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무새
절대로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어릴적 아버지가 주식 투자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왔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는 매일 출근하기전 컴퓨터로 주식시장을 체크했고, 점심시간에는 막간을 이용해 집에 잠시 들러 주식을 매수, 매도하시곤 했다. 그당시 아버지께서 큰 수익을 거두었는지 아니면 손실을 보았는지는 어린 학생이었던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야 진실을 알게되었다. 개미투자자였던 아버지는 기업에 대한 가치 분석없이 소문에 의지하여 주식을 사고 파신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스스로 눈을 가린채 소리에만 의존하여 축구를 한 셈이다. 아버지께서도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주식투자에 관한 책을 읽고 뉴스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등 노력을 했지만 주식투자는 결코 쉬운게 아니라고 하셨다. 어린시절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아 주식은 공부한다고해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같은 개미들은 차곡차곡 성실히 돈을 모아야겠구나'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2020년 초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전세계 금융시장은 폭삭 주저 앉고 말았다. 그 시기에도 나는 코로나19가 주식시장을 폭락시킨 것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던 그저 경제바보였다. 난 그저 적금에 가입해 매월 월급을 꼬박꼬박 넣고 있던 성실한 직장인이자 은행이 좋아하는 고객일뿐이였다. 그 후 주식시장이 잠시 안정되자 주위에서 너도 나도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조심스레 가족들에게 주식이나 해볼까라고 말을 꺼냈다. 부모님께서는 그렇다면 일정 금액을 매달 적립식으로 삼성전자를 사모아봐라는 말씀을 하셨고 나는 그대로 그 일을 착수시켰다. 20년 상반기쯤이였나? 그때 삼성전자가 1주당 4~5만원을 하던 시절이였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매달 20만원씩 적립식으로 매수를 시작했고 그해 12월말 평단가 8만원 정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삼전주식을 전부 매도했다. 중간에 계속 오르자 조금 더 많은 금액으로 매수를 해서 그런지 최종적으로는 100만원정도의 수익을 얻었다. '아 이게 주식이라는 거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첫투자의 맛치고는 나름 달콤했다.
2020년 말 주식투자로 나름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던 나에게 어머니께서 갑자기 "아들, 이제 비트코인을 조금 사봐" 라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는데 우리 가족들은 그러한 어머니를 못마땅하게 봤다. 그당시 암호화폐에 대해 대중들의 인식은 '튤립버블'현상과 같은 거품이자 폰지 사기 정도의 수준이였다. 우리가족은 비트코인 영상을 보거나 책을 보는 어머니를 발견할 때마다 그런 사기같은 비트코인좀 그만하고 정신좀 차려라는 말을 하곤했다. 어머니는 우리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보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어머니는 나에게 본인이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 개수 및 평단가 그리고 수익률을 공개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그당시 비트코인의 가격은 1900만원정도였고 어머니가 가지고있는 개수는 2.x개 였고 수익률은 몇백프로가 넘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저렴한 가격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적금을 깨서 1개라도 사놓으라고 하셨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시 비트코인의 차트는 어마어마한 수직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앞으로는 곧 수직으로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너무 비싸서 못사겠다, 비트코인 잘모르겠다고' 말하고 곧장 내 방 침대위에 누워버렸다. 말로는 비트코인 안사겠다고 했는데 자꾸만 내 머릿속에 어머니의 수익률과 개수가 눈에 아른거렸다. '도대체 어머니는 언제부터 사모았던 것일까'
머리로는 '절대 안해야지, 안할거야'라고 되뇌었지만 내 손가락은 벌써 암호화폐 거래소 어플을 설치를 하고 있었다. 어플을 들여다보니 비트코인 차트는 계속해서 상승추세를 그리고 있었고 개당 가격은 2000만원을 돌파할 기세였다. 그 당시 삼성전자 주식투자로 얻은 작은 자신감은 나에게 코인투자 또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알 수 없는 이상한 믿음을 불어넣어 주게 되었다. 크립토시장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코인이 상장되어 있는데 우선 비트코인은 비싸서 건들수가 없었고 조금 저렴하지만 크게 성장할 가능성있는 코인을 고르고자 욕심을 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클레이(KLAY)라는 코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클레이는 카카오의 자회사 그라운드X가 운영하는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토큰이다. 그 당시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카카오는 4차산업의 핵심 기술중 하나인 블록체인 사업을 나름 조용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이 코인에 대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고 아직 국내 대형 거래소에는 상장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 가치상승에는 충분한 여력을 가지고 있는 코인이 바로 클레이였다. 뿐만아니라 전국민이 쓰는 카카오톡에 클레이튼 기반 전자지갑인 클립(Klip)이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카카오는 이 클레이튼을 기반으로 미래의 핵심 먹거리인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것은 우리나라 및 해외의 주요 기업들이 이 플랫폼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이 사업에 대한 가치는 어느정도 검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확신끝에 나는 적금을 해지하고 클레이 코인을 21년초 개당 500원을 주고 약 3만개를 매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어머니의 권유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에서 시가총액 2위를 하고있는 이더리움이라는 코인을 개당 약 90만원을 주고 7~8개 가량을 매수했다. 지금생각하면 그때 고작 삼성전자로 100만원가량 수익을 냈다는 작은 자신감을 가지고 어떻게 전재산을 털어 코인을 투자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때는 무서울게 없었나보다.
