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없음. 생각만 가득.
며칠 전 인천 소방 공무원 시험 채점에 오류가 발생해 2명의 응시생의 합격 여부가 번복 발표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우연히 접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니 애초에 합격해야 하는 분의 필기시험 점수가 엑셀 오류로 인해 0점 처리되면서 불합격 처리되었던 것이 정상적으로 점수가 입력되면서 그분이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고 다른 1명은 부득이하게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불합격 통보를 받은 분이 결과에 수긍했다는 뉴스 기사를 보았다.
분명 최종적으로 오류가 발견되어 합격되어야 할 사람이 합격되고 불합격되어야 할 사람이 불합격되었기 때문에 분명 결과적으로 제대로 처리된 잘 된 일임에는 불구하고 무엇인가 찝찝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온전히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당연히 제대로 처리되어야 하는 방식으로 합격 여부가 정정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결과 자체를 수긍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나의 입장에서도 정정된 공고 결과를 수긍한다(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찝찝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채용 과정에 대한 투명성과 정확함에 대해서는 수긍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여러 신문에서도 사실 한 명의 오류에 대한 지적보다 채용 과정이 주먹구구가 아니냐는 식의 의문을 제기하는 데, 충분히 동의하는 바다.
어느덧 이제 10년 정도 전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학부 3학년 시절 한 출판사와 세계적 음료기업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공모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회사의 새로운 제품을 어떻게 홍보하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공모전이었다.
나와 나의 팀 멤버들은 각자의 역할에 맞게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것 같지만 나는 학부시절부터 공모전을 같이 준비하는 한 팀이 있었는데, 꽤나 좋은 팀이어서 여러 공모전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네 명의 멤버 중 두 명은 해외의 박사과정으로 한 명은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곧 마칠 예정이고 나머지 한 명은 국내 대기업 해외 플랜트에서 근무 중인데, 지금도 나는 나를 포함한 이 팀의 친구들이 꽤나 열심히 살고 똑똑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됐건 우리는 열심히 자료를 준비해서 제출하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표가 나기 3일 전 그 기업의 담당자로부터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내 기억으로 1차 합격 발표 후 가까운 시일 내 본사에서 최종 순위를 결정하는 발표 일정이 미리 정해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담당자의 연락은 그 발표에서 내가 한글로 발표를 할 수 있는지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보내주신 제안서가 좋다. 그런데 제안서가 영문으로 작성되었다. 발표는 한글로 준비해주실 수 있는가?"
(당시 제출 가이드라인에는 한글/영문이 모두 가능했다.)
나의 질문/대답은 이러했다.
"고맙다. 그렇다면 7일 뒤 있을 채택작 발표에 사용할 발표를 의미하는가? 준비할 수 있다. 발표가 진행되는 언어가 한글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슬라이드에 있는 단어들까지 모두 한글로 바꿔야 하는가?"
"모두 한글 이면 좋다. 고위직 분들이 영어보다 한글이 편하다."
"좋다. 그러면 그때 있을 발표를 위해 처음 제출했던 제안서, ppt까지 모두 한글로 바꾸고 한글로 발표를 하겠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는 우리 팀원에게 연락을 돌렸고 당장 한글로 발표를 해야 하기에 발표의 내용과 슬라이드에 들어갈 글자들을 모두 한글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준비를 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1차에서 합격을 했다고 믿었다. 그러니 그 4일 뒤 영문을 한글로 모두 바꾸어 달라고 연락이 온 것이 아닐까. 그것도 합격 발표 며칠 전에.
그리고 3일 뒤 우리는 당연히 1차 합격자에 우리가 있을 것이란 전제로 해당 공모전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그러나 그 날 합격 발표에 대한 어떤 공고도 올라와있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 일정으로 정해졌던 것보다 하루쯤 더 지난날 합격자 발표가 연기되고 있다는 공고 하나만 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팀원들은 왠지 모르게 우리가 발표를 못하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며칠 뒤 최종 합격 팀 명단에 우리 팀의 이름이 없었다.
