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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Nov 25. 2024

그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원효와 의상은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비를 피해 조그만 동굴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목이 너무 말라 동굴에 있던 물을 달게 마셨는데 그것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해골에 고여있던 물인 것을 발견했다. 이 일이 일어난 날, 의상과 원효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대로 당나라에 유학 길에 올라 엘리트 학승의 길을 걸은 의상과 달리, 해골 물에서 얻은 교훈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를 바탕으로 파계승의 길을 걷게 되었다. 파계승 원효대사가 오늘날 일반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건 플라시보 효과를 내포한 강력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좋아지게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플라시보 효과는 가짜 약이나 치료법으로 환자를 치료했는데도, 환자의 긍정적인 믿음을 통해 건강이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진통제였던 모르핀이 부족해지자 몇몇 의사는 생리 식염수를 모르핀으로 속여서 환자들에게 투약했는데 놀랍게도 통증이 호전되었다. 


플라시보 효과는 1976년 한 언론인이 스스로 겪은 경험을 통해 발간한 '질병 해부학'이란 논문을 통해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주간 평론지 '새터데이 리뷰'의 편집자였던 노먼 커즌스(Norman Cousins)는 강직성 척추염을 진단받는다. 척추에 염증이 생기는 것을 시작으로 척추 마디가 점점 굳어가는 강직성 척추염은 당시에도 치료 가능성이 0.2%, 거의 불치병에 가까웠던 만성 염증성 관절염(류마티스) 질환이다. 좌절을 겪던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건 생리학자 윌터 캐넌이 한 말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이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윌터 캐넌


노먼 커즌스는 반대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감정이 인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그는 자신만의 강직성 척추염 회복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그 속에는 코미디 영화를 보고 유머가 담긴 책을 읽는 활동이 있었다. 그는 거의 마비까지 갔던 몸 상태에서 가벼운 조깅이 가능한 몸 상태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진통제 대신 고용량 비타민 C를 복용하기 등 플라시보 효과 덕분만은 아니었겠지만  "10분간의 진정한 배꼽 웃음이 마취 효과가 있어 최소 2시간 동안 통증 없이 잠을 잘 수 있게 해준다" 라는 말을 남겼을 만큼 긍정적인 감정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2007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청소부 84명에게 평소에 운동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고 대답했다. 연구진은 청소부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게만 현재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30분 씩 운동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한 달이 지나고 이들의 건강을 측정하자 운동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지받은 쪽의 그룹은 혈압이 10% 내려가고 체중도 0.9kg 빠졌다.


2024년 노스캐롤라이나 의대 연구진의 연구를 보면 플라시보 효과는 쥐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연구팀은 생쥐를 두 방에 나누고 실험 첫 3일 동안 두 방의 온도를 동일하게 유지했다. 4일째가 되던 날, 2번 방의 온도를 48도로 올리자 2번 방에 있던 생쥐들은 온도가 낮은 1번 방으로 이동했다. 7일째 되던 날 1번 방의 온도를 똑같이 48도로 올렸지만, 놀랍게도 생쥐들은 1번 방에 더 오래 머물렀다. 두 방의 온도가 동일했음에도 1번 방이 더 시원하다는 플라시보 효과가 생쥐들에게 작용했다. 뜨거운 온도로 인한 고통 때문에 발바닥을 핥는 행위는 1번에서 머물 때가 2번에서 머물 때보다 현저히 적었다. 심지어 연구진들은 활성화된 다리뇌핵(대뇌 피질에서 소뇌로 연결되는 부위)의 신경세포를 분석했는데, 놀랍게도 모르핀(진통제)를 먹었을 때 모르핀과 결합해 진통 효과를 발휘하는 오피오이드 수용체가 발견되었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절대로 우리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사고방식은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바꾸지 못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언젠가는 고통스러운 통증을 겪게 된다. 필자는 만성 염증으로 고생하던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주변인의 말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라는 마음이 솟아오르며 그런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필자는 온전히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 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고통을 그자체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계속되는 부정적인 감정은 명백하게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우린 태어났으니까

크라잉 넛 <좋지 아니한가>의 가사 中


필자가 아팠던 시절, 크라잉 넛의 <좋지 아니한가>라는 한 가사에서 큰 울림을 받았던 적이 있다. 울어야만 하는 날은 존재한다. 그러나 계속 울고만 있었다면,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느꼈던 좋은 순간들은 다시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통에 잠식되지 않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마음 속으로 노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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