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는 날엔, 얼어붙은 길바닥에서 맨발에 맨손으로 아무도 듣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늙은 거리의 악사와 슈베르트가 생각난다.
슈베르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등 교사를 그만두고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 내내 궁핍했던 그는 죽기 1년 전까지 피아노도 없이 기타 한 대로 수많은 곡들을 작곡했지만, 당시 지식인들이나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중에는 괴테도 있었는데,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에 곡을 붙여 괴테에게 보냈으나, 그 악보가 그대로 되돌아왔다. 베토벤과 불과 2km거리에 살았지만 소심했던 슈베르트는 감히 존경하던 베토벤을 오래도록 못찾아갔다. 다행히 베토벤을 만나 '아름다운 물레방아간의 아가씨'를 보여주고, 베토벤이 감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바로 1주일 뒤에 베토벤이 죽었다. 크게 슬퍼했던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관을 운구하는 음악가들 무리에 낄 수 있었다. 불행했던 슈베르트였지만, 그의 곡을 사랑한 사람들과 '슈베르티아데'라는 연주모임을 가졌고, 그들과 평생 친구가 되었다. 1817년 이 모임에서아름다운 '송어'가 초연됐고, 이후 피아노 5중주의 주제곡이 됐다. 1828년, 31 살 차가운 겨울 직전에짧은 생을 마감한 슈베르트는 죽기 전 4년 동안 슬픔이 가득한 24개의 가곡을 담은 '겨울 나그네'를 작곡했고, '거리의 악사(Der Leiermann)'가 마지막 곡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베토벤을 추앙했던 슈베르트는 무명음악가였지만 형과 친구들의 노력으로 베토벤의 무덤 바로 옆에 묻힐 수 있었다. 자신을겨울 길거리의 악사처럼 느꼈을 슈베르트가 200년 뒤에 이리 유명해질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첫번째 영상에서는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거리의 악사'를 알프레드 브렌델이 피아노로 반주하고,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가 노래를 부른다. 슈베르트 가곡을 부르는 성악가들 중 피셔 디스카우가 제일 유명한데, 그의 바리톤 음색이 쓸쓸한 듯 섬세하고 아름다운 슈베르트 노래에 잘 어울린다. 백발이 된 디스카우는 마치 슈베르트가 휘청거리는 거리의 악사를 직접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노래를 부른다. 베토벤을 잘 이해한다고 알려진 피아니스트 브렌델이 반주를 맡아서, 마치 슈베르트가 존경해마지 않던 베토벤과 협주하는 듯 들린다.
독일어 가사다 보니 내용을 직접 알기 어렵지만, 영상 속 영어 번역은 직관적이다. 우리말 번역이 여럿 있지만, 직접 번역해 본다. 허디-거디는 손풍금인데, 한 손으로 바퀴를 돌리면서 다른 손으로 건반을 눌러서 연주한다. 돌리는 걸 멈추면, 연주도 멈춘다. 그래서인지, 이 거리의 악사는 온 힘을 다 해서 돌리고 또 돌린다. (마지막 영상 참조)
거리의 악사
뮐러 작사 (1794~1827)-슈베르트 작곡
저 마을에 손풍금 악사가 있네
언 손가락으로
최선을 다해 힘껏 돌리네
얼음 위에 맨발로 서서
앞뒤로 휘청거리지만
작은 접시는 언제나 텅 비었네
듣고 싶은 사람도 없고,
쳐다보는 이도 없네.
개들이 으르렁거리며 주변을 맴돌아도,
세상사 될 대로 되라는 듯
악사는 온 힘으로 돌리고,
풍금은 쉬지 않고 울리네.
그대 이상한 노인이여!
제가 그대와 함께 갈까요?
제 노래에 맞춰,
풍금을 연주해 주실래요?
두 번째 영상은 다니엘 바렌보임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키 134cm의 선천적 기형인 베이스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가 피셔 디스카우보다 더 낮은 저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노인이 되어서 젊었을 때의 욕망을 다 내려놓은 듯한 다니엘 바렌보임의 연주와 그래미 어워즈를 여러 차례 수상한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묵직하고 우수에 찬 노래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든다.
세 번째 영상에서는 아담 치칠리티의 클래식 기타 반주와 뮤지컬 가수 필립 슬라이의 노래가 훨씬 현대적으로 들리는데, 슈베르트가 기타로 이 곡을 작곡했을 거 같은 상상이 들 만큼, 바리톤과 기타가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