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배경으로 여러 개의 교회 종들이 한꺼번에 '땡땡땡, 땡땡땡' 아름답게 울리는 거 같은 라 깜빠넬라는 리메이크 송이다. 1832년 파리에서, 거장 파가니니의 자선 콘서트를 본 21살의 젊은 리스트는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인지, 리스트는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의 주제곡인 라 깜빠넬라를 골라서 피아노곡으로 리메이크했다. 라 깜빠넬라가 종이다 보니, 파가니니가 아무리 천재라도 바이올린 활로 현을 긁어서 내기 어려운 소리였을 거다. 이 부조화를 정확하게 찾아낸 리스트는 건반 해머로 현을 두드리는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처럼 화려하게 종소리를 그려냈다. 라 깜빠넬라하면 리스트를 떠올리는 지금,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라 깜빠넬라를 영원히 자신의 곡으로 만들었다.
'피아노는 그 자체로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했던 만큼 리스트의 곡들은 화려하고 기교가 넘치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좌절감을 안긴다. 라 깜빠넬라 역시 듣는 사람들의 귀는 즐겁지만, 내노라하는 피아니스트들에게도 어려운 곡이다. 1997년 원형으로 생긴 영국 로얄 알버트홀 중앙에서 26세의 샛별 예브게니 키신이 청중들을 향해 '파가니니-리스트 라 깜빠넬라'를 말한 뒤 땀을 뚝뚝 흘리며 라 깜빠넬라를 멋지게 연주해냈고, 이 4분 짜리 한 곡만으로도 키신은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 가슴에 자신의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그 뒤 이어진 랑랑이나 윤디 리 등 숱한 피아니스트들의 도전은 오히려 키신의 명성을 확고히 다지는 데 도움을 줬을 뿐, 키신은 조용히 왕좌를 지켰다.
2009년 미국 텍사스에서 쓰지이 노부유키가 오랜 고요를 깨며 등장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무대에 다른 사람의 팔에 손을 얹고 안내를 받으며 무대에 등장한 쓰지이 노부유키는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었다. 남다른 쓰지이 노부유키의 모습에 놀란 청중들은 깊고여음이 풍부한 라 깜파넬라를 숨조차 멈추고 들으며, 가슴 뭉클해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눈이 안보여서 손을 높이 띄우기 어려울 텐데도, 댕그랑 댕그랑 부드럽게 이어지는 종소리가 한없이 맑고 힘차다. 그 예쁜 종소리에 귀 기울이는 쓰지이 노부유키의 옅은 미소와자유로운 몸짓에서, 이 불가사의한 연주를 가능케 한 그의 음악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콩쿨에서 쓰지이 노부유키는 손열음을 제치고, 장 하오첸과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라 깜빠넬라는 아마도 영원히 쓰지이 노부유키의 곡이 된 듯싶다.
클래식 음악은 옛날 옛날 곡들이다 보니, 오랜 세월 다양한 연주자들이 한 곡을 연주한다. 죽은 연주자들과도 비교당하는 연주자들은 힘들겠지만,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서 좋다. 한 곡을 여러 버전으로 들으며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느껴보면 훨씬 재미있게 곡을 감상할 수 있다. 쓰지이 노부유키의 2009년 최초 영상과 키신의 1997년 로얄 알버트홀 영상에 더해서, 유명해진 노부유키가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BBC Proms 2013 영상과 발렌시아 리시차의 2013년 연주도 같이 소개한다.코로나가 터졌던 2020년, 공연을 취소하지 않고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무대에 섰던 리시챠는 마스크를 낀 채 듬성듬성 앉은 청중들 앞에게 앵콜곡으로 라 깜빠넬라를 아주 쉽게 쉽게 쳐보여서 인상적이었다.
라 캄파넬라 (1838 파가니니 작곡, 1851 개정)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 여섯 개 중 3번째 곡.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나단조에서 마지막 론도 악장의 주제에 해당한다.
니콜로 파가니니 (1782-1840) 제노바 공화국 출신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헝가리 광시곡, 라 캄파넬라 등을 작곡했다.
예브게니 키신 (Evgeny Kisin, 1971) 러시아 피아니스트이다.
쓰지이 노부유키 (nobuyuki tsujii, 2009) 1988년 일본에서 태어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이다.
발렌시아 리시챠(Valentina Lisitsa, 1973)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이다. 거리 공연 영상이 유튜브에 많이 올라와있다. 다 쉽게 쉽게 잘 친다.
라 깜빠넬라 연주 영상들.
쓰지이 노부유키 (nobuyuki tsujii, 2009) 반 클라이번 콩쿨 공동 우승 Van Clib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