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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어 Mar 24. 2024

<모텔의 비밀>

이메일 속 갇혀있던 모텔 이야기

이메일을 뒤적거리다 20살에 썼던 글을 찾아냈다.

짧은 에세이었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던 글쓰기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었다.

첫 강의 전 짧은 에세이를 써 이메일로 제출하라는 과제가 있었다.

인원수도 많았고, 그때 내가 배우고 싶던 글쓰기의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2회만 참여하고 나가지 않았다.

내 아까운 돈... 그때는 돈보다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고3이 끝나자마자 나는 모텔 청소 알바를 했다.

그곳의 이름은

하얏트 호텔이 아닌

하얏트 모텔이었다.

<모텔의 비밀>

빨간 전구에서 나와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붉은빛들. 야릇하다기보다는 음침하다. 조용한 복도에는 유난히 승강기 오르고 내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구두 소리는 더 또박또박 들린다. 서로 비밀을 숨기듯 꼭꼭 잠겨있는 12개의 방. 이제 나는 키를 꽂고 301호 문을 연다.

대입 시험이 끝나고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은밀한 곳에서 알바를 해야 남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모텔 청소를 시작했다. 내게 모텔이란, 복도는 항상 희미하게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단순히 남녀가 살을 섞는 곳이었다. 또는 당당하지 못한 불륜의 현장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왼쪽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일회용 칫솔 두 개를 쓰레기봉투 속으로 휙 던진다. 수챗구멍에 엉켜있는 긴 머리카락들을 휴지에 싸 쓰레기봉투 속으로 던진다. 그리곤 거울에 튄 비눗물과 치약 자국을 비누칠로 제거하고 욕조 안 물때를 수세미로 박박 긁는다. 또 변기를 구석구석 닦아준다. 마지막으로 샤워기로 화장실 곳곳을 물로 뿌려준다. 방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에는 젖은 수건들과 사용한 콘돔이 버려져 있다. 대부분 방바닥에 버려져 있는 콘돔은 정액도 없고 묶여 있지도 않다. 어질러져 있는 이불과 베개를 보고는 어젯밤 방에서 있었을 일이 머릿속을 급습한다. 방을 청소하던 중 덩치가 큰 남자가 들어간 건너편 방으로 5분 간격으로 긴 생머리에 구두를 신은 여자가 둘이나 들어간다.

처음 312호 문을 연 날에는 신발 두 켤레가 놓여 있고 방안에는 캐리어와 짐들, 그리고 빨래 건조대에는 속옷들이 널려있었다. 화장실 안에는 빨랫비누와 전용 칫솔, 폼 클렌저까지 놓여있다. 312호는 월방이었고 그 외의 많은 방들이 월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대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월방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사람들의 얼굴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월방 손님이 칫솔에 물이 튀었다고 사장님에게 소리를 지른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매일 문이 닫혀있고 방 청소조차 하지 않던 512호와 507호 여자들과 승강기를 탄 적 있다. 둘 다 거대한 몸으로, 성대 제거 수술을 시킨 강아지들의 목줄을 쥐고 있었다. 5층에 도착하자 각자의 방으로 강아지를 끌고 들어갔다. 한 달을 채워 두 사람이 모텔을 완전히 나가고 나서야 청소를 하러 들어가게 됐는데 강아지 냄새와 털들 그리고 물통에 가득한 담배꽁초들로 고생한 적이 있다. 그리고 월방은 아니지만 월방만큼의 역할을 하는 고스톱방도 있다. 매일같이 단체로 술 먹고 담배를 피우며 고스톱을 치러 들어왔다 나가는 아저씨들로 가득했다. 가장 기억에 남던 방은 508호 월방에 살던 한 가족이었다. 남자아이 두 명과 엄마, 아빠. 저녁이 되면 두 아이는 모텔 안으로 들어와 승강기를 타려고 기다리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해맑게 서로 장난을 치곤 했다.

모텔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한다. 대낮에 이만 원을 들고 대실을 하는 안경을 쓴 깡마른 60대 노인부터 월방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가족까지 다양한다. 내게 모텔은 더 이상 붉은 조명 속의 음란한 공간이 아니다. 단순한 하룻밤 공간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부터 온갖 욕망과 비밀이 가득한, 오히려 사회 축소판에 가깝다.

+

가끔 사장님이 카운터 보는 일도 부탁하셔서

결제받고 키를 전달 줬던 적이 있었다.

실수로 안마의자가 있는 2만 원이 더 비싼 방을 줘버렸다.

전화가 왔다. 사장님이 그 방은 비싼 방이라고 다시 다른 방으로 변경해 주라고 했다.

해당 호실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 그 호실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며

죄송하다고 다른 방으로 가셔야 한다고 말했다.

50대 중년의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우리 속옷까지 다 벗었는데!!! 뭐 하는 거예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많이 급하셨나 보다. 열정이 넘치시네.'

그때는 많이 죄송했습니다.

흐름이 끊기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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