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사색으로 이끄는 다자이의 힘
13개의 단편 모두 화자가 여성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소설이다. 제목에서 몽실한 느낌이 물씬 나고 다자이가 우울한 소설 썼다는 편견은 [인간 실격]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보았기에 가볍고 밝은 단편집을 기대했는데, 예상과 달리 꽤 깊은 사유를 담았다.
이 작품은 비록 ‘여성 화자’라는 단순한 카테고리로 묶여서 만들어진 단편집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의식이 있다. 이는 아마 다자이의 삶 자체가 고뇌이기 때문일 것이다. 13개 단편 모두 다자이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두 작품, [인간 실격]이 고발하는 인간 세계의 위선과 [사양]이 자아내는 아련한 해질녘의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다자이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혼미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전쟁 (또는 패전)이 동반하는 고독과 외로운 정서를 표현했는데, 그 속에서 이별, 기다림, 성찰 등을 통해 인간의 순수성과 추악성을 동시에 발견해낸다. 우리는 다자이의 글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타락에 대한 반성이 없는 존재인지를 올바름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타인을 향한 밀도 있는 관찰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이로써 인간 (자기자신)에 대한 고뇌와 두려움으로 점철된 다자이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다자이의 머릿속이 각각 단편의 화자에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다자이의 목소리로 여성 화자의 서사를 전개하는 이 작품은 조금 더 섬세하고 취약한 인간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여치>에서는 겉치레에만 치중하고 내면을 다지지 않는 남편에게 아내가 이별을 고하며 남편의 자본주의적 인간상의 민낯을 폭로한다. 아내가 묘사하는 남편의 모습은 우리 또한 과연 그 추잡함을 비껴갈 수 있는 존재인지 자성을 촉구한다. <기다림>은 누군가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다만 기다리는 주체조차 누구를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인간 세계가 두렵고, 돈도 원하지 않고, 사람도 싫증 났지만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기다림을 청한다. 현대의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 자신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평생토록 기다리지만 우리는 그 누구도 자신을 구원해줄 수 없다는 것을 사실 알고 있다.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이고 이를 깨달은 사람만이 결핍만을 불러일으키는 기다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향음부인>에서는 다자이의 다른 작품인 [사양]에서 묘사되는 여인의 우아함을 엿볼 수 있다. 두 작품에서 나오는 여인 모두 모질고 거친, 아비규환 같은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 고결함을 잃지 않고 고매하게 살아가는데,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왠지 모를 씁쓸한 감정을 느낀다.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들. 이에서 발견한 패배의 미학은 아마 다자이가 그려낼 수 있는 극한의 이상임이 분명하다.
[인간 실격]과 [사양]과 엇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상술한 만큼 둘을 재밌게 읽었다면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언뜻 보면 가벼워 보이지만 자기혐오, 위선, 환멸, 괴리 등 그의 글로부터 찾아낼 수 있는 인간의 취약성은 통찰력 깊다.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다.” 뉴욕 타임스가 다자이를 이렇게 평했듯 이 책은 이 문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절감할 수 있게 해 준다. 인간 세계를 깊게 파고들어 사색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는 다자이의 능력은 그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를 납득시키기에 아마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