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책과 서랍이 궁금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 삶을 차곡차곡 정리하면 어떤 장르의 책이 될까?
몇 페이지의 책이 완성이 될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대들에게 동의를 받지 않았기에
애쓰며 에둘러 표현하며 쓰고 있는데,
장르는 무엇으로 분류될까.
비겁한 말과 마음이 있는 부분은
소설이라 할까.
내 당당하고 솔직한 마음이 있는 건 수필이라 할까.
그냥 소설 같은 산문집이라 하자.
확실한 건 범죄 스릴러 에세이만 아니면 된다!
'나의 책'에
당신이 채우고 있는 건 몇 문장일까, 몇 페이지나 차지하고 있을까.
고맙던 원망하던 참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어 머리가 희끗해졌을 때
존재가 잊히거나, 나의 삶에서 비중이 줄어든다면
전체 분량에서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일까, 그 사람의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인가.
그럼 그 사람은 서운해할까 관심도 없을까.
A라는 사람은 비중이 줄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문단일 거다.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
꽃으로 만든 책갈피가 있는 페이지지일 것이다.
곱씹어 만들어낸 문장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책에 쓰이는 것을 원치 않을 수 있다.
내 책이기에 내 마음대로 기록하고 적는 게 맞다.
우기는 것이 맞을까. 지워주는 게 맞을까.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거까지는 합의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묘사하는 당신의 생김새, 존경하는 모습이
당신은 당신의 싫어하는 모습일까.
난 그럼 'A의 책'에 나는 어떻게 쓰일까.
매정한 사람으로 쓰일까. 모진 사람으로 쓰일까. 연약하거나 외로운 사람이었다고 쓰일까.
'B의 책'에는
한없이 가벼운 사람으로 기록될까. 서툰 농담 같은 사람이라고 적힐까. 철부지로 쓰일까.
그럼 목차는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지루할 것 같다.
이 파편적인 사건의 조각들을 목차로 정리는 할 수 있을까.
책의 표지는 무엇으로 할까.
내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의 사진으로 할까.
의사면 생판 남일 텐데, 길 가던 40대 중년 아저씨이면 어쩌지.
내가 사랑한 사람으로 할까.
둘 중에 누구 한 명은 먼저 누군가를 떠나보냈을 텐데,
처량하기도 청승맞은 것 같은데.
인생은 여행이라는데,
여행 에세이집 같은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 사진으로 할까.
가본 적도 없지만, 너무 뻔한 것 같아 싫다.
내 존재도
존재의 이야기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는데,
후회는 없겠지만, 아쉽기는 할 텐데.
분명 많은 교정을 끝내야 할 텐데.
이미 지난 사건들을 교정하는 것은 불가할 것 같고.
내 숨기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야 할까.
그래도 '나의 존재'를 적은 책인데.
그래 교묘하게 인쇄를 흐리게 하자!
'나'라는 책은
내 방 책장에 읽지도 않고 꽂혀있는 먼지 쌓인 책들처럼,
당신들의 책장에 꽂혀있을까.
그래. 그것까지는 이해한다.
냄비 받침대로만 안 쓰이면 다행이지!
만약 '당신들의 책'이 있다면.
난 '당신들의 책'에 적히고 싶은데, 그것도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 문장과 페이지로. 그것은 욕심일까. 자만일까.
그런데 또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변덕스럽고 이상한 생각도 한다.
우리 죽어서 모두 모여 각자 '존재의 책'을 나눠보며,
비평도, 비판도 없는 독서모임회를 만들자.
아무 말하지 말고 읽고 보고
그저 울고, 웃자.
딱 두 가지만 하자.
그러곤 집으로 돌아가서
각자의 서랍 속에 보관하자.
+
아 또 그런데 제목은 뭐라고 할까
게임 아이디를 지어도 세월아 네월아 걸리는데 이건 얼마나 오래 걸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