이렇게 내가 일하면서 모았던 모든 현금을 코인에 투자했다. 그리고 나서는 그저 하염없이 오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가 가지고 있는 코인의 가격을 체크했다. 조금 올랐다 싶으면 금세 바로 제자리로 돌아왔고 조금 떨어졌다싶으면 금세 올라 원래 가격으로 되돌아왔다. 그만큼 변동성은 심했다. 이러기를 몇달 반복하던 와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코인들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 코인 어플 계좌는 빨간색으로 나타나는 수백만원의 수익을 보여주었다. 단 며칠만에 클레이는 개당 2000원, 이더리움은 개당 150만원이 되었다. 믿기지 않던 나는 이 상황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자 절반은 매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가파르게 상승을 하고있는 차트를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다. 계속 오를것만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않고 '어차피 수익인거 다시 떨어지면 어때'라는 심정으로 그냥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금의 조정을 받더니 며칠뒤 다시 폭등을 하기 시작한것이다. 1700원에서 머물던 클레이가격이 순식간에 3500원까지 2배가량 뛰었다. 나는 이제 미쳐가기 시작했고 누구의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수익이 몇백만원이 아니라 이제 수천만원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말씀대로 절반을 매도했더라면 이 수익은 줄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나의 직감을 전적으로 믿기로 했다. 나는 이대로라면 곧 부자가 될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6천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이자라고 해봤자 3프로 정도이기때문에 크게 부담은 되지 않았다. 나는 6천만을 곧장 코인에 '몰빵'했다. 이것이야말로 뉴스에서 보던 '빚투'였다. 이번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코인말고 다른 종류의 코인을 매수했다. 내 대출금으로 '클레이스왑'과 '오르빗체인'이라는 코인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서울것이 없었다. 대출금을 잃어도 어차피 내가 기존에 수익을 보고있던 코인을 팔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나의 선택이 옳았다. 내가 샀던 모든 코인이 더욱 상승했다. 21년 4월경 나의 코인계좌에는 3억원이라는 숫자가 찍혀있었다. 그중 나의 원금은 3천만원정도였고 6천만원은 대출금이니까 약 2억원이넘는 믿기지 않는 수익을 내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다. 나 스스로는 내가 부자라고 생각했고, 이 엄청난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멋진 차를 구입할지 아니면 아파트를 매입할지 아니면 이돈으로 또다른 투자처를 찾을지 등의 달콤한 상상에 빠졌다.
