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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Dec 16. 2022

2022 당신의 선택은?

아름다운 스위스의 루퍼스빌



"지독히도 추운 겨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불평을 멈추는 일이었다."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제니스 캐플런-


12월. 한땀 한땀 부지런히 바느질해온 한해가 마무리 매듭을 지어간다. 특히나 다채로웠던 2022년. 내 몸이 하나였단게 믿기지 않을만큼 부지런히 지구 방방곡곡을 탐험했다. 텅빈 가슴에는 종종 냉랭한 생각이 눈보라 쳤고 뜨거운 사랑이 소나기처럼 내렸다. 해가 뜨고 지듯 내 마음도 그러했다. 어떤 날은 홀로 고요한 순간이 즐거웠고 또 다른 날에는 함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뉘엿뉘엿 열두달을 회상하다보니 위대한 한가지 진리 앞에 숭고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얼마나 쓰디쓰든 그에 대한 반응은 나의 몫임을.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로 인해 시간의 자서전 위 각자 다른 장면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2022년을 투박하게나마 이렇게 써내리고 싶다. '숱한 도전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스위스 루퍼스빌의 진풍경

돌이켜보면 지난주에 다녀온 스위스의 소도시 루퍼스빌에서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워낙에 꽉 짜여진 비행 스케줄때문에 시간을 내서 꼼꼼히 여행계획을 세운다는게 어렵기도하고, 또 세운다고 해서 그대로 될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언제나 또다른 재미가 되어준다. 그리고 나를 더 강하게, 시야가 넓어지게 도와준다. 그렇다면 이제 두가지 시선으로 스위스에서의 하루를 인도하겠다. 먼저는 일어난 일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겠고, 그 다음은 내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였는지가 따라올 것이다.

틈을 통해 보는 모습_Rupperswil, Switzerland

1. 코 앞에서 30분 단위의 기차를 놓쳤다.

2. 기차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 멀미가 난다.

3. 호수 앞에 벤치에 앉았는데 수십마리의 갈매기떼가 둘러싼다.

4. 석양을 보고싶었지만 수평선 주위로 구름이 두텁게 끼여있다.

5. 해가 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빗방울은 굵으나 우산이 없다.

스위스의 겨울

다시 써보기

1. 운 좋게 숙소 근처에 기차역이 있단걸 알게됐다. 사람들을 따라 걸어보길 잘했다. 하지만 티켓을 끊는 기계가 영 말을 듣지 않았고 바로 코 앞에 기차가 지나가는 걸 그저 넋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벌써 해가 중천인데 30분이나 딜레이 되다니. 취리히에서 라퍼스빌로는 1시간 정도 기차를 타야하는데 왠지 불안해진다. 그 까닭에 급히 지나가던 한 여성분을 붙잡고 도움을 청한다. 절박한 나를 보고 헤드셋 한쪽을 벗더니 싱긋 웃는 미소로 친절하게 타야하는 터미널부터 기차 번호까지 상세히 안내해주었다. 그 친절함에 내 마음이 녹아 시작이 청량해진다. 만나서 반가웠단 감사의 인사도 빼먹지 않는다.

아름다운 루퍼스빌과 빨간 벤치

2. 2층짜리 기차에 자리가 넉넉하진 않다. 그래도 창가좌석이 하나 비어있어 머리를 툭 기대고 밖을 바라본다. 가만보니 기차가 가는 반대 방향의 좌석에 앉아있다. 흔들리는 기차에 멀미가 슬슬 올라온다. 이를 어쩌나,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쉴수 밖에. 하필 앉아도 반대편임에 불평이 나오려 할때 즈음, 맞은편 승객이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저 방향에선 햇볕을 견디느라 더 수고로울수도 있었겠구나. 가벼운 멀미가 조용히 지나갈 무렵이다.

멀리 보이는 설산

3. 스위스는 곳곳에 빨간 벤치가 놓여있다. 이 강렬한 색이 초록의 풍경과 푸른 하늘, 더 멀리 뻗어진 눈덮힌 설산과도 참 조화롭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눈길을 호수를 향해 멍하니 둔다. 그 때 갑자기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순식간에 공중으로 둘러쌌다. 그리고선 나를 정확하게 쳐다보며 날개를 퍼득이고 무어라 깍깍 요구한다. 정말 당혹스러운 순간 어깨가 잔뜩 움츠러 들었다. 그때 마침 손에 들고 있던 감자튀김이 퍼뜩 생각이 났다. 조금 떼어 휙하고 던지니 갈매기들이 그곳으로 우루루 몰려간다. 아, 배가 고팠구나. 방금 튀긴 노릇한 감자 튀김을 조금씩 떼어 최대한 골고루 뿌려준다. 하다보니 이것도 참 재미있다. 배를 채운 녀석들은 몇번 빙빙 돌더니 멀리 다시 날아간다.

던져주는 것을 다 먹고 흩어지는 새들

4. 라퍼스빌은 현지인들 사이에 아름다운 노을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스위스의 날씨는 곧 수평선을 구름으로 뒤덮었고, 빛이 흐드러진 하늘을 보는건 포기해야했다. 해가 지는것도 아쉬운데, 석양도 누릴수 없다니 서운한 마음이 두배다. 이렇게 된 김에 일찍 돌아가자 싶어 천천히 기차역으로 돌아간다. 몇 걸음 걷다 미련 가득한 시선으로 하늘을 돌아보니 구름장막 뒤로 둥그런 해가 선명하게 보인다. 아주 깨끗한 원이다. 이것도 나름 진풍경인듯하다. 해를 두 눈으로 똑바로 마주할수 있는 유일한 순간 중 하나니까.

낙조_Rupperswil, Switzerland

5. 돌아가는 기차에서부터 한두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내리고 나서는 꽤나 무거워졌다. 여러 유럽 국가를 다니다보니 비를 맞는 것엔 익숙하지만 왠만하면 작은 우산이나 하다못해 모자라도 챙겨다니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없다. 그대로 비를 맞으며 호텔로 터벅터벅 돌아가는 길. 마지막으로 비를 맞은게 언제던가 곰곰이 떠올려 본다. 며칠 전 친한 친구와 주고받았던 문자에서 한국에 가을비가 온단 소식에 '한국에서 내리는 비는 진짜 낭만적이지'하고 답을 했었는데. 스위스에서 내리는 비도 생각보다 맞을만하다. 오늘의 나들이가 낭만이 되는 엔딩 크레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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