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자주 바뀌었고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꿈을 늘어놓는 허언의 삶을 반복했다.
그게 괴롭고 괴로웠다. 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봐, 개꿈으로 남을까봐 그게 두려웠다. 나에게 꿈은 열등감 덩어리였고 말하기 꺼려지는 주제였고 가장 나를 낮게 만드는 단어였다.
남들은 꿈을 잘만 꾼다는데 남들은 화려한 꿈도 꾸고 그에 따른 실천도 잘 하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늘 꿈이 멀어져 있었고 꿈과 친하지 않았다.
학창시절에는 매년 꿈을 적는 란에는 막연하게 ‘교사’라는 꿈을 쓰게 되었다.
당시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을 설득하기에 무난한 직업군인 ‘교사’는 사실 나의 진짜 꿈이 아니었음에도 대충 그렇게 둘러대었다. 나의 꿈에 대해 미래에 대해 그리는 일이 불안해서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방송작가’라는 직업군을 발견하게 되었고 글을 쓰는 일이 멋있어 보인다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내 꿈은 ‘방송작가’가 되었다. 내가 진짜 방송작가를 원했을까? 돌아보면 절실함의 강도는 크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무난한 무언가로 둘러대지 않고, 나만의 기준과 방식으로 꿈을 정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평범하기 평범한, 이도 저도 아닌 학창시절의 삶을 반복하며 어느덧 대학교와 전공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는 늘 그렇듯이 모호한 꿈과 그나마 가까운 ‘문예창작학과’를 지망하게 되었다.
19살까지는 학교 커리큘럼이 있었고 선생님과 부모님이 요구하는 학생의 삶이라는 게 주어졌는데 갑자기 20살이 되어 성인이라는 나이가 되고 어른이 되고 나니 어른임에도 꿈이 없다는 게 부끄러워지고 불안했다. 학창시절에는 20살 대학교만 가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던 어른들이 있었는데 막상 20살이 되니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로움이 낯설었고 꿈없는 인생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