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문득 숨이 차고 불안해질 때가 있다. 이 정도의 노력으로 과연 충분한가 싶어서. 하물며 놀거나 쉴 때의 마음은 오죽하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성공과 철학을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 무한경쟁이라는 단어를 체화한 채 살아온 시대, 각자도생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 이 같은 마음은 그저 하나의 환경일지 모른다.
다만 노력이 반드시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과를 향한 쉽고 빠른 길은 없다는 점에서, '일'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에서, 그런 조급함을 조금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직장인, 프리랜서, (예비) 사업가, 크리에이터, 투자자 사이에서 무한한 로딩이 걸리고 있는 나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도 빠르게 성공하고 싶었다. 코인 투자로 하루아침에 자산가가 된 사람들이 부러웠다. 치열한 노력 끝에 '나만의 일'을 하고 있는 사업가나 크리에이터가 부러웠다. 하다못해 브런치에서 더 많은 공감과 구독자 수를 자랑하는 작가들이 부러웠다. 질투, 조급함, 동경, 그리고 어쩌면 분노와 좌절. 작게나마 내 머릿속을 괴롭히는 감정이다. 이성적으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안다. 그저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 꽤나 깊은 골이 파여 있을 뿐이다.
다행히 저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동기부여 콘텐츠에 정답이 없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다. 관련 콘텐츠를 열심히 탐독해 온 끝에 마주한 결론이다. 그렇다고 아예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인사이트를 들이부어도 소용이 없다. 단순히 콘텐츠를 접하는 건 성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색하여 체화하고, 성찰 끝에 적용하고, 현실에서 실천해야 한다. 요리를 하기로 했다면 계란 프라이라도 하나 깨 넣어야 하는 것처럼.
그럼 난 무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나. 빠른 성공? 애초에 성공이란 뭘까? 연봉이나 자산 규모, 명함에 적힌 내 지위, 일하는 컨디션이나 주변 관계가 될 수도 있겠다. 난 이들 각각의 상태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산다. 감히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만한, 그런 경지. 때론 지극히 세속적이고, 때론 지극히 이상적인 가치. 그 모두를 추구하는 삶을 받아들이고 오늘 하루도 살아내고 있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속도에 있다. 속력과 방향으로 이루어진 더 벡터값을 조금 더 뜯어볼 필요가 있다. 방향이 그저 물질적인 가치에만 가닿을 때, 그리고 주마가편 마인드로 빠른 속력만을 요구할 때 번아웃과 공허함이 찾아온다. 저 두 전제조건은 일의 과정과 자아의 호흡을 무시하고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방향성과 얼마큼의 속력이 적당할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먼저 일의 이유를 곱씹어야 한다. 그리고 나를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방향은 매번 변하더라도, 가능한 느리게 나아가야 함을 알았다. 방점은 '성공'이 아니라 '빠른'에 찍혀야 한다는 걸 이제야 배웠다. 일부러 정체되거나 부족한 삶을 살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지금의 내겐 그렇다. 다만 그 속력만은 충분히 제어하여야 한다는 걸, 도리어 느린 성공을 실천해야 한다는 걸 전제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내겐 그렇다.
빠른 성공은 빠른 실패를 불러온다. 정확히는 원상복구라고 해야 할까? 특정한 이슈로 떠오른 이들 중에 지금까지 기억나는 사람이 있는가? 일시적인 유행과 바이럴로 쿼리가 급증했지만 곧 묻혀버린 키워드는 얼마나 많은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성공은 도리어 독이 된다. 복권에 당첨되어도 급작스런 행운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불행해지는 것처럼. 그러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게 그릇을 키워야 하고, 과정을 만끽할 수 있게 꼭꼭 씹어야 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후루룩 삼켜버리면 그저 칼로리 덩어리에 불과하다.
돌이켜보면 난 참 느린 사람이다. 어린 시절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부모님에게 얼른 따라오라고 타박 아닌 타박을 들었고, 그렇게 천천히 밥을 먹다가는 군대에서 힘들 거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만화책방에서 뭘 읽을까 한참 고민하며 서있기도 하고, 대답을 재촉하는 환경에서는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래서 날 채근하지 않는 책과 글, 영화의 세계에 그토록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느릿느릿 살아가고 싶다는 나름의 성공 기준을 가만히 세웠는지도 모른다.
내 안의 용량을 점점 키워가며, 그 순간을 충분히 감각하며, 마침내 찾아올 소정의 결과를 하나하나 넘는 것. 그게 나에게 꼭 맞는 일의 모습임을 명심하며 산다. 느리게 움직이는 듯해도 어느새 저만치 원하는 곳에서 찬찬히 발장구를 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