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
내가 쓴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덴마크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이었고, 어머니는 글을 읽지 못하는 세탁부였다. <성냥팔이 소녀>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써내려간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의 외할머니는 매춘부였고 그의 어머니는 사생아로 태어나 십대 시절 매춘 생활을 했었고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정신 분열증에 시달리며 미신과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안데르센은 이러한 자신의 가족과 환경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아이였던 안데르센은 사실 자신이 귀족이고 천사들과 대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짓말을 꾸며내었다. 안데르센의 친구들은 그의 할머니처럼 미쳤다며 그를 멀리했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아들이 조금 더 큰 꿈을 꾸기를 바라며 밤마다 희곡을 읽어주었다. 19세기 신분제가 아직은 엄격하던 시절 그는 계속해서 꿈을 꾸고 좌절을 반복했다. 배우를 꿈꿨지만 외모와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문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었고, 사랑에도 번번히 실패했다.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그였지만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꾸준히 시, 소설, 희곡 작품을 발표했고 결국 그의 작품은 인정받았다. 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린 인어공주, 추운 겨울 속에 성냥팔이 소녀, 소외된 미운 오리 새끼, 불에 타 사라진 장난감 병정을 보면 그의 삶이 겹쳐보이기도 한다.
<성냥팔이 소녀>는 사실 아이들이 읽는 책 치고 잔인한 면이 있다. 물론 느닷없이 찾아와 간을 내놓으라는 거북이나, 늑대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 하는 오누이와 돼지들도 그렇지만 차디찬 겨울 밤 길에서 죽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는 잔혹하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분주한 거리 속 사람들은 맨발로 성냥을 파는 소녀를 지나쳐간다. 소녀는 얼어붙은 손을 녹이고자 성냥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그녀는 성냥 불 속에서 커다란 난로, 푸짐한 저녁상을 보았다. 그러나 성냥불은 금새 꺼졌다. 세 번째 성냥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오자 그녀는 모든 성냥을 태웠고, 다음날 환한 미소를 띄며 광장에서 동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라 말했다.
그러나 작가의 배경에서 벗어나 조금 더 큰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이렇다. 책이 나온 1845년,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성냥은 생활필수품으로 떠올랐다. 이런 성냥을 만드는 공장 인력 대부분이 10대 청소년들이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출간되는 무렵, 유럽 대륙에 덮친 '감자마름병'으로 많은 국가가 대기근을 겪었다. 스스로의 생존 또는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많은 10대 청소년들은 공장으로 나서야 했다.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지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체에 치명적인 백린 성분에 노출되는 작업이었다. 한 아동 문학 이론가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 주목했다.
성냥팔이 소녀는 산업화의 물결 속,
노동을 착취당한 소녀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잔혹한 측면보다 더 당연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한 아이는 지적했다. 어머니에게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듣고 난 한 아이는 물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이름은 뭐였어요?” 어머니가 그녀의 이름이 없는 것 같다고 답하자 “이름 없는 아이가 어디있냐”며 아이는 반문했다. <성냥팔이 소녀> 전문을 찾아봐도, 정보가 흘러넘치는 인터넷과 AI에게 물어도 그녀의 이름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성냥팔이 소녀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여러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에 성냥 공장에 다니던 수많은 10대 소녀를 상징적으로 나타냈었을 수도 있다. 사회와 개인이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필자는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며 소녀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름 없는 존재는 쉽게 잊히고 희미해진다. 성냥팔이 소녀의 이름을 물은 아이는 어른인 나보다도 그녀를 한 사람으로서 대한다. 그녀의 이름을 묻고 그녀의 이야기에 더욱 귀기울여 들으려 한다. 진정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자 했던 아이의 질문에는 울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