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학과 서예
중국 문학과 서예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떤 인물은 작품으로 남고 어떤 인물은 삶의 태도로 남는다. 왕희지(王羲之) 집안은 그 두 가지가 함께 살아 있는 보기 드문 경우다. 아버지는 글씨로 시대를 열었고, 아들들은 각기 다른 기질로 그 이름을 이어 갔다. 여기에 남송(南宋)의 나대경(羅大經)과 당(唐)의 권덕여(權德輿)를 나란히 놓으면, 문장과 품격이 어떻게 한 시대의 정신이 되는지도 함께 드러난다.
왕희지(王羲之, 303~361)는 동진(東晉)을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후세가 ’서성(書聖)’이라 부른 인물이다. 우군장군(右軍將軍)을 지낸 까닭에 왕우군(王右軍)으로도 불린다. 위부인(衛夫人)에게 글씨를 배우고 옛 비문을 두루 익힌 뒤, 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를 모두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의 이름을 오늘까지 붙들어 두는 것은 기교만이 아니다. 법도 속에 생동이 있고, 절제 속에 기운이 있다는 점에서 그는 한 사람의 명필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난정서(蘭亭序)》, 《황정경(黃庭經)》, 《악의론(樂毅論)》, 《십칠첩(十七帖)》이 거듭 거론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도사에게 《황정경》을 써 주고 거위를 얻었다는 ’서경환아(書經換鵝)’의 일화는, 그의 글씨가 이미 물건을 넘어 명망이 된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아들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이는 다섯째 왕휘지(王徽之)와 일곱째 왕헌지(王獻之)다.
왕휘지는 서예에도 능했지만, 후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자유분방한 성정으로 더 또렷이 기억된다. 그는 틀에 잘 들어맞는 사람이 아니었다. 홀[笏]을 짚고 산을 바라보며 서산(西山)의 기운을 말한 ‘주홀간산(拄笏看山)’ 일화는 단순한 기행이 아니다. 세속의 관직 속에서도 정신만은 바깥을 향하고 있던 사람, 속에 있으되 속에 매이지 않으려 했던 문인의 자태가 거기 담겨 있다.
왕헌지(王獻之, 344~386)는 아버지의 예술을 가장 또렷하게 이어받은 인물이다. 후대에 ’소성(小聖)’으로 불렸고, 아버지와 함께 ‘이왕(二王)’ 혹은 ’희헌(羲獻)’으로 병칭되었다. 관직으로는 중서령(中書令)에 올라 ’대령(大令)’이라는 칭호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뛰어난 재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치도무(郗道茂)와의 일이 그것이다. 공주의 하명으로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져야 했다는 전승은, 한 개인의 감정이 권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래서 왕헌지는 명필인 동시에, 재능과 운명이 끝내 일치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읽힌다. 그의 글씨가 유려한데도 어딘가 애잔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어쩌면 그런 생애의 그림자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왕희지 집안이 ‘가문의 명성’으로만 남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버지는 법을 세웠고, 아들들은 그 법 안에서 각자의 결을 만들었다. 누구는 품격으로, 누구는 기질로, 누구는 비극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이 집안은 단순한 명문(名門)이 아니라, 예술과 인생이 함께 전승된 하나의 문화적 계보라고 해야 한다.
나대경(羅大經)은 그런 계보와는 다른 자리에서 오래 남은 사람이다. 남송(南宋)의 문인으로, 자는 경륜(景綸), 여릉(廬陵) 사람으로 전한다.
그의 이름을 오늘까지 살려 준 것은 《학림옥로(鶴林玉露)》다. 시문 평론과 일화, 견문과 감상을 함께 담아낸 필기(筆記) 형식의 저술로, 체계적인 학술서라기보다 오래 읽고 오래 생각한 사람이 남긴 비평의 메모에 가깝다. 그래서 오히려 생기가 있다. 산중의 정취를 그린 <산정일장(山靜日長)> 역시, 화려한 수사보다 여백과 정조로 기억되는 글이다.
나대경은 시대를 주도한 인물이라기보다, 시대를 한 걸음 비켜서서 읽어 낸 사람이다. 그의 문장은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너무 가까이 붙들지 않은 문장이다.
권덕여(權德輿)는 결이 또 다르다. 당나라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로, 자는 재지(載之)다. 시와 문장으로 이름을 얻었을 뿐 아니라 조정에서도 활동했다.
권덕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문장과 정치가 분리되지 않던 시대의 인물이었다. 글이 곧 사람의 수양이었고, 문장이 곧 공적 세계의 품격과 이어지던 시대를 산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작품만이 아니라, 문장으로 공론을 떠받치던 당대 문인의 전형이라는 의미를 함께 지닌다.
세 갈래의 이름을 함께 놓으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보인다.
왕희지 가족은 예술이 어떻게 혈맥처럼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나대경은 읽고 기록하는 일이 어떻게 한 시대의 감각을 보존하는지를 보여 준다. 권덕여는 문장이 어떻게 공적 세계의 품격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한 사람은 붓끝으로 시대를 열었고, 한 사람은 산중의 정적 속에서 문장을 길렀으며, 또 한 사람은 글을 통해 세상과 직접 맞닿았다.
문학과 서예의 역사는 결국 작품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태도에 관한 역사다. 이 세 이름이 함께 그것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