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잡초는 없다.
회사 뒤편에 작은 산이 있다. 도당산 그리고 춘의산. 모든 산들이 그러하듯 산 하나는 다른 산과 연결이 된다. 점심을 먹고 포만감을 느끼며 도당산 산책을 한다. 보통 12시 30분을 전후로 산책을 시작하면 30분 정도 산책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도당산 허리춤에는 화사한 장미가 줄지어 있는 백만 송이 장미원이 있다. 5월 초까지는 꽃망울만 품고 있더니 어느새 울긋불긋한 장미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빨강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곳을 지나니 노랗고 하얀 장미들이 장관을 이룬다. 입구에서부터 갑자기 세상이 환하게 빛나는 것이 아마 장미꽃들이 대낮의 태양을 맞이해서 그런가 보다. 늘 고개를 숙이고 살다 보니 하늘을 올려다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늘은 어깨를 펴야만 볼 수 있는데 일상이 주는 고민 생각에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장미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장미꽃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맑았다. 아이들 눈과 같은 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내게 따뜻함을 주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과 포근함이었다. 장미가 이토록 예쁜 꽃이라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죄송한데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50대로 보이는 여자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런 광경이 언제였던가 생각을 해보면 아마도 오래전 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코로나로 모든 행사가 중단되고 입구부터 빨강 테이프로 진입을 막는 세월이 벌써 2년이 넘었다. 이젠 탈출구가 보이는, 터널 마지막을 지나고 있다.
"조금 왼쪽으로 가보세요. 거기가 더 예쁜데요....네.. 좋아요.. 찍습니다...."
찰칵 소리와 함께 핸드폰 사진기는 열심히 자신이 가진 멋짐을 뽐내며 중년 여성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오늘은 잊을 수 없는 또 하루가 될 것이다.
장미 공원을 지나자 작은 산책길이 나왔다. 오솔길로 만들어진 길 한편에 쉼터들이 마련되어 있다. 쉼터 곳곳에는 서너 명씩 돗자리를 깔고 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이며 김밥을 나누어 먹고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이제 우리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왔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장미꽃보다 그들이 뿜어내는 웃음소리가 더 정겹게 들린다. 부러워서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나도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들과 함께 웃으며 하늘을 함께 보고 싶었다.
이제 도당산 5월 장미는 스르르 사라지고 6월에 새 생명이 살아날 것이다. 늘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지만 이곳이 주는 감동은 매번 다르다. 오늘이 장미가 주인공이었다면 내일은 이름 모를 새가 내 주인공이 될 것 같다. 사라지지 않는 한 그 감동은 언제나 내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하늘도 늘 그곳에 있고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내려다본다. 오로지 변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뿐이다. 자연은 늘 변하지만 또 언제나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사람도 늘 그 자리에서 언제나 그렇게 나와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내 욕심인가 보다.
5월 백만 송이 장미원에는 행복과 웃음이 있다. 도당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어느새 시원한 여름 바람으로 변하고 있다. 시간이 변해 뜨거운 여름이 찾아오더라도 이곳 백만 송이 장미원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장미가 가진 색깔보다는 장미가 가진 뜨거운 열정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