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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Oct 03. 2024

직장에서 "넵넵"하면서도 자아를 지키는 3가지 방법

일치하기, 분리하기, 곁눈질하기

일부 사례를 제외한다면 일터에서 자신의 일부분이 깎여나가는 경험은 흔한 일이다. 조직 생활은 필연적으로 수직적인 구도를 전제하고, 조직원이라면 가끔은 (혹은 자주) 신념 및 개성과 배치되는 지시를 받고 움직여야 한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순간엔가는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서늘한 감각에 정신이 퍼뜩 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스치는 산들바람과 같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실존적인 위협이 될 이러한 감각은 저마다의 방어기제를 통해 적절히 다루어져야 한다. 세상의 풍파를 그대로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모두가 퇴사를 하거나, 지시를 거부하며 지낼 수는 없기에 나만의 적절한 관계 맺음을 고민해야 한다. 회사와는 얼마나 거리를 둘 것인가? 그 안에서 난 어떻게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A 대리는 인사철만 되면 섭외 1순위인 일명 '일잘러'다. 적극적이고 사람 좋은 성격에, 업무도 야무지게 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덕분에 동기 중에서 가장 빠르게 대리 직급을 달았고, 앞으로도 고속 승진이 예정되어 있다. 그는 '회사가 곧 나, 나는 곧 회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 웬만한 회식이나 추가 근무에도 몸을 빼는 경우가 없다. 언젠가는 사장이 되어 조직을 끌어가겠다는 야망도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넵넵'이다. 메신저나 문자를 통해, 심지어 전화로 업무를 지시해도 그는 항상 "넵넵!"을 크게 외친다. 가끔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비웃을 때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직장은 본디 지시하고, 지시받는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 누군가의 지시를 듣고, 지시를 내리는 이 모든 흐름은 자아에 한점 오점도 남기지 않는다. 그는 한없이 편안하니까.


조직에서 자아를 잃지 않는 첫 번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조직의 방향과 자아의 방향을 '일치'시키면 된다. 꼭 '그때 그 시절' 팽배하던 멸사봉공의 자세가 아니더라도 좋다. 커리어 목표가 명확하고, 조직의 논리에 순응할 수만 있다면 자아를 부정하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회사가 성장하고 승진을 거듭할수록 자아는 더욱 단단하게 자리한다.


이런 태도의 장점은 뚜렷하다. 조직이 주는 안정감과 소속감, 명함으로 대변되는 네임 벨류, 승진과 성과급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또한 조직과 충돌할 필요가 없어 잡음이 적다. 현재의 조직에는 충성을 다하지만, 동시에 더 나은 조건이 있다면 얼마든 옮길 수 있다고 믿는다. 충성하는 목적은 충성 그 자체가 아니라 보상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보람이든, 경제적 대가든, 지위든.


이런 유형의 직원은 어릴 때부터 반항 없이 자라왔을 확률이 크다. 몇몇은 모범생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특별히 엇나가지는 않는다. 조직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건 옳은 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산다. 그렇지 않은 이들을 백안시하거나, 반대로 동경하기도 한다. 자기가 걷지 못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질투다. 오래가지는 않는다. 어차피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걸 쉽게 납득하기 때문이다.



B 과장은 반쯤 영혼이 나간 상태로 출퇴근을 반복한다. 그에게 회사란 일종의 메타버스와 같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의탁해야 하는 제3의 공간. 그는 가능한 한 일을 벌이지 않고 조용히 해야 할 업무만 마친다. 마칠 시간이 되면 칼같이 일어나는 건 기본이고, 티 타임도 최대한 활용해서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을 줄이려 한다. 어차피 받는 월급은 똑같으니까.

그의 영혼이 돌아오는 순간은 퇴근 이후, 그리고 주말이다. 그는 최근 탭댄스 동호회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1년에 한두 번은 배낭을 꾸려 3박 4일 트래킹을 다녀오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는 '나와 직장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실천하며 산다. 생계를 위해 다니는 곳에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쓸 이유가 없다. 워라밸이나 챙겨준다면 크게 바라는 것도 없다.


직장에서 자아를 지키는 두 번째 방법은 '분리하기'다. 이들은 직장은 직장, 나는 나라는 믿음을 고수한다. 조직 내에서는 크게 야망도 없고, 욕심도 없다.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출퇴근을 할 뿐이다. 워라밸이 보장되고,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충분하다. 승진을 하면 머리만 아프고 책임질 것만 많아진다. 이대로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최대의 목표다.


직장 안팎에서의 나를 분리하면 자아를 다칠 일이 없다. 만약 삶의 열정이 남아있다면 B 과장처럼 여기저기 문을 두드릴 것이고, 그럴 에너지도 없다면 집에 틀어박혀 잠을 청하거나 유튜브로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입버릇처럼 이직하거나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이는 진심이다. 회사에 일말의 미련이 없으니까. 하지만 다른 곳도 비슷할 거라는 걸 알기에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이들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의욕이 떨어진다. 그래서 열정을 불태울 다른 일을 찾거나, 혹은 한없이 자신 안으로 침잠한다. 후자의 경우 방어적이고 회피적인 태도로 일할 공산이 크다. 안 그래도 의미 없는 일이 나를 괴롭히기까지 하면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C 사원은 벌써 세 번째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중고 신입이다. 총무팀 경리, 콘텐츠 마케터를 거쳐 이번에는 화장품 MD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에게 회사란 일종의 학교와도 같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자 발판이다. 그렇다고 업무를 게을리하진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일을 시키면 기쁜 마음이 앞선다. 여기서 잘 배우면 다른 데에서도 써먹을 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퇴근해서도 이직 준비와 부업 탓에 바쁜 시간을 보낸다. 부모님은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직 준비냐며 타박을 하지만 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어차피 이곳은 자신의 종착지가 아니다. 덕분에 직장에서 쓴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 나가면 보지 않을 사람에게 마음을 쓸 이유가 없으니까.


세 번째는 '곁눈질하기'다. 이들은 한 장소에 정착하기를 거부하고 항상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닌다. 어느 직장이건 잠시 몸을 의탁하는 곳이지 눌러앉는 곳이 아니다. 산업 분야나 직무를 크게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경력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다시 사원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이런 떠돌이(?) 생활이 지속될 수는 없다. 가정이 생기거나, 나이를 먹으면 이직이 예전만큼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나 어느 시점에는 자신의 커리어를 끝내고 다음 지점으로 이동해야 한다. 공무원이나 군인 같은 철밥통도 마찬가지다. 은퇴하고 남은 무수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직장에만 있다가 퇴직한 분들도 이것저것 새로운 공부를 하거나, 다른 직업을 알아보기도 한다. 꼭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에게는 얼마간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만 변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어떤 업무에서건 전문성을 쌓으려면 적어도 몇 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채 영글기도 전에 이직을 반복한다면 나중에는 갈 곳이 없어지기도 한다. 물론 어디에서나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력과 학습능력을 기를 수는 있다. 이들에게는 성장과 배움이 가장 중요하다. 조직에 의존하지 않는 삶을 꿈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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