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져왔던 나의 독서 생활. 나를 독서하는 삶으로 이끌었던 첫 시작은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작가의 창의적인 스토리 구성에 감탄하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반전을 마주하며 놀라기도 하고, 매력적인 문장을 발견할 때는 어떻게 이런 예쁜 표현이 가능한지.. 참 신기했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지금, 여전히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많은 소설을 읽지는 않는다. 자기 계발서와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책들을 읽다 보면 상대적으로 소설에는 손이 덜 가게 된다. 지난 3년간 읽었던 책 중 소설이 차지하는 비율이 26%인 것을 보면 “좋아하지만 많이는 읽지 못하는 장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때문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한정된 작가(내가 좋아하는 작가)만의 소설을 읽게 되는 나를 발견하였다. 기욤 뮈소, 히가시노 게이고, 앤디 위어의 소설 정도..? 그러고 보니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었던 적이 정말 드물었다. 한국 소설에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E-book 애플리케이션 메인 화면의 광고를 통해 ‘김초엽’ 작가님을 접하게 되었다.
‘공대 출신 작가의 SF소설’ 나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나 역시 공대를 졸업했고, 글 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작가에게 푹 빠져버렸다. 어떻게 이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엄청난 상상력으로 너무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단 생각에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꺼내 들었다.
“더스트 폴은 2055년에 시작되어 2070년까지 지속되었다. 더스트대응협의체는 2062년에 국제 공동 대응을 시작하였다. … 협의체는 2070년 5월에 더스트 완전 종식을 선언했다. 유엔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55년 대비 2070년에는 세계 인구의 87%가 감소했으며, 그중 90% 이상이 더스트 및 더스트 폴이 초래한 간접 요인으로 사망했다. [더스트 폴, 멸망의 기록] 중 ” —P 329 내용 —
이야기의 시점은 “더스트(먼지)” 재해 종식이 선언된 2070년으로부터 약 70년 후, 22세기이다. 주인공이자 식물학자인 아영은 ‘모스바나’ 식물에 대해 연구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모스바나’는 더스트 중후반 시기에 등장했다고 추정되는 침입성 잡초이다. 모스바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서식 면적이 줄어들었었는데, 최근 한국 중부 지역에서 갑자기 등장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아영은 현장에 나갔다 직원에게서 밤에 모스바나에서 푸른 광채를 보았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이에 아영은 어린 시절 ‘이희수’ 할머니의 집에서 푸른빛을 가득 품고 있는 정원을 본 기억을 떠올린다. 푸른 광채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기 위해 생물학 커뮤니티에 글을 써본 아영은 익명으로부터 의문의 사진 3장과 “링가노의 마녀들을 만나봐.”라는 짧은 메세지를 전달받는다.
링가노의 마녀들은 더스트 폴 시대에 살았던 나오미, 아마라 자매를 뜻하는 말이었다. 아영은 어려운 설득 끝에 나오미에게서 반나절의 인터뷰 시간을 성사시킨다. ‘프림 빌리지’ 마을의 구성원 나오미, 아마라, 레이첼과 지수를 중심으로 더스트 폴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시절 모스바나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져 나간다.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작가의 상상력과 탄탄한 스토리 구성에 푹 빠져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만, 다 읽고 역사와 기록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오미가 전해준 이야기의 진실 여부는 중요했다. 인간과 분리된 자연이 더스트에 빠르게 적응해 모스바나를 포함한 새로운 생물종을 등장시켰다는 이론, 더스트 종식을 맞이할 수 있었던 원인 등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정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과거(더스트 폴 시대)에 대한 기록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프림 빌리지의 존재를 입증할 확실한 근거는 없었다. 프림 빌리지에 살았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더스트 종식 이후로 70년이나 흘렀기 때문에 그들의 생사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아영은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를 더스트로부터 구해냈던 것은 마녀들의 연금술이 아니라, 더스트에 맞서 그것의 해결법을 치열하게 탐구하고 협의체를 이루어 디스어셈블러의 개발에 다다랐던 과학자들의 헌신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재건은 일부의 영웅들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위대한 협력으로 이룩한 것입니다. 부디 그 헌신과 역사적 진실을 어떤 신비로운 옛날이야기에 매료되어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동료 과학자 K로부터” — P247 내용 —
프롬 빌리지 사람들은 기록하지 않았다. 반면,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협의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과학적 지식으로 더스트 종식을 맞이한 것은 맞는 말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기록했다. K는 신비로운 옛날이야기보단, 공식적인 기록을 굳게 믿었다.
실제 역사 속에서 내가 믿었던 사실을 뒤집는, 하지만 기록되지는 못했던 엄청난 이야기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일 수도, 그럴듯하게 꾸며낸 것일 수도 있는 이야기..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참 헷갈릴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K의 메일 또한 이해가 간다.
역사에서 기록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록하지 못했던 부분도 노력을 통해 세상에 끄집어낼 수 있다. 주인공 아영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 험난한(?) 과정과 그것을 완전히 믿기까지 걸리는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면, 분명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구 끝의 온실”은 나를 더욱 김초엽 작가님의 팬으로 만든 것 같다. 주인공들에 대한 여운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한동안은 이 흥미로운 스토리가 계속해서 생각날 것 같다. 오랜만에 소설을 통해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다음으로 읽을 소설 찾을 때에는 한국 작가님들이 쓴 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