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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육각 May 16. 2022

[오붓한달] 가끔은 둘이 오붓한 달

BY 김진경, 양성지 부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어요. 

부부에서 부모가 된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지만

일상을 몽땅 바꿀 만큼 책임감이 막중한 일이기도 해요.

그래서 가끔은 둘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붓한 인터뷰, 세 번째 주인공은

육아라는 산을 함께 오르고 있는

김진경, 양성지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뷰이 

아내 김진경, 남편 양성지 부부(그리고 아들 혁준)


아이가 생겼어요


남편과 저는 회사에서 만났어요. 사내 연애가 금지여서 "그럼 우린 연애 말고 결혼을 하자!"며 사귄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결혼을 하겠다며 난리를 쳤어요. 부모님들이 크게 당황하셨죠.


사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결혼 생각도 없었고 아기 생각은 더더욱 없었어요. 저는 제 자신이 제일 중요하고, 풍류를 너무나 사랑하고, 퇴근 후 맥주 한 캔이라도 꼭 챙겨마시는 알코올 러버였거든요. 임신 기간과 모유 수유를 생각하면 '술이나 커피는 못 마시겠네? 아기가 울면 못 자겠네? 그럼 나는 못하겠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그런데 결혼을 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임신 '준비'를 하기 위해 퇴사한 그 달에! 바로 임신을 했어요. 그렇게 청전벽력 같은 금주의 시간이 시작되었죠.




현실 육아


아기가 태어나고 나니 '내가 제일 소중해!'를 외쳐온 저에게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겼더라고요.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몽글몽글~ 벅차오르고, 너무 사랑스럽고, 오물오물 잘 먹는 모습에 모든 걸 다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육아의 어려움이야 익히 듣고 보고 배워서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지만 현실이 되니 역시나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저는 아침잠이 많아서 일찍 일어나야 하면 차라리 안 자고 마는 사람이거든요. 그만큼 수면이 삶의 질에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에요. 제가 배운 육아 상식으로는 아기는 2시간마다 한 번씩 일어난다고 해서 나름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맙!소!사! 아기는 수시로 깨는 존재였어요. 그 말은 저도 수시로 깨어서 돌봐야 한다는 뜻이고요. 조리원 퇴소 후 첫날밤, 다 합쳐서 한 시간도 못 잤던 기억이 나요. 하루 종일 비몽사몽... 몸도 회복되지 않았고, 모유 수유로 가슴을 내놓고 있으니 젖소가 된 느낌에 우울했어요.


2.59KG로 태어나 병원에서 이렇게 작은 아기는 오랜만이라고 할 정도였는데 5개월째 8KG를 가뿐히 넘어설 정도로 잘 먹다 보니 통잠의 기적은 고사하고 새벽에 여전히 내 새끼의 밥을 챙기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현실. 그리고 안아 올릴 때마다 기합을 헙! 넣어야 할 정도로 무거워지니 제 손목이 너덜거리는 것도 쉽지 않네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를 보고 있자면 너무 행복하지만 저만의 자유시간도 그리워요. 술 한 잔 하며 신나게 놀고 싶고, 둠칫 둠칫 춤도 추고 싶고, 커피 한 잔에 달콤한 디저트도 (나가서) 먹고 싶고, 무엇보다 아기가 아직 어리니 구워 먹는 고깃집에 못 가는 건 참으로 아쉬워요.


부부에서 부모로


연애 때 저는 매일매일 약속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남편은 늘 고주망태가 된 저를 데리러 아니, 주우러 오곤 했어요. 주로 제가 사고(?)를 치고 다니고, 남편은 이런 저를 챙기고 보살피고 배려해주는 관계였어요.


제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계기도 좀 어이없고 웃긴데요. 매일 음주를 즐기는 저에게 가장 효과가 좋았던 숙취해소제 10박스와 밀크씨슬을 사주면서 "술 마시는 것은 좋지만 건강을 챙기면서 마셔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거든요. 타인을 내 입맛에 맞게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배려심이 깔려있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은 물욕도 없어서 제가 사주는 것 외에는 쇼핑도 잘 안 하고요. 자기 건 안 사도 제 거는 사주는 그런 사람이에요. 남편은 아이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좋은 친구 같은 아빠'가 돼줄 거예요. 


저 역시 엄마가 되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게 되고, (여전히 철이 없지만) 책임감이라는 것도 생기고, 남편에게 배려를 받기만 했다면 이제는 서로를 배려하게 되었어요. 물욕의 신이었던 제가 저희 건 안 사도 아기에게는 아낌없이 퍼주게 되네요. 게다가 저는 원래 뭘 잘 안 챙겨 먹는 스타일이었는데 모유 수유를 하면서 좋은 걸 찾아서 챙겨 먹어요. 그래서 정육각도 알게 되었고,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기를 챙겨 먹으며 수유도 하고, 아기 이유식도 정육각으로 찜했답니다. 




우리의 육아법


저희는 3살 연상연하 커플이에요. 저는 전형적인 문과생에 감성 가득한 사람이고, 남편은 이과 > 공대 > 개발자 루트를 탄 이성적인 사람이에요.


남편은 공부 덕후라 제가 임신했을 때부터 육아책을 보기 시작해, 아기가 태어나고는 10권 가까이 사서 열심히 읽으며 육아에 임하고 있어요. 엄마인 저는 되는 대로 대충대충 한다면, 남편은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죠. '애기가 로봇도 아니고 코딩처럼 되나?' 했는데 정말 그대로 될 때가 있어서 놀라곤 해요.

