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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대학 꼴찌, 미국대학에서 1등 하다!

국내대학 문 닫고 들어가 미국대학에서 1등으로 졸업하기까지

IMF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울 무렵,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순식간에 우리 가족은 가난에 내몰렸다.


나는 그때 사춘기에 방황하며 했던 것이라고는 가요책 뒤에 주소를 내어,  전국적으로 오던 편지에 답장 쓰기. 일명, '멘토링 (고민 들어주고 상담하기) 편지 쓰기'뿐이었다.


한 경상도의 소도시, 공립여고에서 내신은 230~40여 명 중, 15등 정도로 현재의 수시전형, 교과로 인서울대학에 지원해 볼 정도는 되었으나. 당시에 핑계라면 핑계지만! 수능공부를 전혀 하지 못한 상태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다행히도, 고모 두 분의 지원으로 입학금과 첫 등록금을 내고 나는 가까운 지방 4년제 대학에 그곳도 모양 좋게 꼴찌로, 흔히들 말하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 


국내 대학 입학 후,  때는 공부 좀 한다던 내가 간 대학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에서 공부라고는 대충대충이었고, 학부 1, 2학년 내내 용돈벌이 아르바이트로, 연애로 바빠 성적은 아주 죽을 쑤었다.


그 무렵, 내가 그리도 믿고 따르던 나의 할머니를 잃었다. 그도 모자라 나의 남동생을 교통사고로 잃고 말았다. 그 슬픔으로 한때는 많이 방황했다.


그렇게 엉망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불안해졌다. 졸업 후 무얼 하고 먹고살까 고민하던 차, 해외에 나가 살고 싶다는 꿈을 다시 한번 꺼내 곱씹어 보았다. 그 꿈을 되뇌며 혹여나 필요할 훗날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죽은 쑨 성적을 3학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거의 모든 과목에서 A받았다. 그렇게 온갖 불안감으로 정신이 번쩍 들고서, 결국, 전액장학금지나 받게 되었다.


나는 학부에서 인문대학, 역사학을 전공했다. 비슷한 문과계열 전공자라면 나의 공부법 통할 지 모르니 참고 바란다.


우리나라 대학은 일단 수업내용을 모두 받아 적는 필기부터가 공부의 시작이다. 시험대비로는 교수님께서 예로 드는 썰이며, 한자까지 모두 받아 적은 노트를 죄다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이다.


시험 하루 전날, 백지에 그 모든 것을 재구성하여 내 것으로 소화한 후, 적어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 A! 자기 생각까지 논리적으로 얹으면, 그것이 바로 A+인 것이다. 


학부졸업 후, 미국대학 들어 때는 딱 수중에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대학, 주립대(우리나라 국립대 정도랄까?)를 찾았다. 무조건 정해진 금액 안에서 석사학위를 따야만 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때 졸업을 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성적을 잘 받아야만 했다.


일단, 미국대학 국내대학과 입학하는 방법이나 공부면에서 꽤나 달랐다.


외국인으로서 미국 석사과정 입학은 여러 가지 지원 서류가 있다. TOEFL 시험 점수(학교마다 지원가능 점수가 학교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학업계획서(영문 자기소개서라고도 하는데, SOP: Statemant of Purpose라는 대학에 지원한 동기, 계획에 대한 에세이), 추천서 3~5부(모교 교수님들의 이 학생을 추천하는 이유를 적은 추천서, 밀봉하여 대학서류로 첨부), 그리고 Portfolio를 제출한다.


TOEFL은 뉴질랜드 어학연수 마지막 2개월에 걸쳐 공부한 적이 있다. 그리고, SMU TESOL 과정 졸업 후, TOEFL학원을 몇 개월 수강하였고, 내가 본 2번째 시험에서 필요한 점수를 받았다. 학업계획서는 스스로 작성하였고, 유학원에 일정 수수료를 지불하고 이 부분만 첨삭을 받았다. 긴 글을 줄여 A4 1장 안에 쓰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추천서는 SMU TESOL 학과 교수님들께 받아 밀봉하여 제출하였다. 마지막 Portfolio는 TESOL과정 내 프로젝트 수업, 과제로 직접 작성한 부분을 제본하여 제출하였다.


합격 후,  i-20(대학합격통지서), Bank Statement(통장잔고) 등 비자서류를 대사관에 제출, 면접을 통해 비자를 받아 최종적으로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었다.


 과정을 거쳐,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Buffalo의 TESOL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온 i-20에는 2년, 즉 4학기과정이라 명시되어 있었다. 내가 다닌 뉴욕주립대는 학기제로 중간, 기말고사를 한 학기에 2번 치르고, 수시로 project와 assignment를 제출하는 형식의 읽고, 쓰는 과제가 많았다. 시험은 보통, 주어진 문제에 따른 서논술형이 대부분이었다.


읽기 자료를 미리 공지해 주면, 그 읽기 자료를 읽고, 그에 관한 생각을 쓰는 것이 있었고, 지식을 묻는 서술형 문제도 있었다. 총점 4.0만 점에 나는 졸업 학점 4.0으로 만점을 받고 등수를 매기진 않았지만, 굳이 매기자면, 1등으로 졸업을 하였다.


졸업고사는 제법 까다로운 편이었고, 당시에 선배들 중에는 몇 번이나 떨어져 석사과정을 3,4년을 다닌 경우도 여럿 있다 할 정도였다. 나는 다행히, 내가 미국생활을 시작할 무렵, 박사졸업 선배에게 5년 치의 졸업고사 족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큰 재산이 되어 졸업고사 분석과 관련 논문을 읽어 정리하여 내 학교 도서관 캐럴(작은 나의 공부방)에서 꼭 필요한 논문내용과 나의 생각을 적어 두는 것으로 벽면을 가득 메웠다. 석사 1년 차 때부터 2년 차 6개월 내내 1년 반동안 여행이나 파티 참석 등을 제외하고는 꼬박 그 캐럴을 지키고 공부했을 만큼 쉬운 시험은 아니었다.  


그 시험에서 나는 B4 종이 8장을 받아 들고, 당일 4시간가량을 써 내려갔고, 그렇게 1번에 합격하고, 졸업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위기에 닥쳐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올 때,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촉박할 때! 즉, 돈이 모자라 겨우 맞추어야 할 때 이든가, 혹은 시간이 겨우 맞춰질 정도의 긴박한 순간에 초인의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그것이 바로 나의 경우이다.


여러분도 무언가 이루고 싶거든 위기에 부딪혀라.

그것이 어느 책의 저자가 말한, 일부러라도 만든다던 그 '위기주도학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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