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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희 Jun 03. 2022

<우라까이 하루키>를 이길 제목이 없어요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vol.5

음식 맛을 살리는 데는 MSG가 제격이듯 글맛을 찰지게 하는 데는 우라까이가 제격입니다. 맹점은 그 맛이 식초 두 바퀴 두른 레토르트 냉면처럼 감칠맛 나고 매력적이라, 몸에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거죠.


영화는 우라까이를 하지 않고는 창작을 해낼 수 없는 영화 감독 장만옥이 글을 쓰기 위해 목포로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목포를 ‘깨끗이 통과’하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우연히 여명이라는 남자와 마주치면서 그 다짐은 매섭게 흔들립니다. 주인공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홍콩 영화 <첨밀밀>을 우라까이(?)한 영화예요. 이렇게 한줄요약하면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를 다룬 달콤한 영화 같아 보이지만 중간중간 치고 들어오는 개그에 저항없이 웃음이 터지는 귀여운 영화입니다. (가령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처음 보자마자 ‘마기꾼’이라 부른다거나, 대화가 조금 잘 통하자 바로 방을 잡아버리고 싶다는 상상을 하다 생각 풍선과 말풍선이 뒤바뀐다거나….)



‘이렇게 귀여운 B급감성이라. 낯설지 않은데?’ 싶어 들여다보니 역시나 김초희 감독의 작품이더군요. 김초희 감독의 영화는 모르고 보다가도 “어라? 이거 김초희 감독 영화인가?”하고 알아차리게 되더라고요. (<산나물 처녀>를 딱 그런 식으로 알아봤어요.) 자기만의 독창적인 색채가 짙다는 거죠. 컷 하나, 대사 하나마다 김초희라는 지문이 찍혀 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그런 감독이 ‘다른 영화를 우라까이한 영화’라고 본인의 영화를 표현하다니, 저 같은 습관성 우라까이 애용자들을 기만하는 거죠.


개인적으로,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글로 쓰지 않았어요. 글이라는 게, 쓰다 보면 자신이 투영되기 마련이고, 또 한없이 깊게 파고들 수밖에 없잖아요? 그 정도로 깊은 속마음을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꺼내 보이고 싶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진짜’를 교묘하게 벗어나 빙빙 도는 이야기만 쓰게 됐죠. 일하던 곳은 솔직하고 공감가는 에세이가 자주 실리던 잡지사였는데, 반 농담삼아 “나는 페이크 에세이 전문 에디터다”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다른 결의 우라까이를 했던 것 같아요. 남의 인생을 우라까이해서 글의 소재로 썼던 셈이죠.


“ 나는 감독님이 다른 사람들 영화 여기저기 조금씩 베껴다가 우라까이 하는 거 다 알아요.

한 번이라도 자기한테 진짜가 되어보면 안 돼요? ”

- 극중 ‘오즈 야스지로’ 아역의 대사 中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나오는 대사인데요, 첫 장면부터 대뜸 처맞아 얼얼한 상태로 보긴 했습니다만. 영화의 후반부,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명의 대사와 맞물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입니다. 문장도, 영화도, 인생도, 남의 것을 우라까이 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자고 다짐하게 되죠. 이렇듯, 들으면 마음이 크게 일렁이는 명대사를 담백하게 툭, 던지는 것도 김초희 감독의 여러 매력 중 하나예요. 아직 필모그래피가 쌓이지 않아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할 수 없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근래 가장 애정하는 감독이라, 좋은 (여자)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누군가의 시간을 함께 좇으며 작품이 쌓이는 걸 보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김초희 감독의 행보를 따라갈 생각입니다.


* <우라까이 하루키>티빙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본 글은 뉴스레터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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