특히나 여러 지인들이 도전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봤다는 수면 교육도 남편이 독한 마음으로 해낸 덕분에 너덜거리는 제 손목을 조금이나마 지킬 수 있었어요. 원래도 그랬지만 출산 후 남편에게 더 의지하게 되었어요.



육아 동지의 전우애


저희 남편이 저를 진짜 많이 도와주는 편인데도 육아를 하다 보면 심신이 지쳐 예민해지고, 서로의 마음이 뾰족해지거든요. 그럴 때마다 '육아의 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며 서로 등을 토닥이고 엉덩이도 밀어주며 으쌰 으쌰 넘어가고 있어요. 또 각자 잘하는 걸 하자는 주의라서 요리는 남편 담당, 저는 설거지와 정리를 도맡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남편이 재택근무를 해서 아기도 많이 돌봐줬고 젖병, 치발기 삶기, 피곤해하는 저를 위해 새벽에도 아기를 봐주었어요. 둘 다 처음 엄마 아빠가 된 거라 뭘 해도 어설프고 서툰데 남편이 주도적으로 육아를 해준 덕분에 참 도움이 많이 되고 고마워요. 가끔 다투거나 서운해서 마음이 좁아지지만 대부분은 고마운 마음이 가득해요. "아기가 태어나도 서로의 1순위는 서로가 되자"라고 약속했었는데 기분이 조금 상해도 예쁘게 말하고 서로를 더 배려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해주고 있답니다.



재밌게 잘 살기


남편과 저는 개그 코드가 잘 맞고 맛있는 걸 좋아하고, 거기에 술 한 잔 하는 것도 좋아하고, 둘이 보기만 해도 낄낄거리는 사람들이에요. 누가 들으면 쓸데없고 유치한 소리라도 저희만의 언어와 표현을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서로 감정이 상한 날에도 잠들기 전에 꼭 "사랑해"라는 말을 "스릉해, 수룽해, 슬옹해~" 등으로 표현하는 식이죠.


남편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이 "재밌게 잘 살자"였는데 지금까지 재밌게 잘 살고 있어요. 서운한 마음이 스밀 때마다 '내가 이 사람 없이 못 살 것 같아서 그렇게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울기도 했었지' 하면서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라며 재밌게 잘살려고 노력해요.


가끔은 둘만 오붓하게


아기가 태어나고 저희 부부의 식사는 '대충 때운다'는 표현이 딱일 거예요. 한 사람이 아이를 맡을 동안 한 사람은 후다닥 밥을 먹어요. 재택 중인 남편의 점심은 주로 라면, 저는 빵, 저녁은 양가에서 보내주신 반찬만 대충 꺼내 먹는 게 일상인데 이마저도 아기가 울고 보채면 다 못 먹고 달려가곤 하죠. 산책길에 코끝을 스치는 고기 굽는 냄새에 군침이 싹 돌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모유수유를 위해 미역국에 든 소고기는 많이 먹었는데 구워 먹는 고기는 꿈도 못 꿨거든요.


때마침 곧 부부의 날이기도 하고 우리도 불금을 즐겨보자며 날을 잡고 정육각에서 한우를 주문했어요. 채끝은 온전히 엄마 아빠의 만찬으로, 안심은 이유식으로 일부 소분해두고 아들이 잠들기만을 기다렸죠. 보통 목욕을 마치고 마지막 수유를 하면 8시경 아가가 잠드는데, 이날 따라 오후 산책부터 칭얼대더니 애매한 시간에 그냥 잠이 든 거 있죠? 아기 목욕은 스킵하고 부랴부랴 저녁 식사를 준비했어요. 그간의 한을 푸는 심정으로 최대한 맛있고 예쁘게 먹어보려고 스테이크에 리소토까지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8시! 이쯤이면 아기가 한 번 깰 시간인데 잘 자길래 "우리 아들이 효자야"라며 한 술 뜨는데 곧바로 우는 소리가... 껄껄껄. 곧장 달려가 수유를 해서 재우고 겨우 식사를 이어갔어요. 


물론 계획대로는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고기도 굽고, 예쁘게 차려 먹으니 그 자체로 참 좋았어요. 채끝 스테이크와 크림 리소토, 무알콜 맥주와 함께 기분도 내고요. 고기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외식의 아쉬움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특히 남편은 뭘 먹어도 크게 감흥이 없고, 가리는 것도 많은데 한 입 먹고 "와, 왜 이렇게 맛있어?" 라며 감탄을 하더라고요. 정말 오랜만에 함께 엉덩이를 붙이고 여유롭게 식사를 하니 육아로 지친 마음이 사르르 녹았어요.


먼 훗날에도 우리


이제 결혼 2주년을 맞이한 저희 부부 곁에 벌써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네요.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이가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재밌게 살아가는 게 저희 가족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살다가 현실적인 문제를 만나 힘든 날도 있겠지만 이건 잊지 않으려 해요. 우리가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해서 결혼했는지, 아이가 찾아오고 태어나서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했는지를요.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서도 여전히 유치한 멘트를 날려가며 잠들기 전까지 낄낄대고 싶어요. 그러려면 오늘처럼 우리만의 오붓한 시간을 일부러라도 많이 가져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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