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자)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vol.8
22년 서울 국제 여성영화제에서 한예리 배우의 첫 데뷔부터 지금까지 주요 작품 10편을 상영하는 특별전 <예리한 순간들>이 진행되었는데요. 그 중에서 유일한 드라마 상영작인 <연우의 여름> 속 한예리 배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연우의 여름>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디 밴드 보컬을 하고 있는 연우가 짧은 여름동안 ‘나’를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 단막극 드라마입니다. 병가를 낸 엄마의 자리를 대신해 연우가 대기업 건물의 청소부로 출근하면서 드라마는 시작하죠. 연우는 그 건물에서 사내방송 아나운서로 일하는 옛 동창 지완을 우연히 만나 머쓱한 재회를 합니다. 지완은 소개팅 자리에 나가기 싫어 연우에게 대신 나가달라 부탁하고, 연우는 하루 동안 지완의 이름과 옷을 빌려 소개팅 자리에 나갑니다. 스타일이 정반대인 지완인 척 연기하기 힘들었던 연우는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한강을 걷는 등 자연스레 본모습대로 행동을 하고, 그 모습에 소개팅 상대 윤환은 서서히 호감을 쌓아가죠.
부탁받은 대로 첫 만남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연우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 뒤로도 계속 지완인 척 구두와 정장 치마를 갖춰 입고 윤환을 만나러 갑니다. 약속 시간이 되면 퇴근한 척 하기 위해 대기업 건물에 들어갔다가 로비를 통해 나오고, 집에 바래다 주겠다는 윤환에게 번지르르한 동네의 오피스텔 주소를 말하게 되죠. 이를 지완이 알게 되고, 연우는 그동안 거짓으로 꾸며온 찰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밝힐 수 없었던 시간들을 말이죠. 그리고 비로소 나다움을 찾아 이를 노래합니다.
보고 나면 왜 영화제에서 이 단막극을 상영하기로 결정했는지 단번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라기엔 한 편의 단편영화 같은데, 이러한 극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게 바로 한예리 배우의 연기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죠. 들키는 순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위태롭게 거짓말을 하는 표정. 부끄러움을 실토하는 태연하지 못한 목소리. 마음 속에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조용히 엄마를 뒤에서 끌어안는 움직임. 당시 이 드라마로 한예리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단번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배우라는 걸 알 수 있었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저도 요새 이것저것 따라가느라 조금 힘들거든요.
그냥 바람 맞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쉬어요, 우리”
- <연우의 여름> 연우의 대사 중
잔잔한 목소리로 흐르듯 말해서 평범한 대사도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게 한예리 배우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해요. 영화 <춘몽>에서 주영이 예리에게, "시예요, 언니가."라고 한 것처럼 말이죠. 미처 영화제에 오지 못했다면, 이번달은 '한예리 필모 도장깨기'를 하며 영화제의 여운이라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내년 여성 영화제는 꼭 함께 해요!)
*<연우의 여름>은 KBS 공식 홈페이지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본 글은 뉴스레터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에 발행되었습니다.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매달 1일 발송됩니다. 세상의 멋진 여성들을 조명하고, 이들에게 찬사를 띄우는 러브레터에 가깝습니다. 디자이너 몽미꾸와 에디터 윻, 또가 보내는 러브레터를 받아보세요.
| 인스타그램 @to.someonen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