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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하세요 Sep 21. 2023

우리 이혼하고 동거하는 건 어때?

사랑하는 남편에게

자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 함께한 추억들을 마주하게 돼

눈부셨던 우리의 이십 대... 그때 둘만으로도 무적파워였지


인기쟁이였던 당신이 나에게 왔을 때 한 번씩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어봤던 말..

"내가 왜 좋아?" 확인하고 싶어서 물어본 게 아니라 정말 궁금했거든.

솔직히 쌩얼 치고 나쁘진 않았지만 히히 

쇼핑하러 가서 직원에게 사이즈도 제대로 못 말해 만날 헐렁한 옷만 입고 다니고 사람들 눈 마주치기도 어려웠던 그때의 나.. 사람 만나고 나면 몸살처럼 온몸이 아파오는 나..

강의 들으러 학교 가다가도 숨이 턱 막혀 돌아서 집으로 와버리는 나..

답답하고 매력 없고 어정 삥삥했던 나를 끈질기게 사랑해 줘서 정말 감사해.


근데 풍선처럼 펑터져버릴까 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까 봐 나는 그냥 가만히 가만히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어.. 재미없게 시리.. 그래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꺼내줘서 진심 고마웠어..


"정한 씨.. 나포기 안 해줘서 고마워"

결혼하고 한 번씩 했던 말.. 당신으로 인해 못난 나를 내가 조금씩 받아들이는 모습을 맞닥뜨릴 때마다 마법에 걸린 기분이야. 이건 불가능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

항상 나를 비난하고 찌꺼기 같은 자존감은 혼자 있을 때조차도 편하게 놔두지 않았거든.

근데 당신이랑 있으면 살아갈 자신이 있었어. 참 든든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보다 당신이 더 소중해지기 시작했어.

당신도 나한테서 쫌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어.

정신이 번쩍 들었지 이러면 안 되겠다 나도 뭔가 달라져야겠다.

당신에게 힘이 되고 싶었어. 없던 깨발랄도 꺼내보고 말속에 지혜를 담고 싶었어.

억지의 나일 거라 생각했는데 편안하더라. 어쩌면 원래 나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위해 맘껏 사랑하며 이십 년을 보냈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나중에 틀렸더라도 상관없어 그때를 두려워 지금의 신뢰를 흐리게 할 생각은 없거든.


당신을 더 흠뻑 사랑하고 싶어.


십 년쯤 지나면 내가 무뎌지던지 어른이 변할 줄 알았어

이런 진부한 고부관계에  얽매이고 싶지도 않았는데....


상견례 전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아버님이 한 말..

"니가 꼬싯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지 어머님도 지지 않았어 가혹한 막말들

난 너덜너덜 해졌고 점점 유체이탈 되는 기분이랄까 그냥 여긴 현실세계가 아닌 것처럼 혼자 붕 떠버렸지..

멍한 표정에 풀린 눈..


그래도 괜찮았어 내 옆엔 당신이 있고 예쁜 공주들이 있으니까..

빨리 털어버리고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믿고 그냥 헤벌쭉 웃으며 흘려들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몽매 한 것처럼


 그래서일까 어머님의 폭언은 갈수록 심해지고 우리 부모님까지 건들었지..

"너 집에 뭣이 있나.. 뭣이 있어야 주지..."

점점 이제는 참아야 되는 일로 바뀌더라.. 그리고 조금씩 쌓이더라

수위가 높아지는 우리 부모님에 대한 막말은 지금도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오게 해.


아직도 당신과 사랑하고 싶어.

이제는 그게 욕심이란 걸 알아... 중간에서 얼마나 힘들겠니.

내 앞에서는 내편 부모님 앞에선 또 부모님 편 당신이 안쓰러워.

 

"우리 엄마아빠 조금만 좋게 봐주면 안 될까.. 아빠도 많이 늙었더라..."

얼굴 보고 말하기는 힘들고 불 끄고 자려 누웠을 때 간신히 꺼낸 말이었으랴..

그리고 깊숙한 진심이 배어 있었을 거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자기 부모님을 미워하라고 한 거랑 뭐가 다른 거야.... 이 바보 멍충아'

미안함에 가슴이 훅 페이는 기분이었어. 

정말 미안해 정한 씨..

나는 이제 자신이 없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이야기를 꺼낼 자신도 없고

명절당일 그리고 다음날 매번 오는 시집간 시누 밥상 차려주느라 우리 집 못 가는 것도 달갑지가 않아 졌어.


그래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나는 당신한테 말할 거야..

이혼하자고... 그리고 동거하자고...

달라지는 건 없어 우리는 여전히 같이 살 거고 아이들의 부모야. 그리고 시댁도 갈 테고 나는 또 예전처럼 어른들과 그럭저럭 지낼 거야.

다만 시어른에게 모욕을 듣는 것보다 남한테 듣는 거라 생각하면 내가 한 십 년쯤은 더 잘 참을 수 있지 않을까... 농담 삼아 반진심으로 수시로 꺼낼 거야.. 당신이 놀라지 않게 예방주사를 놓고 있는 거지.


오늘 아침에도 당신은 내 가슴에 뽀뽀를 했지..

거긴 당신만 할 수 있는 곳이라며.. 

맞아~~ 앞으로도 그건 변함이 없어.

난 앞으로도 당신과 사랑하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이혼하자 응? 그리고 동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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