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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나영 Dec 18. 2021

관심의 효능

가정 선생님의 말 없는 빗질


교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부속 중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였습니다. 담당 반에는 수업 내내 교실 뒤에 앉아 시끄럽게 장난치고, 엎드려 자는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다섯 명 있었습니다. 반 아이들에 따르면, 약한 애들을 괴롭히기도 고요.


그들을 바라보니, 중 2병에 걸렸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파마를 너무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맘 맞는 친구들과 일을 내고 말았죠. 그리고는 선생님들께서 알아채실까 겁이 나니, 학교 갈 때마다 그 고불고불한 머리를 수없이 빗고는 아주 꽉 당겨서 묶었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일주일 간 어느 누구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중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대학, 대학원 강의도 해봤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분명 그 파마머리를 알아채셨을 거라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맨 앞줄부터 맨 끝줄까지 사실 한눈에 다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당시 학생 수가 많아서 무관심하셨던 것인지, 괜히 골치 아파질까 그러셨던 건지, 그것도 아님, 배려 차원에서 모른 척 해 주신 건지, 그 어떤 선생님께서도 교칙을 어긴 저에게 아무 질책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완전범죄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엄마께는 많이 혼났지만 말이죠.


오랜만에 가정 수업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가정 선생님은 40대 따스한 인상의 여 선생님으로 상담 교사 보직도 겸하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날 선생님께서는 수업 도중에 우리 모두에게 문제 몇 개를 주시고는, 자율적으로 풀게 하셨습니다. 한 번도 이런 자율학습을 권하신 적이 없는 분이라, 처음엔 다들 당황했지만, 우리는 어느새 집중하기 시작했죠. 드디어 조용한 면학 분위기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저에게 말없이 다가오셔서는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매일 있는 수업도 아니었고, 가정이란 과목을 특별히 선호했던 과목이 아니었기에, 개인적으로 선생님과 대화 나눌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실까 매우 의아했지만, 아무 말 없이 따라갔습니다.


교실 뒤에 도착하자,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거울을 보고 서라고 하신 후, 아무 말 없이 제 머리를 풀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한 손으로는 내 머리카락을 받치시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어디서 인지 가져오신 일자 빗을 잡고는 제 머리를 부드럽게 빗어 주셨습니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말없이 제 머리를 참으로 부드럽게 빗어 주셨습니다.




교생으로서, 저 교실 뒤에서 "나 잘 안보이겠지?"라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고, 딴짓하고 있는 그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날 가정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 떠올랐던 겁니다.


방과 후에 전 그들을 학교 주변 시장에서 데리고 가서, 떡볶이, 튀김, 순대 등을 사주었습니다. 뭘 바꿔 보겠다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 제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고작 그것밖에 없어서였죠.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이 쉬는 시간에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인생에 저에게 먹을  사주면서 관심을 가져주었던 어른은 선생님이 처음이었어요."

"감사드려요."


이 말을 수줍게 던지고는, 바로 막 뛰어가 버렸습니다. 


겨우 그 몇 천 원어치 떡볶이가 뭐라고, 제가 내어준 그 두 시간밖에 안 되는 시간이 뭐라고, 그 이후 그 친구의 수업 태도가 아예 바뀌었습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던져지는 애정을 담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는 생각한 것보다 큰 힘이 됩니다.


고교 시절, 미술 선생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저에게 쓰윽 이런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셀라, 미대 가도 되겠다."라고요. 지금 업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씀 한마디에 전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란 기대감을 맘 한편에 갖고 있었죠. 사실 모든 학생들에게 다 해주셨을 수도 있는 말씀일 텐데, 저에게는 소중한 사건이었습니다.


정말 큰 힘이 된 거죠.


누군가에게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해 줄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눈치 못 채고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닌지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Photo by 2y.ka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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