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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Mar 27. 2024

케익보다는 돈이다.

다음날이 큰 아들 생일이라 케익을 사들고 들어갔다. 밤 12:00 넘어까지 아르바이트하기 때문에 아침에 축하해 주기로 했다. 축하해 줄 동생들이 새벽까지 기다려줄 수는 없었다. 일단 학교 가기 전에 촛불에 불을 붙이기로 했다. 하지만 아침이 되고 보니 2호, 3호는 학교 가기 바쁘고, 1호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상황에서 무리하게 축하를 진행하기도 애매했다.

생일인데 그래도 축하는 해주어야겠기에 저녁에 하자고 했다. 케익과 폭죽, 고깔모자가 담긴 봉투는 뒷배란다로 들어갔다. 점심때 지인을 만나 생일을 알렸더니, 그런가 다 필요 없단다. 성인 아들이 케익에 초를 불고 싶겠나며 그냥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 자기 생일에 초도 못 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너무 바빠서 늦게 들어가느라 케칙을 사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마음에 담아 둔 모양이다.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모르지만 그 말은 부모 기억에 깊이 자리했다.

저녁 식사를 하자는 동료의 제안까지 미루고 일찍 집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들은 아르바이트 출근한 뒤였다. 주인공 없는 케익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들이 성인이 되고 나니 서로가 너무 바쁘다. 부모는 부모대로 일이 있고, 아들은 아들대로 바쁘다. 중학생 동생들도 학원에 다녀오면 시간이 잘 맞지 않으니 생일 축하하나 하는 것도 이리 어렵다. 앞으로 축하는 더 힘들어 보인다.

내가 고등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물이야 받았지만 우리 집은 원래 케익에 초끄는 행사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생일은 왜 그랬는지 무척이나 섭섭했다. 삐진 채로 방안에 누워있는 내게 어머니가 돈을 쥐어주셨다. 친구들과 나가서 축하도 하고 놀다 오라고 하셨다. 케익이란 주제는 어디 가고 친구들 불러 먹으러 나간 기억이 난다. 그 나이가 되면 부모와 하는 축하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편이 더 낫다는 것쯤은 나도 알겠다.

이제 생일은 겨우 한 시간 남았다. 케익을 들고 아들이 아르바이트하는 치킨가게에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우리 가족 단합도 할 겸, 축하도 할 겸, 핑계 김에 생맥주도 한잔하면 딱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3호가 피곤하다고 못 나간다고 투정이다. 2호만 겨우 챙겨 옷을 입혔는데 사람 많은 데서 케익들고 축하해 주는 건 싫다며 거절한다. 결국 케익은 뒷배란다에서 나오지 못했다. 가족이 많으니 의견을 하나로 만들기가 어렵다. 아이들이 커나가니까 더 쉽지 않다. 어렸을 때나 품 안의 아이들이지 점점 자신의 의견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섭섭한 건 어쩔 수 없다.


축구 경기가 있어 치킨집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사장님이 아르바이트생 가족 왔다고 반겨주셨다. 여사장님은 아들이 일하는 주방으로 아내를 안내했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하단다. 그 마음 알 듯하다. 그래서 올까 말까 망설였는데 역시나 고생하는 아들을 보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군대는 어찌 보내려고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아마도 눈물바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절대 안 울 것 같다고 자부하던 아내도 결국은 엄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사장님이 서비스라고 몇 가지를 더 내오셨다. 아내를 보고 걱정 말라며 안심을 시켜주신다. 키도 크고 믿음직해서 뽑았는데 무척 성실하다고 한다. 아들의 사장님으로부터 성실하다는 칭찬을 듣는 기분은 색다르다. 잘 키우셨다는 말이 이렇게 기분 좋은 말이었구나. 아내는 몇 살 아래로 보이던 여사장님과 따로 만나기로 하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아내는 어딜 가도 붙임성이 참 좋다. 생일인데 해줄 건 없고 갈 때 치킨 하나 더 보내겠다는 사장님 때문에 안심이 된다. 치킨가게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아들이 더 고생할 수도 있다는 양가의 마음이 작용한다.

잠시 후 테이블로 나온 아들에게 케익을 못 가져왔다고 미안하다고 했더니, 돈만 보내주시면 된다며 해 맑게 웃는다. 그 자리에서 카카오 전송으로 바로 보내주었다. 그래도 바로 받으면 멋쩍은지, 주방으로 돌아간 후 잘 받았다는 답이 왔다. 역시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 맞구나.

아들의 20번째 생일은 아무 일도 없이 이렇게 지나갔다. 우리 때는 성인식이다 뭐다 해서 20살 생일에 별걸 다했는데, 요즘 세대는 그런 게 없나 보다. 19살로 성인 나이가 바뀐 탓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때와는 참 다른 모습이다. 아니면 부모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괜히 케익 걱정만 했다. 베란다에서 자기 일을 다하지 못한 케익을 가져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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