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잡초는 없다.
"지금 몇 신데 이제 들어와?"
"사무실 사람들이랑 얘기하다가 늦었어. 엄마는 별일도 아닌 걸로 왜 화를 내고 그래?"
억울하다는 듯 딸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방에 들어가더니 바로 침대에 눕는다. 새벽 1시 반이다.
딸은 5년 동안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졸업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취업이 쉽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다녔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러 곳에 면접을 봤지만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엔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이며 지냈지만 1년이 지나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며 지냈는데 아내는 오죽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본인은...
구직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화상이며 대면 면접을 보더니 딸이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고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신이 난 표정이었다. 서울에 있는 외국인 강사 컨설팅 회사라 자신이 공부한 것들을 활용하기에도 좋을 것이라고 신이 나서 얘기를 한다. 아마 딸도 그동안 맘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합격 연락을 받자마자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언제까지 할 것이며, 며칠은 여행이라도 갔다 오겠노라고 선언을 한다. 그동안에도 많이 놀고 많이 다녔는데 새삼스럽게 여행을 간다고 하니 웃음만 나왔다. 그래도 이번엔 즐거운 마음으로 갔다 올 수 있어서 좋겠다. 속으로 여행 갈 때 용돈을 줘야 하는지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출근을 앞두고 3일 동안 신나게 놀다가 첫 출근을 하고 이틀째 되던 날 환영식 겸 회식이 있어 늦게 귀가를 한 것이었다.
아내는 겉으로는 딸이 늦은 것을 나무랐지만 출근을 하는 딸의 뒷모습이 흐뭇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잔소리는 여전하지만 이제는 회사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격려가 더 많이 들리는 것을 보니 입가에 작은 미소가 생긴다. 한편으로는 회사 생활에서 감당해야 할 좌절과 고통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누구나 마찬가지로 처음 하는 일은 늘 실수 연속이고 때로는 좌절하게 된다. 이러한 일을 극복하고 감내하면서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나이 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실수도 없었고 모든 일에 베테랑이었으며 남들로부터 꾸중을 듣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이 부러웠으며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젊은이들이 가진 청춘과 도전이 부러웠다. 젊음이 뿜어내는 열기를 다시 느끼고 싶었다. 나이가 늘어가는 것에 반비례하게 행복은 줄어드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나이가 행복의 기준은 아닌 것 같다. 행복은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느낌일 뿐 나이와 상관없는 감정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삶을 바라보는 여유의 행복이 있으며 젊은이는 미래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행복이 있다. 감정은 외부의 어떤 것에 휘둘리지 않는 고유의 감정이다. 행복은 특히 더 아름다운 자신만의 감정이다.
딸이 회사 취직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봄이면 향긋한 꽃냄새를 즐기고, 가을이면 화려한 단풍을 가슴에 느끼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때론 생활이 힘에 겨워 좌절하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일어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움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어도 언제나 자신 있고 당당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너무 당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엄마, 내일부터 잘할게."
이 한마디가 행복으로 느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