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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Dec 22. 2022

고3 딸아이의 수능 해프닝

가치관 : 인간이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 지니게 되는 중요성

가치(價値) : 사물이 지니고 있는 값이나 쓸모


2022년 수능시험을 치르기 삼주 전, 앵글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아빠를 식탁으로 이끌었다. 지금은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그 순간에는 평소답지 않은 앵글이의 당돌한 요청으로 긴장과 걱정이 한순간에 밀려와 겁이 덜컥 났다. 앵글이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아이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앵글아 울지 말고... 아빠한테 의논하고 싶은 말이 뭐니? 궁금한데.."

"2년 동안 준비했던 길과 다른 길을 걸으려고 하니 준비 기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쩔 때는 아는 문제도 틀리고, 어쩔 때는 모르는 문제도 맞는 이 순간이 무척 혼란스럽거든요. 저는 실력으로 건축과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래서 재수를 하더라도 꼭 대학은 제가 가고 싶은 학교로 지원하고 싶어요. 허락해 주세요."


사실 조금 당황스럽고 충격이었지만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가고 싶다는 아이의 분명한 의사표현이 반갑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이 확실한 아이의 당찬 눈망울을 보며 애써 태연한 척 아이를 다독였지만 마음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수능 시험을 치르기도 전 미리 아빠에게 선전포고를 해버린 고3 딸내미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다.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그 일을 즐기며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곧 직업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적성에 맞고 좋아하는 일이 타인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끼친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직업이 있을까 싶다.


"일단 아빠는 너의 의견을 존중해... 용기 있게 말해줘서 고마워."




건축사들은 변화, 발전하는 세상에 맞서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점점 진화하는 건축물의 세계에서 변화과정에 스스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자세와 노력 또한 필요하다. 건축설계는 현장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가기 위한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한 시각의 차이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로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창조성이 중요시되는 건축은, 그것을 설계하는 초기 단계부터 건축사의 의지와 가치관이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최근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건축물의 진화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고도제한이 없다면 60층 아니라 100층도 너끈히 설계하고 시공할 수 있는 주거공간의 시대에 살고 있다. 건축은 예술, 철학, 환경적 특성을 고려하고, 기능성이 있어야 하며, 편리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아빠의 직업이 얼마나 멋진지 어릴 때는 잘 몰랐어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건축사는 근무시간도 자유롭게 조절하고, 여유 시간에 자기계발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커서 보니 아빠가 대단하게 보여요... ㅎㅎㅎ"


앵글이의 시선에는 아빠의 직업이 멋지고 고소득이며, 여유 있어 보였나 보다. 하지만


"앵글아, 건축업이 3D(Dirty, Dangerous, Difficult의 앞 글자를 딴 신조어이다. 본래 제조업, 광업, 건축업 등 더럽고 위험하며 어려운 분야의 산업을 일컫는 데에서 비롯됐으나 최근 들어선 젊은 층을 위주로 한 노동인력의 취업 경향을 설명하는 데 주로 사용되고 있다.)로 분류되는 시기를 거쳐야 건축사가 되는 거란다. 아빠도 고단한 박봉의 실무경력을 쌓는 기간이 필요했고 다른 직업도 그렇겠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시간이 있었어. 힘든 시기를 거쳐야 비로소 건축사가 될 수 있단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은 외모, 재력, 능력을 다 가진 건축사사무소 소장 김도진 역으로 출연했다. (초등학교를 함께 다니며 한 때 단짝친구였던 장동건은 나를 기억하기나 할까 싶다.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멋진 친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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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주말드라마 신사의 품격


대부분 멋진 건축(설계)가의 꿈을 키웠다가도 여러 가지 상황에 맞닥뜨리며 건축사 되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드라마에서는 멋지게 보이지만 현장은 설계(디자인) 능력보다 비즈니스, 인간관계, 처세술에 의한 사업적 능력을 더 필요로 한다. 좋아하는 직업에서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우리 앵글이에게는 더더욱 마음속 부정적 말과 행동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이가 꿈꾸는 건축사의 길이 미래에 더 좋은 가치관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응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앵글아, 네가 그린 멋진 디자인으로 더 좋은 집을 설계해서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 그 공간에서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가치 있는 직업이 있을까? 아빠의 일을 함께 하고 싶다고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너의 재능과 실력으로 너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아빠는 늘 기도하고 응원한단다."


자신의 당찬 포부를 눈물과 함께 쏟아낸 앵글이는 그제야 속이 풀렸는지 예쁘게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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