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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대 Mar 27. 2022

창문 틈새 바람에 잠을 설치다.

삶에 잡초는 없다.

잠결에 한기가 느껴져 눈을 떴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인가? 꿈을 꾼 것 같지는 않은데, 눈을 뜨지도 못하고 오만가지 생각만 든다. 베개 오른쪽에 있는 핸드폰을 보니 5시 5분이다. 짜증이 몰려왔다. 아직 자야 할 시간인데 무엇이 나를 이 꼭두새벽에 일어나게 했을까. 이불이 걷혀 있는 오른쪽 어깨 위로 찬바람이 느껴진다. 이불을 끌어 당겨 어깨를 감싸 보지만 얼굴로 다가오는 찬바람은 피할 수 없다. 짜증이 궁금증으로 바뀐다. 어디서 찬바람이 들어오는지 궁금해졌다.


커튼을 살짝 여니 베란다로 연결되는 창문에 조그만 틈이 보인다. 아!!! 이게 내 잠을 깨웠구나. 원인을 찾으니 허탈해졌다. 오 센티도 안 되는 저 틈이 귀중한 아침시간을 빼앗아 버렸다. 얼른 창문을 닫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겨서 잠을 청해 보지만 이미 잠은 먼 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Welcome to HELL'. 아침을 깨운 작은 창문이 내게 지옥행을 선물했다. 그것도 아주 이른 새벽부터.


    



아침잠을 포기하니 한결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거실로 나가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멍하니 베란다 밖을 바라본다. 아직 해가 뜨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간간이 보이는 실루엣은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청소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보다 더 일찍 찬바람을 맞았나 보다. 순간 내가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게으른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 선생님은 이제 칠순이 넘으셨을 텐데.


멍 때림을 멈추고 거실 한편에 앉아 TV를 켜니 온갖 소식을 전하는 24시간 뉴스 채널에서 속보를 전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싸우고, 코로나 확진자가 최대를 기록했다는 등. 기분 좋은 소식은 없고 온통 미간을 찌푸리는 소식들뿐이다. 점점 TV를 멀리하게 되고, 열정적이었던 정치를 거부하게 되고 그리고 이슈에 눈 감게 된다.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일들이 내 일상이 되었다. 창문 틈새로 들어온 찬바람만이 내가 이른 아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품목이 되었다.


   



작은 틈 사이로 들어온 찬바람이 고맙게 느껴진다. 갑자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기분이 고마움을 느끼는 듯하다. 일찍 일어남으로 인한 짜증이 사라지니 고마움과 작은 행복이 다가온다,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틈새로 인해 새로운 아침 변화를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전히 눈은 게슴츠레하고 하품으로 인해 연신 입 주위로 다가가는 오른손이 힘겹겠지만, 그래도 좋다. 신새벽을 맞이한 것이 얼마만인가?


삶은 누구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나 될 수 없다. 단 한 명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수많은 경쟁을 해야 하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슬픔을 이겨내야 한다. 그렇다면 내 삶을 지배하는 나만의 주인공은 어떤가? 넓은 들판에 수많은 꽃들과 나무들이 있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연을 더 화려하게 한다. 하지만 그들 아래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잡초가 없다면 넓은 들판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잡초는 오로지 그들이 가진 역할을 충실해 살아갈 뿐이다.


내일 새벽, 작은 창문 사이로 찬바람이 다시 들어온다면 또 짜증이 날 것이다. 내 아침잠을 깨우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오늘보다는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잡초가 자신이 가진 생명력을 조금씩 세상에 드러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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