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농사일에 불러 일을 시키면서도, 자식들에게사랑한다는 말이나 표현을 일절 할 줄 몰랐다.
아버지로서의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손녀를 대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따듯하고 다정한 모습이었다. 명절 때마다 한복을 입고 인사드리면, 허허
웃으며 할머니 몰래 용돈을 쥐어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 할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았다. 치매에는 ‘예쁜’ 치매와 ‘미운’ 치매가 있다고 한다. 예쁜 치매는 아이 때로 돌아가 웃고, 즐거워하고, 반가워하는 것이고, 미운 치매는 의심과 불만이 강해지고 본인과 타인 모두에게 마음고생을 시키는 치매라고 한다. 할아버지의 치매는 전자의 경우였다.
2013년 설날은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으신 지 1년이 다 되어가던 때였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자신의 이름과 행동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치매 증상이 심해지셨다. 할아버지는 일상적인 대화에 대답조차 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손녀인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실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 설날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항상 명절 아침에는 새벽에 일어나 세배를 드리는 게 당연했는데,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니 세배를 생략하고 대신 단정하게 차려 입고 인사말만 나누기로 하였다.
아픈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가 세뱃돈을 주셨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거실 구석에 앉아 조용히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한참을 휴대폰 끝만 만지작거리던 때, 할아버지가 나의 손을 잡고 텔레비전 아래 서랍장으로 데려가셨다. 손에 힘이 많이 빠지셔서 서랍장을 여는 것조차도 힘겨워하셨지만, 기어코 안을 뒤져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곤 웃으셨다.
“어쩐지 계속 잔돈이 비더라! 니 줄라꼬 할배가 거기(서랍장)에 잔돈 가져다 숨키놨나보다.”
할머니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더 이상 그 천원은 평범한 천원짜리 지폐가 아니었다. 기억을 하나둘씩 잃어가는 중에도 사랑하는 손주를 위해 꼬깃꼬깃 모아 온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 해 설날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치매를 앓은 지 채 1년도 되기 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