에 가깝다. 물론 자신은 3번이라고 생각한다. 팀원 입장에서는 질질 끌려가는 기분이다. 뭐 틀린 게 없나 몇 번이고 체크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다른 업무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게 하고도 사소한 실수를 지적받으면 의욕이 꺾인다. 몇 번 부딪히다 보면 그냥 마음을 내려놓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고, 심해지면 회사를 떠난다. 아니, 그 팀장 곁을 떠난다.
사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다 맞는 말이다. 숫자는 틀려서는 안 되고, 윗분들이 좋아하는 폰트는 따로 있고, 모든 수치와 전략과 정보와 연혁이 머릿속에 들어있으면 좋다. 다만 팀원들이 떠나는 건 이들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팀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은 구분해야 한다.
꼼꼼함에는 죄가 없다. 문제는 표현 방식에 있다. 사실 머릿속에 경고 메시지가 마구 울리는 팀장 A 입장에서는 일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레이더 망에 어뢰가 잔뜩 잡히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유유히 항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도 모든 업무를 다 손에 쥐고 있을 수는 없다. 리더라면 적절하게 위임해야 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실무자 수준에서 회사의 명운이 달린 실수를 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조금은 힘을 빼고 지켜볼 줄도 알아야 한다.
아니면 팀원의 (웃기지도 않아 보이는) 의견을 들어주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물론 팀원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영글지 않은 결과물을 스스로 다듬었다는 보람을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아이가 어설프다고 어른이 나서서 모든 일을 다 해버리면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짜증을 낸다.
이것조차 어렵다면 잘 된 부분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보자. 긍정적인 피드백을 앞에 하고, 고쳤으면 하는 부분을 뒤에 덧붙인다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리 내 실수고 잘못이라도 지적만 잔뜩 받으면 기분이 상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