충분히 가능하다. 경쟁이 치열했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아쉽게 탈락을 했을 수도 있다. 처음엔 우리의 제안이 좋은 제안이라고 보여서 채택을 했지만 우리보다 더 괜찮은 제안을 받은 한 팀이 최종으로 수상자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이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결과야 수긍하지만 그 과정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단 상금의 크기나, 그 기업의 채용기회, 수상에서 오는 기쁨 그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우리가 준비했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듣기 위해서 연습도 마쳤는데(그들의 요청에 의해서) 갑자기 그것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굉장히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듯 우리는 언제나 경쟁이 치열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최종 합격이 안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불합격되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최소한 왜 우리에게 미리 발표 준비를 할 것을 알려줬으며 그리고 어떤 이유로 우리가 최종 탈락이 안되었는지 연락 정도는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팀원들과 상의 후 그래도 전화를 한 통해서 물어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고, 아주 정중하게 그렇다면 우리 팀에게 연락을 미리 준 것은 대체 무엇인지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결과 자체에 관해서는 쉽게 수긍을 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결과를 바꾼다거나 억지로 발표 기회를 얻겠다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단지 우리에게 미리 발표를 준비할 것을 요청했던 그 담당자로부터 "미안하게 되었다"라는 사과 정도만 듣더라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고, 또 그에 관련된 이야기 정도는 듣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담당자의 반응이 참 이상했다.
담당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팀과 같이 미리 발표 준비 연락을 돌렸고 그 결과가 또 얼마나 많이 뒤집혔는지 우리 팀은 모른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 무기력하고 고압적인 말투로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최종 합격자 공고문에 너의 이름이 있으면 채택, 없으면 채택이 아니다"는 말을 들었다.
분명 이 사람은 내가 통화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우리가 최종합격자 명단에 없다는 것은 우리도 사이트를 통해서 확인을 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합격 발표 직 전 담당자님이 미리 발표를 준비해달라고 했었는데, 우리는 그것이 최종적으로 우리가 선정이 안되었더라도 우리의 제안이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혹시 어떤 부분이 결정적 결함이었는지 혹은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미리 담당자가 합격자에게 개별 통보를 하는 상황은 우리도 처음이었으니) 말씀해주시면 팀원들에게 내가 말을 해주겠다고 매우 정중하게 물어봤다.
(진심이다. 정말 정중하게 물어봤다.)
답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예상한 바와 같다.
"인생은 원래 이런 것이다. 결과를 순응하는 것이 너와 팀원 들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 그것을 배워라."
는 식의 설교만 들었다. 나는 왜 이런 설교를 들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본인 조직의 행정처리 미숙으로 어찌 됐건 타인의 시간과 정신적 비용을 발생시켰는데 어찌 이리 뻔뻔한 것일까. 심지어 이 기업은 내가 아주 애정 하는 음료기업인데, 그 기업에 대해 가졌던 모든 좋은 기억이 싹 날아가고 있었다. 결과를 순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과정에 관해서 본인이 오류를 만들었으니 그것에 대해 설명. 사과를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사람을 이상하게 몰고 갔다.
기업이 공모전을 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기업 외부인으로부터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고 그것에 대해 보상을 하는 것. 둘째, 해당 기업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함께 고민해주는 외부인(주로 일반 고객)들로 하여금 회사의 고민해결에 함께 참여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것. 확실히 두 번째 측면에서 이 공모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그 기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한국 지사와 해외 본사가 공동으로 관여한 이 공모전의 한국기업 담당자, 담당팀은 두 번째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우리 팀은 이것이 명백한 한국 지사의 문제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아주 정중하고 형식적인 메일을 통해 해당 기업의 해외 본사 마케팅, 프로모션 부서 담당자의 연락처를 찾았고, 그 기업에게 추후 해외 지사와 공동 프로모션 시 이런 일이 발생하게 않게 하기 위해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제안서를 보냈다.
물론 그 제안서는 두 세장 정도의 요약본이었지만 모든 상황에 대한 정리 그리고 우리 팀이 연락을 했던 한국 기업의 담당자와 담당팀의 연락처 그리고 문자로 남아있는 기록, 그리고 합격 발표가 늦어지는 걷고 관련해 한국의 지사 기업이 공고로 올린 글의 내용 등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답장을 받았다. 당연히 어떤 답장이 왔겠는가. 아시아 시장에 앞으로 이 신제품에 대한 여러 홍보가 있을 텐데 대학생 공모전도 기획하고 있다. 우리 제안의 내용을 듣고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향후 마케팅에 이 부분을 반영해서 전략을 수립하겠다. 그리고 진심 어린 사과의 메일도 받았다.
물론 그것이 형식적이었건 실제 좋은 것이었건 간에 그 본사의 기업은 지사 기업의 잘못된 과정, 운영에 대한 부분을 시인하고 사과와 감사의 표시를 전해왔다.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 팀원 넷 중 무려 두 명이 각자의 친구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연락을 받았다. 내가 받은 연락은 이렇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AAA야, 너 Y기업 공모전에 지원을 했다며. 불합격했는데 합격시켜주지 않아서 그 회사 본사에까지 연락을 해서 한국 기업 담당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며. 그 사람들이 다 우리 학교 선배들이야. 최소한 다 똑똑하고 유능하신 분들인데, 그분들이 너 때문에 많이 화났다는 말을 들었어. 이미 너와 네 팀 멤버들이 누군지 다 선배 라인을 통해서 수소문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 특히 우리 (공모전 동아리) 선배 한 명이 그 회사에 다니는데 너희들 다 찍혔다고 들었어."
