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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어 Mar 26. 2024

<불리는 이름>

앞으로 나는 무엇으로 불릴까?

2024.01.05의 일기


 몸살 탓인지, 약 기운 탓인지 출근길이 어질어질했다.

책 좀 읽을까 하고 지하철 좌석에 앉자마자 

책을 펴고 한 페이지 읽었을 때쯤 비몽사몽 졸았다. 10분쯤 졸았을 때 환승 구간에 도착해 후다닥 내렸다.


꽃다발을 들고 가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오늘 어디서 축제를 하나?

다들 같은 날 일심동체로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나 싶었다.

아니면 지난밤 뉴스에서 나왔던 정책 때문인가.

24년부터 1월 5일부터 시행되는 청년연애도약장려금이나 청년고백성공수당으로 다들 분주히 떠나는 것인가.

커플 중위소득 100프로 372만 원이며,

매달 장려금 30만 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봤다.


그 사람들은

꽃잎이 떨어질까, 줄기가 꺾일까, 포장지가 구겨질까.

추운 겨울 주머니에 손을 넣지도 못하고

시린 손을 참아가며, 반듯하게 꽃다발을 들어가며 걷는 모습이었다.


현장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반장님" 인사하고

얼른 공사 진행 상황만 체크하고, 커피가 마시고 싶어 카페로 이동했다.

교복 입은 두 여학생이 신나는 발걸음으로

꽃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졸업식이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여학생들은 이제 교복 대신

주말이나 공휴일에만 입던 사복을 입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이름으로 점점 불릴 것이다.

이름 뒤에 '님'이나 '씨'가 붙여지는 날들이 많이 질 것이다.


학생 때는 병원이나, 고객센터에서만 듣던 

'님'이라는 호칭이 막 스무 살이 됐을 땐 어른이 된 것 같아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초반에는 적응이 안 됐다. 어른은 됐지만, 어른인 척하는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님', '~씨'라고 불러주는 서로의 호칭이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존중이 있는 호칭이라는 생각에 더 자주 사용하려고 했었다.


낮에 봤던 그 두 여학생과 그들의 친구들은,

이름 뒤에 '님'이나 '씨'가 붙여지는 날들이 점점 많이 질 것이다.

'후배님'이라는 호칭에서, '선배님'이라는 호칭으로 바뀌기도 할 것이다.

불리는 직함이나 호칭으로, 

그 이름들로 불합리와 합리의 기준이 정해질 때도 있을 것이고,

그 이름들의 가치를 앞세워 싸우기도 하고 순응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가 고작 시간당 얼마짜리인지 평가당하며 분노하거나 인정하거나 이겨내는 일도 생길 것이다.

그대들은 결국 다 이겨내며 존중받는 호칭과 애칭들로 가득 불리길!


내가 불리는 이름들.

가족들에겐 재오야, 아들, 야 이재오(이건 누나에게. 내 성은 '야이'가 아닌데)

일터에선 재오야, 형, 사장님, 이사님, 대표님, 팀장님   

다양하게 불리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상가 아래층 치과랑 트러블이 있었다.

30분 전까지 "안녕하세요. 이사님" 전화가 오다가,

"저기요. 당장 오세요." 순식간에 '저기요'로 호칭이 바뀌기도 했다.

그날 결국 한바탕 하긴 했다. 내가 선생님들 하급자도 아니고 오라 마라 하냐면서.

할 말 있으면 다음부터는 선생님들 영업시간에 맞추지 말고 

아침 7시던, 저녁 8시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대판 얼굴 붉히고 악수를 먼저 건네고 자리를 나왔다.

난 그날 나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우리들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대신해 이름 걸고 싸웠던 것이었다. 

그리고 난 나름의 배려로 당신들에게 선생님이란 이름을 지켜줬다.


우리 엄마의 이름이 미영이에서 미영 씨 바뀌기도 하고. 

지수 엄마, 재오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들이 생겨났듯이. 

불리는 새로운 이름들로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인생을 버텨오고 견뎌오고 있는지.

우리는 추측하기도 할 것이다.

지수 엄마보단 재오 엄마가 확실히 버텨온 

난이도가 높은 이름이라고 생각이 든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불리던 이름들의 목록은 늘어날 것이다.

낡은 이름들은 새 이름으로 교체되기도 하고, 

닳고 닳게 불리던 서로의 애칭은 아무것도 아닌 이름으로 바뀌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는 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죽일 놈으로 불리기도 할 것이다.

또 우리는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불리던 지난 이름들이 그리워지기도 할 것이다.


세상의 이치이겠지만,

부르던 그 이름들을 부를 수 없는 힘든 날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각자의 불리는 값진 이름들이

매일 존중받았으면 좋겠고,

상처 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이름들을 부르고 불렸을 때

서로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으면 좋겠다.



+



어제는 분식집에 갔다가 라면과 김밥을 시켜놓고,

거래처와 잠시 통화를 하고 왔다.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삼춘! 난 또 간 줄 알았잖아!”

난 이제 학생, 청년보단 

삼촌, 아저씨가 되었다.

벌써 그 이름들이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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