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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Mar 04. 2024

<듄 파트2> 음모와 복수의 영웅 서사

- 보고 듣고 느낀 대로 

     

                                                    * 스포일러 약간 *     


  <듄 파트2>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도 스토리 라인은 간명합니다. 폴(티모시 샬라메)이 아버지 레토(오스카 아이삭)를 죽이고, 자신의 가문을 몰락시킬 음모를 꾸몄던 샤담 황제 4세(크리스토퍼 월켄)와 하코넨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듄 파트2>가 단순한 복수극에 머물렀다면 통속적 무협지 수준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제국주의적인 지배와 착취의 계급구조, 메시아적인 세계관, 그리고 전사의 로맨스가 영웅 서사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철학적 깊이를 더 해줍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요약해 봅니다. 

  첫째,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끝없는 사막에서 펼쳐지는 영웅 서사라는 점입니다. 시간적 배경이 10,191년이니까 21세기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로서는 8천 년 이후의 우주 공간에 대한 감각이 무개체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미래의 문명세계를 밀림이나 바다가 아니라 모래제국으로 설정해 그에 대한 개연성의 신비감이 극적 긴장과 흥미를 높여줍니다. 사막하면 일 년 내내 작열하는 태양, 모든 것이 모래 속에서 탄생과 사멸을 반복하는 영원성, 아득한 모래 언덕에 꾹꾹 찍어놓은 방랑자의 발자국과 알라 신을 향한 기도가 떠오릅니다. 일찍이 데이비드 린 감독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사막의 원시성과 정치적 함의를 스펙터클하게 보여줬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파트2>는 사막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미래사회를 움직이는 에너지와 신화적인 영웅 캐릭터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줍니다.      


 


 둘째, 바위에 꽂힌 칼을 뽑은 아서왕처럼 운명적으로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폴이 음모로 인해 시련에 빠지고, 자신의 능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시련을 극복함으로써 영웅이 되는 과정은 여타의 영웅 서사와 같은 구조이긴 하지만 색다른 소재와 디테일의 묘사로 리얼리티가 감득됩니다. 꿈속에서 끝임 없이 챠니(젠데이아 콜먼)를 만나고,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 프레멘 족의 리산 알 가입(메시아적인 존재)이 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치밀하게 보여줍니다. 자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자와 결투를 해서 승리하고, 모래괴물인 샤이 훌루드에 올라타서 그를 지배하는 전사의 모습을 보여주죠.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암살하려고 온 자들을 섬멸하고, 결투에서 악마의 화신인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죽인 뒤, 하코넨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까지 숨을 끊어버립니다. 마지막으로 황제 샤담 4세(크리스토퍼 월켄)를 자신의 발에 입 맞추게 하는 것으로 폴은 영웅의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모든 사건과 인물관계의 중심에 폴이 있기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도 극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건 폴이고, 카메라 또한 폴을 단독 샷으로 많이 찍을 수밖에 없죠. 거기다 폴의 영웅 서사가 감득이 되는 건 원주민 프레멘 족과의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문화적으로 동화돼 가는 과정을 인간적인 친화력과 고전적인 액션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런 과정은 관객의 기대이기도 하고, 그 기대가 영화적으로 실현된 건 요즘 할리우드의 대세인 티모시 샬라메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겠죠.     

 

  셋째, 스틸가의 역을 맡은 하비에르 바르뎀과 거니의 역을 맡은 조슈 브롤린은 마초적 캐릭터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최적의 배우들입니다. 그런 만큼 그들의 액션과 표정을 보여줄 수 있는 극적인 사건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절제된 액션으로 우주를 구원할 영웅인 폴의 보조적 역할에만 머무르게 한 것도 치밀하게 계산된 거겠죠. 어떤 관객들은 하비에르 바르뎀과 조슈 브롤린의 마초적 액션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움일 수 있습니다. 또한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가 속한 비밀교단 베네 게세리티는 종교적 신비주의와 함께 폴의 특별한 능력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하죠.

  소시오패스적인 악인 페이드 로타와 폴의 결투 장면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게임처럼 단순하게 끝이 나버려 극적인 여운도 그만큼 적었죠. 러셀 크로우가 <글레디에이터>에서 검투사의 모습을 이미 완벽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드니 빌뇌브 감독은 그걸 재현하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겠죠. 하코넨 남작의 죽음은 간명하게 종지부를 찍어서 후련했고, 샤담 황제4세가 폴에게 굴복하는 장면은 통쾌했습니다. 황제에서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자의 눈빛은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비굴하게.      



  넷째, 러닝 타임 165분이 지루하지 않은 건 생략과 압축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사건을 속도감 있게 진행시켰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치밀하고, 정교하게 시각화한 게 눈에 띕니다. 사건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막의 색채가 조금씩 달라지고, 카메라의 수직 이동으로 다이내믹한 분위기를 극대화했죠. 사다우카가 산을 날 듯이 수직적으로 오르고, 잠자리 비행체들이 공중으로 비행하는 것과 폴이 샤이 훌루드에 올라타고 질주하는 장면은 물리적인 속도감만이 아니라 감각마저 짜릿하게 해줍니다.      



  다섯째,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에서도 에너지 고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비족의 행성인 판도라를 침공하듯이 <듄 파트2>의 에너지원은 스파이스입니다. power over spice is power over all(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가 우주를 지배한다)처럼 예지력을 키워주고, 수명연장을 하는 각성제 성격을 띤 스파이스는 우주를 움직이는 중요한 자원입니다. 그런 자원을 얻기 위해 프레멘 족의 근거지를 침략하는 건 제국주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죠. 프레멘 족이 서구 제국주의에 끊임없이 수탈을 당한 아랍과 이슬람 민족으로 투사되는 건 정치적으로 그렇게 연결될 수밖에 없고, 프레멘 족이 리산 알 가입이라는 구원자를 염원하는 것도 종교 문화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우울한 건 10,191년 미래에도 제국주의가 존재한다는 거죠.      


  여섯째,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내내 잊어지지 않는 건 프레멘 족의 여전사 인 챠니의 눈빛입니다. 폴이 복수를 다 끝내고난 뒤, 황제 샤담4세의 딸인 아틀란 공주(플로렌스 퓨)와 정략결혼을 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챠니의 표정에 분노와 허망함이 가득합니다. 폴이 챠니에게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나의 사랑은 오직 그대뿐!’이라고 말해줬지만 아틀란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되면 챠니에게 폴은 그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죠. 챠니가 폴의 배신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샤이 훌루드에 올라타는 장면을 보여준 건 전사로 완전 변신한 챠니와 아틀란 공주 사이에서 폴이 갈등을 겪고, 두 종족 간의 싸움이 <듄 파트3>에서 펼쳐지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죠.     



  여섯째, 한스 짐머의 OST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음악은 소리를 뛰어넘어 스펀지처럼 스크린에 스며들어 관객들의 오감각을 바짝 곤두서게 합니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사운드가 아니라 영화적 메시지입니다. 

     

  사족 – 저는 왕십리 CGV IMAX관에서 봤는데 관람 중 관객들이 어떤지 슬쩍 살펴봤습니다. 마치 프레멘 족의 전사 같은 표정과 눈빛이었습니다. 몰입도가 높다는 증거죠. 영화 중간에 관객의 표정을 보는 건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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