이런 연락을 받았다. 차라리 그 담당자가 우리에게 연락을 해서 욕을 퍼부었다면 좋았을 텐데 정말 얼마나 수소문을 하고 다녔는지 나는 내 중학교 동창이자 대학 동기가 된 이 친구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게 되었다.(물론 내가 이 친구가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이런 멍청한.)
무엇보다 사실 우리의 개인정보는 그분들이 이미 다 가지고 있을 텐데 (우리가 애초에 지원하면서 적었으니까) 왜 우리에게 연락을 하지는 않으면서 우리의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연락을 하고 다닐까.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 우리 팀의 반응은 분노보다는 냉소에 가까웠다. 어차피 우리는 그 기업 "따위"에 원서를 넣을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특히 그 기업의 한국지사에) 그리고 우리는 일개 한 기업의 몇 담당자가 우리를 나쁘게 평가하고 또 그렇게 소문을 내더라도 사실 그런 시도가 어떠한 방식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평가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사람들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태까지 우리 각 개인이 나쁘지 않은 기관에서 채용, 선택되는 데 있어 그들이 미친 영향은 거의 없다. 오히려 우리는 각자 우리가 이제 처음으로 꼰대 문화를 처음으로 접했던 것에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득 이렇게 인천 소방 공무원의 합격 정정을 보다 보니 "사실 그때 내가 더 분노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만일 그 기업이 그리고 그 기업의 담당자가 공모전을 하면서 이런 실수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아니 사실 실수는 언제건 일어날 수 있다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본인들의 인맥을 사용해서 아주 간악하고 비겁한 방법으로(본인들이 직접 연락은 하지 않았으니까) 학교 선배라는 명분으로 그리고 본인들이 이 판을 잘 알고 있다는 거드름을 부리면서 공모전 참가 학생을 다룬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사실 담담하게 반응한 것처럼 말을 했지만 다시 기억을 되뇌어 보니 당시 우리 모든 멤버들은 굉장히 화나기도 했고 사실 또 선배라는 명분으로 친구를 이용해서 그 소식을 굳이 전하는 사람을 보면서 사실 주눅이 안 들지는 않았다.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이런 내 개인적인 경험을 사회적인 현상으로 생각해보면 사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꼰대의 사고를 가지고 있고 또 꼰대화되면서 이런 식의 불합리만 구조가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 널리고 널려서 이제는 진부한 느낌이 들 정도인데, 매년 꼭 한 두번은 유력 정치인 혹은 기업인의 자녀가 일반인보다 훨씬 못한 스펙을 가지고 대기업,공기업 등에 채용되었다는 뉴스를 볼때가 있다.
이런 뉴스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사실 그들이 취업준비생이고 또 합격하지 못해서 그들의 결과를 수긍하지 못한 분노가 아니다.
취업준비생들도 다 알고 있다. 현재 경제상황이 안 좋으니 채용시장도 안 좋을 수 있다. 그렇기에 본인보다 더 준비된 그리고 각 회사에 맞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 대신에 그 사람이 뽑혀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모두들 더 좋은 스펙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지게 된다면 뽑힌다는 전제가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 과정에 대한 믿음이 있는데, 그것이 무너진다는 느낌이 드니까 분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본인의 결과 그리고 현 상황을 못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이런 면에서 봤을때 10년 전이나 요즘이나 상황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게 아닌가 생각을 한다.
물론 외국의 기업들은 CEO 재량으로 많은 인재들을 임의로 선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각 기업마다 그리고 각 국가마다 그 기업이 국가.시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용인될수도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기업과 시장.국가는 나라마다 다른 관계를 맺고 있고, 채용의 형태.방식 또한 국가마다 상이하다. (가끔 몇 CEO들이 이런 비슷한 말을 하는데 그것은 그런 서구의 기업들이 기업의 설립부터 발전까지 국가로부터 어떤 국책 사업을 받지도 않고 또 어떤 보조금이나 경제구제 수단이 있을 수 없는 경제환경에서 운영되는 기업이기에 채용의 자율성 자체가 있는 것이므로 그들의 채용 문화를 한국의 채용에 적용하는 것은 옳은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기록하게 되었지만 여하튼 나는 이런 이유로 분노를 한다. 결론은 다음에 시간이 날때 또 적기로 하고 일단 마무리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