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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희 Jun 03. 2022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가자는 당연한 '상식'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vol.4

지난달 엄지 발톱 전체에 멍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풋살을 배우러 갔는데, 경기 도중 초심자의 의욕이 앞서 골과 엄지를 맞바꿨죠.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 종일 절뚝이며 걸었습니다. 평소라면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여유롭게 걸어도 채 10분이 안 걸리는데, 그날은 20분이나  걸렸죠. 벽에 달린 줄도 몰랐던 손잡이를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내려가던 중, 눈 앞에서 전철 문이 닫히더라고요. 하지만 뛸 수 없었어요.


역에서 전철을 타고 또 다시 역의 출구로 나갈 때까지 수많은 사람이 저를 앞질렀어요. 바빠 죽겠는데 왜 내 앞에서 얼쩡대냐는 듯, 답답한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요. 간혹 몇 명은 제 다리를 쳐다보고 지나갔어요. 아픈 것도 서러운데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아파서 죄송합니다. 절뚝거리면서 당신 앞길을 막아서 죄송해요. 근데 저도 제 갈 길 가는 중이거든요?'


친구들을 만나 사람이 북적이는 홍대거리 한복판을 걸어가는데, 아무리 애써도 친구들의 보폭을 맞출 수가 없더라고요. 자기들끼리 무어라 얘기하는 데 집중한 건지 어느새 저만치 앞서서 걸어가는데, 자칫하면 낙오될 것 같았어요. '저기, 얘들아, 나 아까부터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데, 좀만 천천히 걸으면 안 될까? 왜 자꾸 식당과 카페는 계단 많은 반지하나 2층만 가는 거니?'



장애인 교통권 보장을 위한 시위가 한창인 요즘, 그때의 기분이 울컥울컥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서울바닥에 뭐 이리 계단이 많은지. 어디 한 군데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답답했던 기분 말이죠. 내가 아픈 게 남에게 민폐가 된다는 기분은 덤이고요. 저의 경험은 시위에 나선 장애인들의 불편에 비할 게 못되죠. 아주 작은 발톱 하나에, 아주 잠깐 멍이 들었던 것일 뿐이니까요.


이런 경험이 없더라도 시위의 취지에 십분 공감했을 겁니다. 옳고 그른 건 꼭 경험해봐야 지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세상은 그걸 ‘상식’이라고 부르는데, 제 생각보다 상식의 선이 제각각 이라는 걸 깨닫는 요즘입니다. ‘시위도 상식선 안에서 해야지, 남에게 피해를 주면 누가 그 말을 들어주냐’는 논조를 볼 때 구르님의 영상 속 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상식은 비장애인의 상식인 거예요.

상식’이라는 말 속에도 장애인이 없는 거죠.”

(‘휠체어 타고 어떻게 대피해야 할까?’ 영상 중)


특히나 위 영상은, 지하철 역사 내 화재시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대피로는 없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 더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화재 경보가 울리면 자동으로 엘리베이터 운행이 중지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엘리베이터로 대피할 경우 갇히거나 질식의 위험이 있어 애초부터 탑승하지 못하도록 작동을 중지시킨다고 합니다. 그럼 계단을 오를 수 없는 휠체어 이용자는 어떻게 대피할까요? 놀랍게도, 대피 방법이 없습니다. 구르님 채널에는 주로 대학생활을 담은 브이로그나 '이달의 휠체어' 시리즈 등이 업로드 되는데, 이 영상만큼은 취재 다큐멘터리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모든 메시지는 내용이나 의도, 중요도에 따라 적합한 그릇에 담겨 전달됩니다.


줄곧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을 겪던 장애인들이 '시위'라는 그릇에 메시지를 담아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생존권보다 본인 기준의 상식을 내세우는 이들은 과연, 시위를 하기 전까지 장애인들이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요? 그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함께 마련할 수 있는지는 전혀 고민해보지 않았겠죠? 좋은 (여자) 사람을 소개하며, 구독자 선생님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한 번씩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본 글은 뉴스레터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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