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까라마조프적인 힘

작은 일상에 떠오른 생각

by 구름 의자

나는 나 스스로가 도덕적으로 흠 없길 바라고 친절하고 따뜻하고 자비로운 성품을 지니길 원한다.

뿐만 아니라 지혜와 유머도 겸비하고,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절제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내 안에는 그렇지 못한 나쁜 피가 흐르는 걸 알고 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주제를 모르고 욕심을 부린다.

남이 잘 되면 시기질투하고, 내가 잘 안 되면 안달복달 조급해하며,

조금만 잘 되어도 금세 겸손을 잃고 교만해진다.

세상 따뜻한 말을 하면서도 나한테 피해가 올 것 같으면 마음이 식어버리고 경계를 한다.

나쁜 마음이 들 때에도 사람들에게 좋게 말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나는 위선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는 겉으로 표현되는 나보다 내면의 나를 더 중시했다.

꿈, 착각, 말실수는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고 진짜 내 모습이 나오는 거라고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의문점이 들었다.

내가 이상적으로 되고자 하는 모습과 솔직한 내 마음 중 어떤 게 진짜 나일까.

만약 꿈, 착각, 말실수를 통해 무의식의 나를 발견했다고 하자.

그게 부끄럽고 치욕스러워서 감춰버리고 싶은데도 그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까.


예전의 나는 무의식과 내면의 나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데 애를 많이 썼다.

꿈을 꾸고 나면 일어나자마자 메모를 하고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고, 꿈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꿈에 대해서 생각하고 글로도 쓰다 보니, 꿈을 더 많이 꿨던 것 같다.

내 마음과 감정이 이끄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양육하다보니

내 내면을 들여다보고 관찰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현실에서 나의 역할이 중요해지다보니 점점 현실적으로 변해갔다.

여전히 감정이 들쑥날쑥 솟구치기도 하지만, 표현의 막을 더 두껍고 단단하게 하여 안에서 삭힐 때가 많다.


내가 위선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거짓으로 일부러 착한 체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니 위선적이라는 말 대신에 뭐랄까,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으로 말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젊은 시절 놀기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고 방탕하고 게으르게 보낸 시간들이 있었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했다.

나는 부족하고 어리석고 미성숙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에

어리석음을 감추고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조시마 장로는

젊은 시절 세속적이고 방탕한 삶을 살고 쉽게 분노하는 성격이었지만,

하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밤새 괴로워하다가

사랑과 겸손을 깨달은 인간으로 부활했다고 한다.

그는 군을 떠나 수도원으로 들어가 오랜 세월 회개와 봉사의 삶을 살며 영적 지도자인 장로가 되었다.

나에게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 부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비극적인 함정은 나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준 소중한 아이들이

나의 나쁜 성질, 피를 물려받은 아이들이란 것이다.

느리고 꾸물거리는 성질, 시간 개념이 없고 주의가 산만하고 끝까지 집중을 못하는 성향,

힘들고 어려운 거 못 견디고 짜증내는 성격,

에민하고 쉽게 불안해하며 긴장하는 성격이 보일 때마다 마음이 자극되어

나를 못견디게 답답하고 화가 나게 만든다.

어린 시절 나의 미성숙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내 안의 나쁜 피가 꿈틀거리며 나를 괴롭혔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든 견디어 낼만한 힘은 있어! 카라마조프적인 힘이지 카라마조프적인 비열한 힘 말이다.”

나는 이반이 말한 그 힘이 무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하지만 내 안에 자리한 양심과 선한 도덕에의 이상은

그 나쁜 피를 얼마나 부끄럽고 치욕스럽게 느끼게 하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나쁜 말과 행동을 마주할 때 ‘저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왜 저러지?’하는 생각에 힘들었다.

또 '착하고 반듯하게 자라야 하는데' 하는 마음에 한 마디라도 더 잔소리, 훈계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부족하고 죄 많은 내가 낳은 아이들이니 애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애들이 잘 하길 바라기보다 나부터가 먼저 반성하고 바뀌어야겠다는 다짐으로 기도한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착하게 살기란, 죽지 않고 사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나는 기도하거나 글을 쓸 때 나의 나쁜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기도하고 반성하면서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과

이런 저런 옷으로 감춰진 내면의 나와의 간극을 좁혀가는 수밖에 없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원죄와도 같은 피 같은 성질을 바꿀 수 없지만

그것을 억누를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다.

나쁜 생각을 하고 나쁜 꿈을 꿀 수 있지만 나쁜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을 수 있다.

때로 화가 나거나 슬픔이 걷잡을 수 없이 날뛰면,

기도하고 수양하며 야생마를 길들이듯 마음을 단련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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