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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Mar 06. 2023

맛있는 것 옆에 맛있는 것

맛.잘.알 홍콩



기나긴 봉쇄 끝 드디어 여행객들을 다시 맞이하기 시작한 홍콩. 겨울휴가 이후 운좋게도 다음 비행 스케줄표엔 홍콩이 빛나고 있었고, 많은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채 그곳으로 향하게 됐다. 한국에선 4시간 남짓한 비행으로 도착할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여행지지만 이 곳 도하에서는 거의 9시간동안 기내에 몸을 실어야했다. 오랜만의 비행이기도 하고 시간대가 밤이라 피로감이 짓눌렀지만 왠지 기대되는 마음은 감출 수 없다. 미식의 도시이자 수많은 명작이 탄생한, 한때 아시아 영화의 중심지가 아니었던가.

홍콩 공항 근처에서 볼수있는 풍경

아직 칼바람이 불던 한국의 2월. 하지만 홍콩의 공기는 달랐다. 마치 초여름과 같은 눅진함과 강력한 오후의 햇빛까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소매까지 두툼하게 내려오는 유니폼을 당장이고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라, 생각보다 시원한걸? 지난번 보다는 낫네.” 동료 승무원의 한마디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그렇냐고 재차 확인한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무거웠던 유니폼을 훌훌 벗어버리고 한결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후 후다닥 기차를 타러 내려왔다. 홍콩의 시내로 가는 법은 쉽다. 그리 넓지 않은 크기에 교통서비스는 훌륭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확인하고 그에 알맞은 기차를 올라타면 끝!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라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주변은 맛집이 밀집되어있고 홍콩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도 딱 좋다. 갈 곳은 정했으니 가벼운 맘으로 기차에 오른다.

mid-levels escalator_Central and West Distict, Hongkong

분명 이 곳이 개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 소식만을 고대하고 있던 사람들의 수는 어마어마했나보다. 말 그대로 멜팅 팟(melting pot, 다양한 사람이 섞인 용광로)이다. 전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너나 할 것없이 식당과 길에 가득하다. 귀를 때리는 언어들도 마찬가지. 역시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은 현지인을 찾기가 힘들구나, 어쩌면 이 곳은 진짜 홍콩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비교적 한적한 뒷쪽 골목

그럼에도 먹거리가 가장 유명한 곳이니 이것저것 먹어보자하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디딘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지만 중간중간에 샛길이 나있기 때문에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빠져서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할수 있다. 그렇게 첫번째로 시도한 음식은 홍콩식 쌀국수. 심심한 듯 그 안에 오랜 정성이 숨어있다. 별거 없어 보이지만 사실 육수를 내기 위해 들이는 시간이 국물에 가득 베어있고, 무심하게 얹어준 소고기 토핑은 입안에서 여러 갈래로 부드럽게 찢겨진다. 다 먹고나니 동료들은 “아직 배에 공간이 남아있지?”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배터지게 먹었던 홍콩의 음식들

두번째 음식은 에그타르트. 한국인이라면 왕창 쟁여가기 바빠 마감쯤엔 재고도 보통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땐 운 좋게도 딱 한사람에 하나씩 먹어 볼 수 있게끔 남아있었다. 빵을 좋아하는 나지만 타르트엔 그닥 취향이 없어서 그런지 바삭하고 고소한 맛에 한번쯤은 먹어볼만 하구나 싶었다. 이렇게 음미하는 것도 잠시 벌써 세번째 가게에 도착해있다. 바로 홍콩식 만두 전문점. 완자, 샤오룽바오 등 한국에서도 꽤 들어봤던 종류다. 우리나라 만두처럼 입안에 뭔가 가득차는 느낌보단 꼬독한 식감과 중간중간 채워진 육즙이 매력적이다. 비슷하지만 참 다르달까.

야경_Tsim Sha Tsui, Hongkong

한참을 먹고 걷고 호텔에 돌아오니 벌써 자정이 가깝다. 그제서야 파도처럼 몰려오는 졸음. 눈을 반쯤 감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털썩 눕는다. 이렇게까지 하루종일 먹어본게 대체 얼마만인지. 자신은 여기에 먹으러 왔다고 포부있게 이끌어준 동료덕에 내일 아침까지도 배는 빵빵하게 꺼지지 않을 듯 하다. 그래도 SNS나 TV 프로그램에서 눈으로만 보던 식당들과 음식을 실제로 찾아가 맛보니 은근한 만족감이 있다. 보는 것과 직접 체험하는 것은 물론 하늘과 땅 차이지만 이것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랄까. 내가 꿈꿔왔던 것을 하루하루 체험해 보는 것. 오늘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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