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 박물관 팔레 갈리에라 Palais Galliera
다시 고백한다. 파리 생활 13년, 패션 박물관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도 아니고 파리에서 운영하는 나름 시립 박물관이고 개관한지 50여 년이나 된 곳인걸. 이렇게 무던할 수가 있나. 파리에 살았어도 서쪽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살아 그랬다고, 혹은 생업에 바빠 그랬다고 애써 핑계를 대본다. 이번에 다녀온 계기도 학업을 마무리할 논문의 주제가 패션과 관련이 있어 담당 교수에게 듣고 찾아간 것이었다. 뭔가 학업적으로 건질만한 게 있나 해서 방문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내 주제와 관련성은 없어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아쉬우나마 레퍼런스 삼아 찍어온 몇 장의 사진들과 함께 기록이나 남겨볼까 한다.
주소 : 10, avenue Pierre-Ier-de-Serbie,75116 Paris
9호선 : Iéna ou Alma-Marceau 역
RER C: Pont de l'Alma 역
Palais Galliera, Musée de la Mode de la Ville de Paris
크고 작은 패션 관련 오브제들을 20만 점 보유하고 있는 팔레 갈리에라는 주기별로 테마를 설정하여 전시 컬렉션을 변경한다. 즉 상설 전시가 없는 독특한 박물관이다. 아마 패션이라는 성향에는 시대의 트렌드에 따른 기획 전시가 더 어울린다고 판단한 듯하다. 올해 2024년 2,3,4 분기는 파리올림픽 영향으로 실외 액티비티 및 스포츠 의복 역사를 전반적으로 살핀 « 움직이는 패션 (La mode en mouvement) »을 테마로 전시 중이다. 해당 전시는 내년 1월 초까지 지속되며 이후 다른 테마로 변경될 예정이다.
파리시에서 운영하는 대부분의 박물관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나 이곳은 유로이다. 입장료는 성인 일반 요금은 12유로, 학생 할인을 받으면 10유로이다. 솔직히 이만큼의 비용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20만 점의 컬렉션은 어디 가고, 정작 전시돼어 있는 물량은 절반도 안 되 보인다. 무엇보다 패션의 수도인만큼 전설적인 패션 브랜드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전시 물량이 상당히 단출하다. 꼼꼼하게 둘러봐도 한 시간이면 끝나버리니 상당히 아쉽다. 오디오 가이드도 구비되어 있지 않고 가이딩 서비스도 오직 프랑스어로만 일주일에 두 번 구성되어 있다는 것 역시 아쉬운 점.
Histoire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갈리에라 공작 부부는 당시 제노바 시의 절반 이상의 시설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큰 부자였다. 하지만 하인의 인사 사고로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 파리로 망명했다. 파리로 이주한 부부는 그들의 부를 기반으로 파리-오를레앙 철도회사를 비롯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또 다른 치원의 부를 파리에서 축적하게 되었다.
특히 갈리에라 공작은 몰락한 오를레앙 가문의 상당한 재산을 매입하였는데 그중 도심 한가운데 위치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프라이빗 정원이 딸린 저택을 인수하였다. 그 저택이 지금의 팔레 갈리에라가 되었다. 공작부인의 진두지휘로 이곳을 이탈리아 르네상스 풍의 외관으로 리모델링했는데 이는 자신의 고향에 소유한 궁전을 바탕으로 주문했다고 한다. 커다란 통창의 프레임을 비롯한 내부 철골은 구스타프 에펠이 설계하였고 당대 유명 프랑스 건축가, 이탈리아 타일 세공사 등 최고의 장인들의 손길이 닿은 이곳은 건축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갈리에라 공작 사망 이후, 공작부인은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 남았고, 자신이 사랑한 도시 파리에서 자선 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한때 아름다운 작품들을 전시하며 유명인들을 초대하던 살롱이 열린 화려한 이 저택을 파리시에 기증하기로 결심했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파리시는 갈리에라 공작으로부터 인수받아 파리 만국 박람회의 특별 전시관을 거쳐 1977년에 최종적으로 패션 박물관으로 개장하게 되었다.
La mode en mouvement
간소한 전시 중, 맘을 이끈 몇 가지 의상의 사진을 찍어 왔다. 예쁜 리넨 에이라인 드레스의 테니스 복. 백 년 전 파리 올림픽의 여성 선수 참가자 의상(설명에는 크리켓, 골프, 테니스 등의 여성 참가자를 위해 고안되었다고 기재되었는데 찾아보니까 일부 빙상 경기 외 당시 여성 선수는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구상만 해두고 못 써먹은 듯), 오토바이 라이더를 위해 만들어져 양손을 자유롭게 한 호보백 에르메스의 모토백. 그리고 생로랑의 성관념을 뒤흔든 혁명적 여성 수트, 르 스모킹 라인 점프수트까지 의미 있고 흥미로운 작품들도 많았다. 하지만 스포츠 테마의 컬렉션이 부족해서일까? 전시관의 절반을 해변 의상으로 메꾼 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팔레 갈리에라는 패션의 역사와 예술적 의의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패션 애호가들에게는 랜드마크인 장소임은 분명하다. 19세기 부유층 저택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과 그 건물을 둘러싼 브리뇰 갈리에라 스퀘어 square Brignole-Galliera 또한 아름다운 조경과 함께 조용한 휴식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굳이 박물관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이방인이었던 갈리에라 공작 부부가 반한 이유가 담긴 이 작은 공원은 꼭 한번 산책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