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위작의 미술사]
내셔널 갤러리, 네덜란드 국립 박물관, 반 고흐 미술관, 뉴욕 현대 미술관 등 해외를 가면 한국에서도 가지 않았던 유명 미술관을 들리기도 한다. 미술에 '미'자도 모르는 필자 또한 유럽여행을 가서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 스타 중 하나는 바로 '모나리자'이다. 그러나 미술관에서 모나리자는 자세히 관찰할 수 없었다. 직원들의 통제를 받으며 줄을 서야 비로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나마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림을 본다기 보다는 루브르 박물관에 왔다는 인증 스팟의 느낌이 더욱 강했다. 정말로 모나리자를 자세히 관찰하고 싶다면 루브르 박물관보다 검색창이 훨씬 더 편하고 자세하다. 비록 진짜는 아니지만 시각적인 측면에 있어 특별한 차이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짜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줄을 섰다. 사람들은 '진짜'를 갈망하는 것일까?
<에트루리아 부부의 석관>은 기원전 9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경 이탈리아 남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돌로 만들어진 관이다. 부부가 죽어서 다시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는 에트루리아의 사후 신앙을 담고 있는데, 로마 국립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을 보면 한 부부가 같이 기대어 앉아 웃고 있는 모습이다.
동상이 그렇게 정교하지는 않지만 3,000년 전의 사람의 모습과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비슷한 모양의 석관을 유럽 대형 박물관들은 하나씩 소장하고 있었으나, 영국박물관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1930년, 영국박물관은 이탈리아 중부에서 한 석관을 찾았는데 다른 석관보다 돌이 정교하게 깎여있고 장식도 화려했다. 대대적인 전시회 준비에 들어갔지만 연구 결과 뚜껑에 새겨진 여자의 속옷이 19세기 여인들이 입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작품은 조용히 버려졌다.
르네상스의 거장 산드로 보티첼리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여인 '시모네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가 그린 <석류의 마돈나>를 보면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베일을 쓴 마돈나>라는 작품 또한 그녀를 모델로 그려졌는데, 이 작품 또한 보티첼리가 그렸다고 알려졌었다. 작품에 대한 서류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보티첼리가 그리고 메디치 집안에 걸려있었던 걸작이라는 구전을 믿었다. 그러나 1934년 런던 갤러리의 한 디렉터가 위작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베일을 쓴 마돈나>는 판넬이라는 나무판에 그려진 작품인데, 시간이 지나며 벌레가 나무를 파먹어서 뚫린 구멍들이 있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하여 X선으로 그림을 찍어보니 반듯한 일자 형태의 구멍이 있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벌레가 곧게 구멍을 뚫었을리는 없을테니 누군가 인위적으로 못을 박아 구멍을 냈다는 말이 되었다. 또한 작품 재료를 분석하는 EDX 기법으로 그림을 살펴보자 르네상스 시대에 사용할 수 없었던 코발트블루(1800년대 초 만들어진 물감)와 크롬 옥사이드 그린(1860년대)이 발견되었다. 결국 이탈리아 출신의 한 미술대학 강사가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모든 위작이 형편없는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스페니시 포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측되는, 이름도 출신도 명확하지 않은 위작 화가다. 그의 첫 위작으로 발견된 작품이 15세기 스페인 화가 호혜 잉글레스 작품이었기 때문에, 비록 그가 스페인 사람인지 스페인에서 활동했는지도 모르지만 '스페인에서 온 위작 화가'라는 의미로 스페니시 포저(The Spanish Forger)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주로 중세 미술품을 위작했는데, 중세 미술의 특징과 재료의 성질을 잘 파악하여 진짜 같은 위작을 다수 만들어냈다. 양피지나 진짜 중세 책의 본문 글을 지워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작품 역시 중세 시대에 쓰일 수 없는 물감(울트라마린 블루, 실레 녹색)이 사용되었음을 확인되었으나, 대형 미술관이나 수집가들은 그의 위작을 수집하기도 한다.
독일의 화가 볼프강 벨트라키는 위작을 그리고 그의 아내 헬렌느 벨트라키는 위작을 판매하는 역할을 맡았다. 볼프강 벨트라키는 먼저 위작을 그릴 작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았다. 캔버스, 물감, 연필, 지우개도 최대한 원작이 그려질 당시의 재료를 구했고 헬렌느 벨트라키는 골동품 시장에서 그러한 재료들을 사왔다. 원작 화가가 그림을 그렸을만한 장소로 직접 찾아가서 그림을 그리는 순서도 그대로 따라했다. 만일 원작이 2박 3일에 만들어졌다면 그 또한 2박 3일에 걸쳐 위작을 완성했으며, 원작이 비 오는 날에 그려졌다면,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려 위작을 그렸다. 이런 정성에 감복해서일까 그들의 위작은 원작보다 더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했다.
필자는 사람들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보다 의미를 추구한다고 본다. <에트루리아 부부의 석관>에서의 역사적 가치처럼 원작과 위작의 확실한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페니시 포저와 벨트라키 부부의 위작이 원작 이상의 대접을 받는 것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또다른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과 도구의 다른 점을 실존과 본질의 차이로 설명했다. 도구는 실존보다 본질(망치는 못을 박기위해 만들어진다)이 앞서지만, 인간은 본질보다 실존이 앞선다고 말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세상에 태어나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로 본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지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지에 대한 정답에 답할 수는 없지만, 인생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라는 점은 확실하다. 마치 6월 9일의 일출은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1월 1일의 일출은 경이롭게 느끼는 것처럼, 매일 뜨고 지는 태양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그것은 예술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