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보런 간 날이다.
위에서 내리쬐는 조명아래 새파란 잔디들이 일렁이고, 비현실적인 피지컬을 가진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몸을 풀고 있다. 둥글게 뺑 둘러싸인 관중석은 이미 꽉 차있고 곧 3,2,1을 외치며 불기둥을 뿜고 우주로 날아오를 것 같은 묘한 일탈의 쾌감을 주는 공간이다.
축구는 집에서 맥주 마실 때 좋은 안주정도였기에 경기는 그냥 편하게 때론 심드렁하게 봤다. 후반전이 막 시작하고 갑자기 축구장에 무슨 사달이 난 것 같았다. 원정석은 경사가 났는데 여기는 뭔가 착잡한 기운이 감돌았다. 대구 FC 골대 앞에 정지화면인양 움직이질 못하는 선수가 눈에 띄었다. 고개를 떨구고 늘어지는 팔을 어찌할지 몰라 끄억끄억 허벅지 위에 끄집어 올린 채 머리를 쥐어뜯는 한 선수..
자책골이란다.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건장한 청년은 억지로 움직여보지만 몸이 비틀비틀거린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인생 같네....
바르고 씩씩하게 열심히만 살면 다 잘 될 줄 알고 무조건 앞으로 달렸던 나.
하루에 쓰리잡을 뛰며 자식들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께 당신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 더 힘껏 뛰었던 나.
시커먼 미래를 꿋꿋하게 함께 해준 당신에게 멋저버리고 싶어서 쉼 없이 뜀박질 한 나.
엄마 줄 거라고 꼬깃꼬깃한 낙엽 안에다 모아 온 하트 돌멩이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은 나.
그래서 행복하게 감사하게 즐겁게 사정없이 슛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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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공이 나를 겨냥해서 때린다.
가슴에 멍이 생기고 점점 응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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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챙기기도 빠듯한 살림이라 차로 20분 거리 남짓한대도 친정가는 발길이 잘 가지지 않는다.
치열하게 살아오신 부모님께 남은 거라곤 부서진 몸뿐인 것 같아 죄스럽다
당신 품에 꼭 안겨야 잠이 들면서도 한 번씩 사는 게 힘겨워 툭 내뱉는 모진 말들을 감내하는
내 남편에게 부끄럽다.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것도 많은 두공주들에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팩 소리를
질러버리는 못난 엄마.
이 수많은 자책골들을 어쩌면 좋으랴...
경기 내내 66번 조진우 선수만 봤다. 후반 54분에 넣은 자책골에 몸서리치면서도 주저앉을 수 없는 현실
몸뚱이를 쥐어짜듯 끌어올리는 한 발 한 발... 잔인하다. 청량한 잔디들이 밉살스럽게 그 선수의 발을 옭아매고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똬리를 틀려고 한다. 아주 옴짝달싹 못해버리게 말이다.
무시무시한 자신과의 싸움일 테다. 경기 내내 고개 들지 못하는 모습이 더 안타깝다.
다행히 종료 몇 분 전에 대구 FC의 골이 터지고 1:1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조진우 선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과 머리를 바닥에 대고 한 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으로 보아 자책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몰려와 울고 있으리라.
함께 울었다.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경기 내내 간직했을 돌덩이를 생각하니 그 무겁고 버거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탓이다.
이제 진짜다
자책골 다음의 조진우는 더 강해질거다.
40대 아줌마인 나도 이제 슬슬 기지개를 켜야 하지 않나?!
고집세고 강단 있는 나한테는 이런 거 안 어울려.
원래 역전이 더 재미있고 극복을 해야 더 맛이 나는 거야..
시작이 좀 시시하다 해도 아직은 모른데이 나는 마흔 살 청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