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고 글을 쓰게 되면서 회원 건축사들과 지인들에게 브런치 플랫폼에 대해서 소개를 했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좋은 플랫폼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습니다.
"글을 한번 써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요. 가끔 한두 번 써본 적은 있지만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글쓰기를 권유하였지만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바빠서 못쓴다는 핑계와 글쓰기에 대한 회의, 무력감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니면 건축사는 건축을 통해서 말하지 글을 통해서 말하지 않는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건축사들이 글쓰기를 포기하는 이유는 두말할 것 도 없이 의사소통 문제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말을 통해서 진실을 듣기를 원합니다. 여러 종류의 행정서류를 취급하는 건축사들은 글을 쓰는 목적이 남을 설득하고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도구 정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에도 마찬가지 겠지만 건축분야는 특히 글이 재미도 없고 딱딱합니다. 또한, 글쓰기 기피증 중 한 가지는 너무 많은 글들이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꼭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형식적인 '글을 위한 글'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입니다. 쓰고 싶고 읽고 싶은 글들은 차고 넘치는데 읽을만한 글은 드물고 쓰고 싶은 소재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건축에 관한 글들은 대부분 비평 수준에 가깝고 글이 너무 흔하다 보니 공허한 넋두리나 메아리처럼 머물고 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건축에 관한 글들은 흘러넘치는데 정작 읽히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고생하며 글 쓰는 일 같은 건 애당초 시작하지 말자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습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데는 작금의 현실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입니다. 쓰는 이가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로서의 도구로 글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건축 관련 글들은 건축물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습니다. 글을 쓰기가 귀찮으니 사진이나 이미지로 생각이나 정보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미가 없습니다. 인기도 없습니다. 대부분 구독자나 라이킷을 누르는 대상은 비전문가입니다. 건축 전문가들이 독자도 그림만 보고 대충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판입니다. 이야기로 풀어서 알기 쉽게 전달하고 이해와 설득을 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글쓰기가 됩니다.
입장을 바꿔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을 때 시간과 공을 들여가며 차분히 글을 읽었을 때 소기의 즐거움 내지는 보람 같은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 의미도 전달력도 없는 글을 굳이 시간을 들여 읽어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브런치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다른 플랫폼에서 제공하지 않는 단순한 지식정보나 자기 과시용 글쓰기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 글을 자주 쓰면서 느낀 점은 자기 만족감이 50%, 구독자의 만족감이 50% 일 때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어주고 무릎을 치며 공감할 수 있는 알찬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이도 저도 귀찮고 나만의 힐링과 자아실현을 위해서 맘대로 글을 쓸 거면 차라리 '발행' 버튼을 누르지 말고 '책상 서랍'에 고이 간직하며 자기 치유로 삼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차라리 건축 전문가라고 말하지 말고 글을 썼으면 엄청 박식하고 인기 있는 글이 되지 않았을까?
나의 직업을 거울삼아 담론을 생산하고 토로하며 글을 쓰다 보면 상당히 피곤해집니다. 내가 설계하고 시공한 작품들을 자신이 비평하고 평가해야 하는 일은 여간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써야 합니다. 글로써 자기의 건축 세계관이나 자신의 건축에 대한 상념과 생각을 피력할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설계를 기획하고 건물을 완공하여 준공까지의 세부적인 디테일들을 글로써 차분히 설명하다 보면 그 과정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큰 보람으로 다가옵니다. 마지막엔 설계도면과 그림들이 남지만 이렇게 글도 함께 남겨보니 더없이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됩니다. 글을 통해 건축의 깊이를 잘 전달하고 건물이면에 숨어있는 설계 프로세스 과정들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때로는 좋은 건축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투가 필요합니다.
건축가 르꼬르 비제 작품 중 성당 (사진출처:현대건축 갤러리 롱상)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르꼬르 비제 성당'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서가 다른 외국 건축가가 설계를 하고 과정들을 글로 설명을 하고 있지만 매우 현학적이고 난해한 논리로 접근하였으며 작품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알기 어려운 철학을 접목시키고 추상적인 개념이 동원이 된다면 과연 그 글이 좋은 글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정작 건축가의 설명이나 글이 없이 무슨 생각으로 건물을 지었는지 도무지 파악할 길이 없다면 작품으로 평가하기가 매우 난해 할 것입니다.
건축사의 글은 무엇보다도 자기 고백이어야 하고 내면의 자아를 피력하는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나만의 관심과 지향하는 취향을 진솔하게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시적이거나 논술처럼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와 명분도 없습니다. 단지 '내가 이렇게 쓰고 싶어서 맘대로 썼어'라고 하면 그뿐입니다.
글을 꾸준히 쓰면서 느껴집니다. '시간이 잘 가고 행복하다.'
글을 쓸 때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또 다른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점철되는 시간 속에 흠뻑 취하다 보면 다른 잡다하고 복잡한 생각들은 금방 잊힙니다. 건축 관련 글들은 글로써 건드릴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글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매우 마음이 솔직해지고 평온해집니다.
글이 하나둘 쌓여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내 안의 복잡하고 무거운 덩어리들을 끄집어낸 것 같아 속이 시원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글을 자꾸만 쓰게 됩니다. 행복하고 싶습니다.
브런치를 알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로운'님.
건축사사무소 회인 대표 건축사 모일(회) 사람(인) 사람이 모이는 회사 Goodmeeting & Part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