상황은 이때부터 살짝 뒤틀리기 시작했다. 나의 코인투자 대박이라는 사실은 나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나 놀랍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물론 가족들은 실시간으로 내가 수익을 공유했기 때문에 이런 사실들을 알고있었지만 내 주변의 친한친구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주변의 친한 지인들을 만날 때 나의 이런 상황을 막 우쭐대면서까지는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작은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그 얘기를 들을때마다 지인들은 경악을 금치못했고 본인에게 코인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심지어 나는 그들이 나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고 스스로 착각까지 했었다. 점점 알게 모르게 나의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내 지인의 지인까지 퍼지게 되었고 나의 소식을 들은 몇몇 지인들은 나를 따라 코인투자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특정 종류의 코인을 추천하지는 않았고 그냥 내가 가지고있는 종목들만 보여주기만 했을 뿐이다. 덧붙여 무조건 나를 따라할 필요는 없고 결국 투자는 본인 책임이기에 알아서 잘 판단하라고 알려주었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는 난 결국 단 하나의 코인도 매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코인가격이 살짝 조정을 받고 정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의 수익은 3억에서 조금줄어 2억중반대로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매도버튼 하나 클릭하지 못한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했다. 왜냐하면 지금껏 그래왔기 때문이다. 클레이 가격이 처음 500원에서 시작해 5000원까지 오르는데 몇번의 조정이 었어왔다. 하지만 난 잠시의 조정이라 생각해 분할 매도를 하지 않고 기다렸다. 나의 생각대로 한 일주일정도 기다리자 다시 폭등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나는 단지 기다릴 줄만 아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결국 내가 가진 코인은 모두 폭락하기 시작했다. 영원히 오르는 것은 없나보다. 나는 몰랐다. 계속 오를줄 알았다. 나는 폭락할때까지도 잠시 폭락했다가 다시 폭등할 줄 알았다. 그런건 없었다. 괜한 기대를 했나보다. 폭락할때조차 나는 매도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나는 매수만 해온사람이고 코인시장에서 단 한번도 매도를 해본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물론 바닥끝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다. 폭락은 어느 수준에서 멈추었고 다시 오르락 내리락하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지속되었다. 이렇게 결국 수개월이 지나고 나는 21년말에 내가 가진 코인을 전량 매도했다. 왜냐하면 제롬 파월 미국 연준의장은 22년부터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소문과 코인시장에 대한 과세 이슈 등 전체적인 시장 상황을 지켜보니 더 오르기는 힘들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6천만원의 대출금의 상황 만기일도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여기서 더 떨어진다면 내 대출금조차 못갚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대략 2억원의 수익을 볼 수 있었지만 현재 약 1000만원의 수익만 챙긴채 털고 나와버렸다. 나의 욕심이 지나쳤다고 생각한다. 수익실현의 기회는 수십번 있었다. 한꺼번에 수익실현을 하지못해도 분할매도라는 전략도 있었지만 나의 욕심을 결코 이기지 못했다. 높은 수익률을 보던 시절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기회는 인생에 몇번 올까말까한 것이니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하셨다. 그 당시 나는 이런 기회를 잡을 그릇이 안되었다고 생각한다. 투자에 대한 공부도 없었고 투자전략이나 목표, 투자마인드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냥 단순무식하게 달려들줄만 알았다. 달려들고나서 보니 빠져나올 전략은 없었다.
아직도 내가 2억원의 수익을 맛본 줄 알고있는 지인들이 몇몇 있다. 그런 지인을 만날때마다 내가 과거에 했던 말과 행동들에 후회를 깊게 한다. 돈벌었다는 이야기를 함부러 떠벌리고 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당시 한 지인은 나에게 '너를 보면 본인이 벼락거지가 된거 같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있다. 지금이야 다시 거의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그 당시는 괜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그당시 내가 수익이 어마어마한 것으로 소문이 다 퍼져있는 상태에서 지인들을 만나면 괜히 내가 술, 밥값을 더 계산을 하곤했다. 또한 나는 억대의 수익률에 취해 매달 들어오는 급여를 모으지 않고 평소에 사고싶었던 것에 흥정망청 사버리곤 했다. 너무 바보같았다. 2억원이라는 수익은 내 통장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코인개수에 해당가격을 산출한 가상의 숫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해 수익실현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고 나의 노동으로 벌어들인 실제 현금을 태워버린것이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성진처럼 잠시 꿈꾸다 온 것 같다. 물론 손해를 보지 않고 1000만원의 수익을 챙기고 나왔으니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하면은 꽤 괜찮은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1000만원의 수익보다는 그동안 코인투자를 통해 경험하고 겪은 감정들이 더 크고 값지다고 생각한다. 책이나 영상으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나만의 실전 투자 경험인 셈이다. 코인시장에 몸을 잠시 담궜다 나오면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관해 많은 공부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전세계 경제흐름과 암호화폐 생태계를 지켜보고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현금을 계속해서 꾸준히 모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되었을때 다시 코인시장에 들어갈 것이다.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확신이 섰다. 단지 저번처럼 아무런 준비없이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고 투자목표를 명확하게 세우고 안정적이고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꾸준하게 한걸음 한걸음 밟아 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아 그때 팔걸...", "1억이라도 건지고 나올걸...."이라는 생각을 종종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