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리아 Feb 22. 2023

당신은 나의 동반자

유후인, 생애 첫 가족 해외여행



구름으로 소복히 덮힌 하늘. 덕분에 햇살은 부드럽게 두 뺨에 내린다. 요란스레 덜컹이던 기차는 어느덧 익숙해지고, 꼿꼿이 세워둔 몸을 슬그머니 옆에 기댄다.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냄새. 언제나 그리운 어머니의 향을 맡으며 눈꺼풀에 힘을 푼다. 들떠서 왁자지껄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열차 안 승객 모두 고요한 쉼을 누린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에 몸을싣고, 마음속에 꿈꾸던 곳에 점차 가까워짐을 잔잔하게 기뻐하며.

유후인 노모리 열차와 그 안에서 즐기는 도시락

"다음 역은 이 기차의 최종 목적지인 유후인 입니다. 두고 내리시는 물건이 없는지 잘 확인 부탁드립니다." 잠시 졸았나보다. 새벽부터 서둘렀던 탓에 나도 모르게 긴장했는지 도착했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한명 한명 얼굴을 둘러보니 옅은 피곤함 속에 아이같은 호기심이 비친다. 우리의 첫 해외여행에 대한 설렘은 경상도 특유의 털털함에도 감추어지지 않는다. 기차에서 내리니 코 앞에 바로 펼쳐진 높다란 유후인산. 아기자기해 보이는 상점들 뒤로 우직하게 솟아있어 그런지, 노오란 색이 온화하다. 드디어 도착했다. 앞으로 약 이틀 간 머물 곳.

유후인 역 앞에 솟은 산과 상점이 늘어선 거리

유후인은 일본 특유의 감성이 돋보이는 낮고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골목골목 친해지며 다니다보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가있다. 중심가에서 살짝 떨어진 온천료칸(온천이 달린 일본식 숙소)에 짐을 풀고 여기저기 뚜벅이다보니 어느덧 해가 떨어졌다. 여기는 어둠이 찾아오면 모두 문을 닫고 귀가하는 문화이기에 우리도 발걸음을 돌려 늦지 않게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가는 길에 근처 편의점에 들려 이것저것 눈에 보이고 손에 집히는 대로 담는다. 소위 말해 편의점 털기. 일본 여행의 묘미다. 거실에 사온 음식들을 그대로 두고 일단 온천으로 직행. 2박 3일의 꽉찬 일정에서 최대한 편하게 잠을 자고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 개인 노천온천이 있는 곳을 예약했다. 워낙에 목욕을 즐기는 우리 가족이라 뜨끈한 물에 퐁당 뛰어들며 기쁜 탄성의 파도를 만든다. 겉바속촉이라 했던가. 지금 이 곳은 겉차속뜨다.

거울에 비친 우리가족과 노천온천

한참 노천욕을 즐기다 하나둘 샤워를 마친후 거실로 자연스레 집합. 늦은 저녁 겸 이른 야식 타임이 시작된다. 다다미방(일본식 깔개가 덮힌 방) 식탁 위는 어느 식당 부럽지 않은 만찬잔치다. 서로 이게 맛있고 저게 맛있다며 권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가슴 깊이 행복이 느껴진다. 마음이 어디있냐 묻는다면 지금은 그 길을 알려줄 수 있겠다. 맛있는 걸 먹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 했던가. 엄마는 휴대전화를 꺼내 언니에게 영상통화를 건다. 일 때문에 함께 오지 못한게 뭇내 아쉬웠나보다. 다음 날 편의점에 한번 더 들러 가방에 차고 넘치도록 먹을거리를 왕창 집으며 언니를 주겠다하는 모습에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도 좋아할거 같다며 하나 둘씩 더한다. 몸은 떨어져도 사랑은 끝까지 붙어있게 한다.

편의점 음식들과 또다른 편의점을 발견해 들어가보는 길

숙소에서 나오면 바로 펼쳐지는 긴린코 호수. 온천수가 아래에 흘러 차가운 아침 공기와 만나 물안개가 자욱하다. 차분한 날씨 아래 금빛 잉어 한마리가 유유이 헤엄쳐 가는 모습에 잠시 멈추고 눈으로 따라간다. 때마침 한 마리의 물새는 날아오르고, 근처 신사 기둥에 앉아 날개를 말리려 퍼덕임마저 평화롭다. 호수를 머금어 젖은 공기가 폐 깊숙히 들어온다. 잠시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부디 이 여유를 오래 기억하길. 매일을 여행하듯 걱정없이 거닐며 살길 한 마음으로 모은다.

Kinrinko Lake_Yufuin, Japan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후인에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플로랄 빌리지. 그 특유의 감성으로 작은 방갈로들을 지어 각자 다른 만화들로 테마를 정해 꾸며두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음악들, 그 익숙한 멜로디와 목소리로 분위기는 편안하다. 이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언니에게 줄 이름을 각인한 젓가락 한 세트를 샀다.

플로랄 빌리지 안 이웃집 토토로

지구별 다섯개 대륙을 부지런히 다녔지만, 바로 이웃나라에서 지낸 3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으로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답을 알려주지 않아도 낮에 뜬 달만큼 선명하다. 시간 안에서 춤추며 다음 장으로 삶을 넘겨 갈수록 가족의 자리는 짙어진다. 살아가는 목적이 내가 아니라 네가 되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기도 했다가 가장 행복하기도 한다. 오늘도 글을 마무리하며 오랜 소원을 꺼내어 본다. 그리고 다시 묻어두며 그 위를 잘 토닥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