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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하세요 Sep 18. 2023

우리 동네 엄마들...1번 엄마

1번 엄마는 새까만 긴 머리카락을 가졌다.  쨍쨍한 햇볕 아래 호수가 반짝이며 일렁이는 물결과도 같이 탐스러운 머리카락이다.  하얀 민소매 원피스 속에는 간간히 붉게 물든 꽃들이 움직일 때마다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우아하면서 단정하고 왠지 있어 보이는 엄마 옆에 있으려니 쭈그리 방탱이가 된 기분이다. 신고온 슬리퍼에 쑥 나온 하얀 큐티클이 덕지덕지 뭇은 엄지 발가락을 감추려고 엉거주춤 서있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엄마를 찾고는 좋아죽겠다는 표정으로 달려오기도 하고, 핸드폰을 보느라 가다 서고 가다 서고 그러다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유튜브 보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도 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하교하는 친구들은 이내 각자 가야 할 학원으로 재촉했다.


그 사이 나는 그 우아한 1번 엄마와 단 둘이 남게 됐다. 비교되게 짜증 나게...

아이 생각은 잊고 곁눈질로 그 엄마를 계속 보게 된다. 옆에 둘러 맨 주먹만 한 샤넬가방도 보이고 가방에 살짝 걸친  손길을 따라 연핑크 손톱 속에 알알이 박힌 큐빅도 참 이쁘다.  자꾸만 시선이 가는 1번 엄마가 내심 부러운가 보다.


한 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아이가 슬슬 걱정이 되는 만큼 내 목도 쭉쭉 늘어나 교문 안을 훑어본다...

'저 1번도 우리 애랑 같은 반 엄마인가?' '혹시 선생님한테 혼나느라 늦는 건가..., 뭘 잘 못했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찰나 1번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적막과 환상을 사정없이 부숴버렸다.


"선생님, 000 왜 아직 안 나와요? 시간이 몇 신데...."

"네! 네! 빨리 좀 보내주세요. 네!"


'뭐지 뭐지 저 싸가지 지금 선생님한테 전화한겨?  지엄마한테 전화한겨? 미친 거 아녀? 인사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머리카락은 사정없이 길러서 시커멓게 물들려 가지고 정신 사납게 오만상 흔들리고.. 어 그리고 뭐 넣지도 못하겠구먼 애 요구르트 들었나 저래 조그만 가방을 들러매고 와서 엉? 엉? 말을 나오는 대로 내뱉고 있나..'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혼자서 구시렁구시렁거렸다. 하나가 미우니 하는 족족히 미워 보였다.  명품가방이

참 초라하다.


학교 등하교 알리미가 있어서 하교를 안 했다는 걸 알 테고 그러면 늦더라도 학교 교실에서 있을 텐데... 걱정되는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그렇게 다짜고짜 전화를 할 필요까지야 있을까 싶다. 급한 사정이 있어서 빨리 하교를 해야 한다면 전화할 때 예의 정도는 지켜야 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딸아이가 지나가며 한 이야기가 새삼 떠 오른다.

"엄마~ 엄마~ 우리 쌤은 핸드폰 항상 손에 쥐고 수업한다?! 언제 전화 올지 몰라서...."

그냥 흘려들었던 말인데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저렇게 전화해대는 걸 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요즘도 1번 엄마를 오며 가며 한 번씩 만난다. 따로 인사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예뻐서 눈에 띈다. 늘 메고 다니는 쪼메난 가방에 싹퉁머리를 쫌 넣어주고 싶다. 제발 쫌 챙기고 다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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