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아침부터 그것도 서울에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한적한 휴양림에서다. 모든 걸 비우러 떠난 여행 앞에서조차 선택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조식으로 커피와 빵을 먹을까
아니면 어제 휴양림에 들어오면서, 마트에서 산 컵라면을 먹을까.
이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된 선택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이어질 것이다.
찜해둔 카페에 들를까,
길이 막히기 전에 곧장 올라갈까.
나도 이럴진대 '후안'은 어떨까?
후안은,
그림책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 후안에게 닥친 끝없는 시련과 고난에 대하여> 주인공이다. 여섯 살 아이가 맞닥뜨린 선택의 순간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백과사전의 지식을 줄줄 외우던 '후안'은 엄마가 던진 단순한 질문, "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때부터 처음으로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선택 앞에 섰다.
우리는 영화 '타짜'속 인물처럼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묻고 더블로 가!"를 택하며 호탕하게 외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호기로운 외침도 어쩌면 불안을 감추기 위한 방패일지 모른다.
혹은 "난 선택 장애가 있어." 라며 피할 수도 있겠다.
그림책 <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 후안에게 닥친 끝없는 고난과 시련에 대하여>의 후안 엄마가
"후안, 뭔가 어려울 때는 네 안을 곰곰이 들여다보렴. 해답은 그 안에 있을 수도 있단다."
살다 보면 선택은 피할 수 없다. 크든, 작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 앞을 찾아온다. 모든 길의 끝을 미리 알 수 없기에 선택은 늘 조금의 두려움을 품고 다가온다.
어느 쪽을 고르더라도 예상치 못한 바람이 불고, 예상 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완벽한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선택은 항상 각자의 몫이다.
이 선택이 원하는 결과와 맞아떨어지든 빗나가든,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 편의 소중한 이야기가 된다. 노력한 과정 자체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