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는 왜 고귀해졌는가?
가끔 공공장소나 공원, 카페에 들를 때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세요' '잔디를 밟지 마세요'와 같은 팻말을 보기도 한다. 잔디는 미국에서 옥수수와 밀 다음으로 널리 '재배'되는 작물이다. 잔디와 관련된 산업, 이를테면 퇴비, 잔디 깎는 기계, 스프링쿨러, 정원사의 시장 규모도 만만치 않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을 상상하면 전원주택에 꼭 잔디밭이 깔린 이미지가 떠오른다. 고급 스포츠로 인식되는 테니스와 골프도 잔디밭 위에서 치러진다. 미국에 방문한 엘리자베스 여왕 2세의 환영식은 백악관 앞 잔디밭에서 열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잔디가 조금 어이 없기도 하다.
잔디는 그것을 관리하는 대가에 비해 가치있는 것을 생산해내지 않는다. 땅은 물론이고 잔디를 키우고 관리하는데는 어마어마한 노력이다. 과거에 잔디를 깎는 기계와 스프링쿨러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일일이 사람 손으로 잔디를 관리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넓은 지역에 동물들을 풀어놓을 수도 없는데, 애써 관리해논 잔디를 동물들이 풀을 뜯어먹고 짓밟기 때문이다. 일부 공원에서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애완동물의 잔디밭 출입을 금지한다. 석기 시대의 먼 조상 중 부유했던 일부 부족들은 동굴 입구에 잔디를 심지 않았다. 심지어 옛 로마의 신들을 모시는 판테온에도 신들을 위한 잔디밭을 깔지는 않았다.
잔디가 귀중한 대접의 시작은 중세 말 프랑스와 영국 귀족들의 저택에서 탄생했다. 가난한 농부는 잔디 따위에 귀중한 땅과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인간의 배를 불리는 어떤 농작물을 생산하지도 않고, 가축의 배도 불리지 못하는 정갈하게 관리된 잔디밭은 명실상부의 부의 상징이었다. 잔디밭은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으며, '나는 이 광대하게 푸르른 사치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땅과 농노를 소유하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더 넓고 잘 정돈되어 있는 잔디밭을 가지고 있을수록 힘 있는 가문이었다. 반면 잔디밭이 잘 관리되지 않은 공작의 집은 그가 곤경에 처해있음을 알 수 있는 표식이기도 했다.
이렇게 잔디는 정치적 권력,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의 상징이 되었다. 19세기 부상한 자본가 계급은 이러한 관념에 따라 잔디를 깔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중산층이 많아지고 잔디 깎는 기계와 스프링쿨러로 잔디를 더욱 쉽게 관리할 수 있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 앞마당에 잔디를 깔게 되었다. 사람들은 잔디를 권력, 돈, 명성과 연관지은 과거 프랑스의 귀족과 자본가가 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필자가 중학생이었을때 학교 운동장에 잔디가 깔려있는 학교를 부러워하고 돈이 많다고 생각했던걸 돌이켜보면 그러한 관념이 알게모르게 작용하고 있었다. 잔디 계급 상승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고 잔디가 전해주는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관념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고 있지 않나 싶다. 중세 귀족들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가꾸던 잔디밭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전원주택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잔디밭이 생각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필자도 잔디밭을 여전히 좋아한다. 그러나 잔디를 바라볼 때, 그저 단순한 녹색 바탕으로만 보지 않고 그 속에 깃든 사회적 상징성과 문화적 변화를 되새겨볼 수 있다. 이렇게 익숙하고 사소한 잔디 한 포기 마저도 역사가 있다. 역사를 공부하면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고 과거로부터 온 관념과는 다른 상상을 해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