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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월과 팔월 Oct 23. 2015

2014년 11월 17일

세번째 쓰는 글

오랜 투병기간 동안 우리는 어머니와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결국 떠나셨고,  지금와서 그 많은 약속들을 떠올리자니 사실 그때의 약속들은 모두 어머니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의 리스트였다는 점을 지독하게 깨닫고 있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노가리에 시원한 생맥주 한잔하기

바닷가 횟집에서 마음껏 회 먹기 

사람이 많은 고기 집에서 직접 석쇠불고기 구어먹기

겨울엔 꼭 따뜻한 남국에 가기 

영화처럼 문득 가장 가까운 해외(일본)으로 가기 


등 ... 


평소 술을 많이 드시지도 못했던 어머니 셨지만 늘 맥주집을 지날때마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노가리를 안주삼아 정신이 멍해질정도록 시원한 생맥주를 거하게 한잔 드시고 싶어하셨었다. 물론 다른 암환자 분들 중에서는 삶에 대한 깨달음 혹은 내려놓음이 크셨는지 간혹 맥주를 드시는 분들을 보기도 했지만 사실 암환자들이 맥주를 마음편하게 마시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회 또한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했던 약속이었다. 


암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겐 이것이 약속거리라도 될 인인가. 사실 어찌보면 일반인들은 좀 적당히 해야할 일일지도 모르는 이 일을 어머니와 우리는 꼭 병이 다 나으면 하는 기약없는 약속으로 남겨두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지만 결국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그 쉬운 맥주한모금 들이키기를 못하고 돌아가셨다. 술은 당연히 못했고, 회 같은 날음식은 면역력을 떨어뜨리므로 먹지 못했고, 사람이 많은 곳은 힘들고 더욱이 석쇠불고기는 석쇠의 특성상 고기가 많이 타므로 자꾸 피하다가 먹지 못했기에 이 또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따뜻한 남쪽 지방 혹은 남국(해외)로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사실 해외여행을 다녀오기 위해서는 비록 여행일정이 3박 4일 정도의 단순한 일정이라 할지라도 이 3-4일간의 일정은 사실 암환자에겐 최소 2주 정도의 일정에 가깝다. 거의 격주로 병원을 가기도 해야했지만 방사선 치료나 혹은 항암주사를 맞고 오는 주라면 그 부작용으로 최소 3일 동안은 어떻게해도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없는데, 컨디션이 올라오기 무섭게 다시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기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어려움에 더해 해외에서의 응급상황에 대한 걱정까지 보태면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당시엔 ‘병이 완치되면...’이라는 조항을 달아둠으로써 언제건 떠날 수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어머니의 긴 투병시간과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모두 지나고보니 차라리 외국에서 병원 신세를 졌었어야 했는데 '그 까짓것 왜 못했을까’ 라는 생각만 든다.


저녁식사를 먹고 이른 저녁 집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남산타워를 보면서 어머니와 늘 이런 이야길했다. '오늘 하늘이 맑다. 남산이나 가볼까?’ 어머니가 꺼내신 말씀이다. 그러면 이 말은 어머니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가까웠다. 이내 ’사람들이 많은 곳은 힘들어. 너희들 어렸을때 많이 데려갔었는데… 다음에 낫고 가자야지 뭐’ 라는 혼잣말로 대답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간단히 저녁을 먹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도 맑고, 어머니와 함께했던 여느 그날 처럼 남산타워는 여전히 색색의 형광색 빛을 뽐내고 있다. 그래서 이내 식탁을 정리하고, 혼자서 이 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오늘 가보자. 남산에.” 

 


그렇게 집을 나왔다. 차에 시동을 걸고, 평소에 검색해보지 않았던 주소를 입력했다. '남산타워... ' 그렇게 운전대를 잡고 남산으로 갔다. 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뭔가 모를 결연한 마음 같은 것 때문이었는지 어느때보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음성을 새겨들으려고 노력하며 운전을 했고, 결국 남산에 도착했다. 


