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우리들
잘 만든 영화란?
잘 만든 영화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흥행에 성공했거나 아니면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은 영화가 그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바다가 들린다는 어떨까요? 이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도 않았고 제작사인 지브리 스튜디오 내부에서도 이게 과연 잘 만든 영화인가 하는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합니다. 포털 사이트의 리뷰를 봐도 스토리가 엉성하다며 별점 테러를 한 네티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영화를 처음 본지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주인공 타쿠처럼 감정표현에 서툰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듭니다.
그 시절의 우리들
영화 <바다가 들린다> (모치즈키 토모미, 1993)
이 영화의 배경은 일본 시코쿠 지방에 있는 고치현이라는 곳입니다. 고치현에 살고 있는 주인공 타쿠와 모범생인 그의 친구 유타카, 그리고 도쿄에서 전학 온 리카코라는 여학생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공부, 운동을 모두 잘하고 예쁘기까지 한 리카코는 전학 오자마자 전교생들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학생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동시에 그녀를 질투하는 여학생들도 생겨납니다.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고 이기적인 면도 있는 리카코이기에 늘 여학생들과 트러블이 생깁니다.
착하기만 한 타쿠는 늘 리카코에게 이용당합니다. 수학여행 가서 6만 엔이라는 큰돈을 선뜻 빌려주게 되고 리카코는 바로 갚기 힘들 것 같다는 말만 합니다. 아빠를 만나러 도쿄에 가고 싶다는 리카코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무작정 도쿄행 비행기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도쿄에 가서도 리카코의 이기적인 행동은 계속됩니다. 도쿄까지 동행해준 타쿠를 호텔방에 두고 나가더니, 잠시 후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여기로 와줘. 도와주는 셈 치고 빨리 와달란 말이야."라고 부탁을 합니다. 호텔 로비로 내려가 보니 리카코의 전 남자 친구 앞에서 남자 친구 행세를 해달라는 부탁이었고 타쿠는 또 한 번 리카코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첫사랑 영화의 클리셰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나 이기적인 성격의 리카코를 이해할 수 없고 그런 리카코를 좋아하게 되는 주인공의 감정선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첫사랑 영화의 클리셰가 여주인공은 늘 나쁜 X인걸 보면 첫사랑 영화의 법칙을 훌륭히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첫사랑을 되돌아보면 '그래 그 사람과 연애하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왜 그 또라이를 좋아하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첫사랑은 늘 서툽니다. 늘 감정표현에 서툴고 사소한 오해로 싸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인공 타쿠와 리카코의 서툴지만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마음에 듭니다.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한 어른의 연애는 아픈 만큼 성숙합니다. 더 이상 서툰 감정표현도 없고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지키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트 시그널과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저마다 연애에 통달한 것 같은 포스가 풍깁니다. 더 이상 가슴앓이하지 않아서 좋지만 그래도 가끔은 바다가 들린다 같은 풋풋함이 그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