늦은 가을 저녁 밤 남산 주창에 차를 주차하고 남산타워로 올라가는 20여분의 등산로를 혼자 걸었다. 이제 입에서 김이난다. 산을 오르면서도 마찬가지로 올라가는 길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겨가며 남산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내와 동생이 각자의 학교로, 아버지가 직장으로 떠난 뒤의 오후. 그 시간부터 저녁 5시 전까지 어찌보면 어머니는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 시간을 메우기위해 어느날 부터 어머니는 뒷산 등산을 시작했고, 3-4년이 지난 뒤에는 꽤 큰 산들을 오르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셨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어머니와 가끔 등산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주 짧은 20분 정도의 짧은 남산 등산로였지만 그 산을 혼자오르며 어머니에 관하여 생각하자니 슬픈 마음이 든다. 철 없이 어렸던 학생이었던 나도 이제는 서른을 넘어 사실 어머니 시절이었으면 자식을 두고 있을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와 홀로 매일 낮 등산을 하셨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나 역시 혼자 산을 걷고 올라가자니 혼자 하는 등산이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한 일인지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가끔 어머니와 등산을 가면서 이런 이야길 하곤 했다.


"엄마는 환자인데 정말 대단해.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서 어떻게 산을 올라가? 우리 엄마 정말 병 완치되면 에베레스트 갈 수 있게 최고 등산복, 장비 다 사드려야겠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정말 어머니가 사실 암만 아니라면 정말 건강하다고 생각했었고, 또 정말 말도 많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홀로 산을 오르며 생각해보니 정말 몸이 괜찮아서, 그리고 말할 일이 남아돌아서 말을 그토록 많이 하셨던 것이 아니란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혼자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거의 평소 일상생활을 하면서 하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오늘 하늘이 맑고, 입김이 부는 구나...'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작년에 입김이 불때 새벽에 시험공부를 하던 기억으로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치고 논술학원 다니던 기억까지.. 순식간에 이런 많은 생각이 들다니 어머니는 등산을 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던 것일까 새삼 깨닫게 된다. 


'생각이 많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어쩌다 슬픈생각이나 불안한 것이 가끔 불쑥 떠오르기도 하면서 가끔 결국 우울해지거나 걱정만 쌓였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어떠셨을까... 아마도 당장 당신의 건강도 걱정되셨겠지만 거의 9할의 생각이 남은 가족 걱정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아니라도 사실 산에 오르시면서 '왜 하필 내가 암에 걸렸을까'라는 생각도 충분히 하셨을거란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 길이 엄청난 고행의 길 혹은 고독의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든다. 


사실 '그깟 해외여행 왜 다녀오질 못했을까'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왔지만 지금 산을 오르면서는 '왜 좀 더 어머니와 등산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더 든다. 


어찌되었건 20분 정도의 등산을 마치고 남산타워로 올라왔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고, 속으로 '엄마 내가 결국 혼자 이 곳에 오게되었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다시 이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인데 사실 오늘 나는 어머니와 약속을 나 혼자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남산으로 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의 약속을 혼자 지킨다는 마음에 뭔가 결연한 마음으로 남산으로 오르는 길을 되뇌이며 산을 올랐다. 그런데 막상 남산타워를 둘러보고 집에와서 드는 생각은 사실 약속을 지키기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아직 어머니가 보고 싶어 이 곳을 찾은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나는 남산으로 가는 동안 사실 계속 어머니를 떠올렸고, 그 곳에 도착해서도 '엄마가 왔으면 무슨 말을 했을까..' 가령 '거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오겠니..'부터 '나도 너희 어릴 적에 이곳에 많이 데리고 왔지...'등을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정말 어머니가 더 보고싶고, 영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암환자나 암환자의 가족 모두 투병 기간동안 대부분 '병이 완치되면..'이라는 조건으로 수많은 일들을 소위 버킷리스트로 남겨둔 채 미루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엔 그 리스트들이 결국 어머니가 하지 못했던 것의 리스트가 되어버렸다. 무엇이 사실 옳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최대한 그 결국 하지못할 것의 리스트가 작은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어머니와 보낼 수도 있었던 이미 놓쳐버린 그 소중한 시간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암환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암환자의 가족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이 리스트를 줄이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을 쓰셨으면 좋겠다. 단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암환자도 사람이기 떄문이다. 외롭고,고독하고,쓸쓸한 것도 당연하지만 놀고싶고, 포기하고 싶고, 울고싶은 심정까지도 다 똑같은 사람이다. 


이 점은 사실 암환자가 아니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누구든 지금의 버킷리스트가 미래의 이루지 못한 꿈의 리스트가 될지도 모른다. 이글은 암환자 그리고 그 가족분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그리고 소중한 것부터 챙기면서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다. 


용기를 가지자. 좋은 일은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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